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포도처럼 풍성하고 싱싱한 여름이 되기를... 레드마스캇 : 당도가 높고 향이 좋으며 육질이 부드럽다.
이 포도처럼 풍성하고 싱싱한 여름이 되기를... 레드마스캇 : 당도가 높고 향이 좋으며 육질이 부드럽다. ⓒ 윤형권
올해 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농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포도재배 농가는 더욱 깊은 시름에 잠겨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포도 폐업농가에 대해서는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반도의 반대쪽에 위치한 머나먼 나라, 칠레의 포도가 그토록 두려운 존재인가? 수십 년간 공들여 키워온 포도나무를 하루 아침에 캐내 태워버리는 농사꾼의 마음은 숯보다 더 시커멓다.

대안이 없을까?

삼색포도의 주인인 인창농장 손창화(59)씨
삼색포도의 주인인 인창농장 손창화(59)씨 ⓒ 윤형권
전국의 포도재배 농가가 안절부절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가운데 한 포도농가에서는 삼색(三色), 삼미(三味), 삼향(三香)의 '삼색포도'를 개발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어 수입농산물에 대응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계룡산과 대둔산이 마치 탑정 저수지를 감싸 안고 있는 듯한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 이 곳에 위치한 손창화(59)씨의 인창 포도농장에서는 지난 4월말부터 출하하기 시작한 삼색포도가 7월 초순에 이미 품절됐다. 손씨는 밀려오는 고객들의 주문을 달래느라 분주하다.

삼색포도는 대부분 백화점으로 납품되어 나가고 일부는 소문을 듣고 전화 주문하는 고객들에게 팔려나갔다. 2kg 포장에는 3~4송이, 4kg 포장에는 6~7송이의 각기 다른 종류의 포도가 삼색을 이루어 하나의 상품으로 탄생한다. 출하가격은 1kg당 1만4000~1만7000원선에서 이루어져 일반 포도보다 두 세배 높은 가격을 받는다.

삼색포도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다. 삼색포도는 손창화씨와 그의 아들 손인창(30)씨 등 손씨 가족들의 지난 10년간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로 탄생했다. 손창화씨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 등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앞으로 농업분야에 심상치 않은 사태가 올 것을 예견했습니다. 포도농사도 이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과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지요.”

왼쪽부터 레드마스캇, 세토자이안트, 섬머블랙. 인창농장에서 재배하는 품종이 20여가지다.
왼쪽부터 레드마스캇, 세토자이안트, 섬머블랙. 인창농장에서 재배하는 품종이 20여가지다. ⓒ 윤형권
왼쪽부터 레드 레헬레스콜, 화이트로스, 후지미노리
왼쪽부터 레드 레헬레스콜, 화이트로스, 후지미노리 ⓒ 윤형권
지난 30년간 지어온 포도농법의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우선 논산농업기술센터를 자주 방문해 포도 전문 연구사들과 상의하는 한편 방학 중에 아들을 일본의 포도농장과 농과대학으로 견학과 연수를 보내 정보를 축적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손씨의 포도농장은 수십 종의 포도를 심어 이것저것 살펴보는 실험실이 되었다.

30년 고정관념 깨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손씨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갔다. 이런 노력의 결과 경지면적이 좁고, 시설하우스 재배를 주로 하는 우리나라 포도농사를 고품질 다품종 생산에 의한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해서 '삼색포도'가 탄생하게 된 것.

손씨의 이러한 집념의 결과 지난해 처음 출하한 삼색포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동안 국내 소비자들은 일반적인 포도 한 종류만 포장된 것을 사먹었다. 그러나 인창농장의 삼색포도는 종류가 다른 20여종의 고품질 포도를 세 가지 색으로 구분해 하나로 포장해 '삼색포도'를 탄생시켰다. 색다른 내용의 포장과 고품질 포도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4kg들이 삼색포도 한 상자에는 검은색을 띠는 후지미노리와 섬머블랙, 청록색의 세토자이안트와 량옥, 붉은색을 띠는 레드레헬레스콜과 킹데라 등으로 구성된다. 이밖에도 옐로우퀸, 골드핑거, 레드마스캇, 아키퀸 등 인창농장에서 재배하는 포도는 20여종에 이른다.

삼색포도의 성공비결은 뭔가 색다른 것을 찾으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맞춤형 농산물이라는데 있다. 고품질 다품종의 생산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수입농산물이든, 신토불이 국산 농산물이든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상품가치는 결정된다.

"칠레에서 들여오는 포도는 일반적인 품질이고 또 운반기간이 길어서 신선도와 안전성에서 국산만 못합니다. 웰빙시대의 소비자가 선택하는 과일은 고품질과 신선함 그리고 안전성이죠."

한 포도 농사꾼 가족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 만들어진 삼색포도는 거세게 밀려오는 수입농산물에 대항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