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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소클럽 사이트
최근 KBS 2텔레비전의 심야 개그 프로그램 '폭소클럽'을 시청하다 보면 이상한 말이 나온다. 다음은 이 프로그램의 남녀본색이란 코너에서 나온 대사다.

김지혜 : (전략) 여자들은 얼굴이 예뻐야 합니다.
김인석 : 왜요?
김지혜 : 남자들의 반응이 틀리거든요. 한번 보실래요?
(중략)
김지혜 : 정말 못생겼는데 도토리가 많다.
김인석 : 고민되는데….
김지혜 : 도토리 100개야…. 도토리 100개면 벽지도 바꿀 수 있고, 배경음악도 하구 스킨도 하고 어쩔거야?
김인석 : 사귀자! 일촌! 일촌!
-6월 14일 방영 내용-

프로포즈의 시대별 변화에 대해서
김인석 대사

70년대 : 이거 받어! 이거 쵸콜렛이여…이거 미제야 미제 (하략)
90년대 : 삐삐 번호로 프로포즈 했어요. 1010235 (열열히 사랑해)
요즈음 : 야~ 장판도 좀 바꾸고 창문도 좀 내구 벽지도 좀 바꾸고 심심하니까 좀 음악도 좀 틀어놔라…도토리 100개면 되지? 도토리 도토리라면 널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김지혜 대사
70년대 : (전략) 청첩장이 날라 와요. 신랑은 다른 사람이야. 어머님의 뜻을 저버릴수가 없어요. (후략)
90년대 : (전략) 삐삐를 칩니다 번호를 남겨요. 1818181818 444444 죽어라 죽어라…
요즈음 : 요즘은 좀더 간단한 방법으로 바뀝니다. '일촌끊기' 클릭. 일촌 끊기죠! 일촌 평도 못 남겨요. 사진에 NEW라고 떠있어 보고 싶어들어 가보지만 보지 못해요. 일촌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요.
-7월 5일 방영 내용-

커플과 솔로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며

김인석 대사
커플 : (전략) 서로 얼굴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금방 가요! 반나절이 금방가요.
솔로 : 그러나 솔로들은 바닥 바꾸고, 벽지 바꾸고, 창문 내고, 베란다 내고 도토리 100개를 써도 시간이 안가. 30분이 안가요. 돈은 돈대로 다 쓰고.

(중략)

커플들은 아기를 부르지만, 솔로들은 아기를 봐야 합니다. 돈을 벌어서 도토리 사야 되거든
-7월 12일 방송 내용-


무슨 말인지 독자들은 알겠는가?

도토리는 참나무과 나무에 열리는 열매로 도토리묵을 만드는 데 쓴다. 그런데 앞의 대화에서 나오는 도토리는 베란다를 넓히고, 창문을 달며, 벽지를 바꾸는 데 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 대사에서 말하는 '도토리'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서 사용하는 사이버 머니를 말한다.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를 많이 모으면 그것으로 이것저것 구입할 수 있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일촌끊기'란 무슨 말일까? 일촌(一寸)이라 함은 분명 부모와 자녀 사이를 말한다. 그러나 이 일촌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서는 친구맺음을 뜻하는 말로 쓴다. 이 때문에 앞 대사에서 이별할 때 '일촌끊기'란 말이 나왔다.

인터넷 은어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인터넷 은어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기서 삼가겠다. 다만 이러한 말을 방송에서 방영해도 되는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비단 공영방송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은 특수한 계층이 아닌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시청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 따라서 방송 내용은 일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들로 구성해야 한다. 아무리 개그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특정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우리나라의 많은 시청자들 가운데 '도토리'를 사이버 머니로 인식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심지어 도토리로 베란다를 내고 벽지를 바꾼다는 말을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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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 소재를 개그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뜻이거나 이해하고 싶으면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라는 뜻 아니겠는가? 만일 후자라면 제작진은 명백히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 다른 뜻이 있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개성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언어는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처럼 인터넷 '외계어'로 표현되는 그들만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개그 소재로 삼아 결국에 이런 말이 정착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본래 단어의 뜻을 변형시켜 언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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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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