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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국 국기에서 추출된 태극과 원을 모티브로 두 나라의 모습을 표현한 행사 로고
ⓒ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외교통상부가 한일협정 40주년이 되는 내년에 '한·일 우정의 해 2005'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기관, 지자체, 기업, 공익단체, 학교는 물론 비영리 민간단체 등을 상대로 사업을 공모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작년 현충일에 일본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을 맞아 2005년에 한일 민간 페스티벌을 열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외교부는 홈페이지에서 "한·일 수교 40주년인 2005년을 기념하여 문화, 학술, 스포츠 등 제반 분야에서의 각종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여 양국의 차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을 비롯한 국민 각계 각층간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증진"함이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외교부는 이 사업의 응모기간을 정하고 있지 않아 대단히 광범위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까지 양국이 합의한 사업으로는 클래식 콘서트 교환 공연, 공동학술회의, 국립중앙박물관 내 일본실 개설, 한·일포럼 개최 등이다.

▲ 신사참배하는 고이즈미 일본 수상
ⓒ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의 한일 관계가 '우호와 우정'만을 강조할 시점인지 대단히 의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왕성하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독도 우표 발행과 우익 단체의 조직적인 망언과 망동이 끊이지 않고 있는 등 우경화의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주소이다.

더군다나 징용, 징병, 군 위안부 등으로 끌려가 고통 당한 분들에 대한 명예회복은커녕 피해에 대한 기초적인 진상 조사조차도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불과 몇 년이면 피해자 대부분이 고인이 될 지경이지 않은가.

얼마 전 고인이 된 강제연행 위안부 피해자 김순덕 할머니는 "일장기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려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외교부는 양국 국기를 한데 어울려 로고까지 만들어 놓았다.

지난 1월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모금행사 때 네티즌들은 불과 11일만에 목표액 5억원을 모아 주었다. 정치인과 정부가 내팽개친 민족사를 국민들이 겨우 다잡아 놓았는데 정부는 뒤에서 겨우 '한일 우정의 해'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역사청산 없는 한일 우정은 허구

내년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 100주년이자 해방과 분단 60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아픈 기억을 어떻게 후세에게 기억하게 할 것인지 고민을 나누는 것이 먼저이며, 나라를 위해 싸우시다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또한 진정한 한일 우호 관계 정립은 양국의 어두운 역사를 마냥 숨기기보다는 솔직히 드러내고 상처를 서로 확인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의 피울음 소리를 요란한 풍악소리 뒤로 묻히게 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 '슈뢰더, 부지런한 전후청산 외교'라는 제목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종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함은 물론 오는 8월 1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바르샤바 봉기(2차대전 중 폴란드 지하저항군이 나치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사건) 6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행사에 참석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6일 독일 무명용사의 무덤에 헌화했다. 프랑스 랑빌의 이 묘지에는 당시 전사한 독일 병사 322명이 잠들어 있다.
ⓒ 뉴시스
슈뢰더는 이에 앞서 지난 달 6일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해 과거 독일의 과오를 사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합군 병사 수천명이 단 하루 만에 숨졌고, 그들은 자유를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다. 독일군들은 유럽을 압제하려는 살인적인 시도(나치즘) 때문에 숨졌다."

또 그는 "2차대전 당시 숨진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며 "프랑스와 독일이 어느 때보다 가까운 동맹이라는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전쟁에 대한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한 뒤 유럽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쓰겠으며 전쟁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독일은 같은 패전국인 일본의 행태와 극명히 대비된다. 이같은 슈뢰더의 일련의 행보를 보고 중국 지도자들은 "고이즈미 총리는 슈뢰더를 본받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같은 당당한 모습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한일 정상은 오는 7월 21일과 22일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혹 해가 서쪽에서 뜨는 상황이 벌어질지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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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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