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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산 공원이 보이는 풍경" 연작 중, 젤라틴 실버 프린트
ⓒ 이순행
'있는 것만 찍힌다'는 사진메커니즘의 객관성과 '본 것만 담긴다'는 주관성이야말로 아트로서의 한계와 가능성이 미묘하게 얽혀있는 사진 매체의 독특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2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리는 사진기획전 <釜山-오래된 섬>. 부산이라는 실존적 의미, 그 속에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객관적 아이콘들의 주관적 해석 과정은 그래서 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자, 본 전시를 관통하는 컨셉트가 된다.

참여작가들은 모두 주류 사진계 기준으로 볼 때 신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부산에 연고가 있어 오랫동안 정착해 왔던 사진가들이다. 그런 연유로 전시작들은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형태가 틀에 박혀 있지 않아 신선한 맛을 주면서도, 여타 이방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부산에 대한 애착이 묻어난다.

▲ "용두산 공원이 보이는 풍경" 연작 중, 젤라틴 실버 프린트
ⓒ 이순행

▲ Odyssee 연작 중, 디지털 레이져 프린트
ⓒ 이기철

▲ Odyssee 연작 중, 디지털 레이져 프린트
ⓒ 이기철
이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 이기철은 바다에 관심을 가진다. 자갈치 시장에서 영도 사이를 왕복하는 요긴한 운송수단인 '배'를 타고 다니며, 작가가 늘 바라 본 '영도 다리'의 이미지들을 내보인다. 잘려나가고 기울어지고 뿌옇게 담겨진 이미지들은 개인적 추억이자 심정이 담긴 풍경일 뿐, 사회적이고 객관적인 메시지를 뚜렸하게 전달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나 사진을 들여다보면, 영도 다리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복잡한 시선과 심정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곳에 얽힌 추억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함께 동화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내 멋대로 보는 사진 읽기의 맛이 담긴 사진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순행의 접근 방식 또한 이기철과 유사하다. 그의 사진 중에는 어두운 밤, 뾰족히 빛나는 용두산 타워의 불빛을 바라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 담겨 있다.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이미지에서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하나의 아이콘으로 작용하는 것일 뿐.

여행지로서 부산에 대한 추억이 있는 관람객들이라면, 미술을 전공한 작가의 감각이 드러난 작고 밝게 빛나는 이미지들을 보며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실마리로 스스로의 추억을 재생해 볼 수도 있다.

용두산에서 늘 보던 사람들을 찍은 배길효는 연극에 심취한 사진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짜임새 있는 구도, 선택적 초점, 여러 등장 인물 등 시각적인 즐거움과 아울러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다.

한쪽 바지만 덜렁 접은 채로 언덕 위에 멋진 폼으로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은 늘 보던 작가에게는 매우 익숙한 장면일지 모르겠으나 이방인의 눈엔 무척이나 어색하다.

익숙한 일상일 뿐인 이미지가 초현실적인 영상으로 해석되는 과정은, 부산을 바라보는 서울 사람들의 시선과 중첩되고 그 오해의 과정을 과장되게 보여준다.

▲ "용두산 공원" 연작 중, 디지털 레이져 프린트
ⓒ 배길효

▲ "용두산 공원" 연작 중, 디지털 레이져 프린트
ⓒ 배길효

▲ cityscape1,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 이인미
이인미는 건축 사진작업을 해오던 작가다. 사실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의 사진이므로 왜곡을 없애고, 선명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렌즈의 무브먼트(렌즈와 필름면간의 수평각도를 전후좌우로 조절해 원근감에 의한 왜곡을 없애는 방법)가 자유로운 4x5 인치 대형필름용 카메라를 사용했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아트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미술 중심의 일방적인 관점이 아닐까 한다.

낡은 가옥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송도 해변의 고층아파트는 2004년 현재 개발 중인 부산의 단면을 기록하는 가치와 함께, 그 선명함과 압도감으로 보는 이의 가슴은 더욱 무겁게 짓눌린다.

최영환은 그동안 찍어오던 부산의 골목길 사진들을 모아 지난해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다. 남포동, 충무동, 중앙동, 자갈치 등 바다 인접 지역의 비릿내나는 풍경에는 그 지역을 오랫동안 파인더로 지켜봤던 사진가의 남다른 애착이 담겨 있다. 전시작은 8년 전 자갈치 시장 모습으로 지금은 꼼장어 타운이 들어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영도를 왕복하는 배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서민들의 모습은 촬영자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거운 이미지 속에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과 그 어쩔수 없음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녹아들어 있다.

최호영은 전시작 중에선 사람사는 모습에 가장 다가선 사진들을 걸었다.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 부산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인 전포동과 그 곳에서 바라보는 번화가 서면 그리고 서면의 한 가운데 반짝이는 롯데빌딩의 모습들(전시작 6점 모두 롯데빌딩이 등장한다).

어두운 삶 속에 바싹 다가선 촬영자의 위치 그리고 저 멀리 환하게 흥청이는 도심 가운데 기울어지고 흐릿하게 빛나는 롯데빌딩의 모습은 컬러 사진의 강한 이미지 속에서 전포동의 현실과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역시 타자가 아닌 부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착찹한 심경이 담겨 있다.

▲ "Song of the harbor" 연작 중, 젤라틴 실버 프린트
ⓒ 최영환

▲ "전포동 고갯길" 연작 중, 시바크롬 프린트
ⓒ 최호영

▲ "전포동 고갯길" 연작 중, 시바크롬 프린트
ⓒ 최호영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항도 부산. 서울 사람들에게 부산이란 어떤 느낌일까?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서울에서 부산 사진을 볼 기회는 없었다. 전시 안내문에 따르면 50년만이라고 한다. 문득, '그렇게 먼 도시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 대해 참여작가 이순행은 "뚝 떨어진 느낌" 이라 했고, 전시기획자 진동선은 "가본 지 오래된 섬, 기억 저쪽에 있다가 여름이 되면 해운대 해수욕장 때문에 한 번쯤 생각하는 낯선 곳" 이라 했다.

서울 화랑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부산 사진가들의 '부산 사진'은 그래서 반갑고, 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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