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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집 둘째 넝쿨이(중2)가 기분이 엄청 좋은가 봅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자기 엄마에게 자꾸 말도 시키고 평소 안 하던 짓을 합니다.

넝쿨이가 기분이 좋아 수다를 한참 떨더니 '아참!' 하면서 책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놓습니다. 초콜릿이었습니다. 어디서 났느냐고 아내가 물었더니, 어제 자기 반에서 제일 예쁜 여자 친구(아내 생각임)가 시험 잘 보라고 주었다면서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더 좋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평소 여자에 대하여 눈곱 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행동을 해서 넝쿨이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춘기라는 과정을 겪지 않고 청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랬던 넝쿨이가 여학생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받았다고 들떠서 얘기하는 모습이 아내는 귀여웠던가 봅니다.

▲ 넝쿨이가 활짝 웃으면 모든 근심이 물러갑니다.
ⓒ 박철

나는 어제 어느 지인에게 빌려온 사진집을 보면서 귀는 아내와 넝쿨이에게 가 있었습니다. 아내와 넝쿨이가 소꿉장난하듯이 깔깔거리며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늘은 넝쿨이 기말고사 마지막 날입니다. 시험을 나흘에 걸쳐서 보는데 지난 3일동안 저녁에 집에 돌아올 적마다 시험 잘 봤냐고 물어 보아도 넝쿨이 대답은 언제나 "그럭저럭 봤어요"였습니다. 시험을 잘 보지도 아주 못 보지도 않았다는 말일테지요.

"넝쿨아! 그럭저럭이 뭐냐? 잘 봤으면 잘 본 것이고, 못 봤으면 못 본 것이고 그렇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지 마라."

넝쿨이 눈치는 오히려 시험을 지난번 보다 더 못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 근래에 오늘 아침처럼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흘 전 시험을 하루 앞두고 새벽 4시까지 소설책을 읽다가 아내에게 들켜 혼쭐나기도 했고,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누굴 위하여 학교에 나가는 것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학교엘 갔는데, 오늘 아침은 얼마나 밝고 애교가 철철 넘치는지 전혀 딴 아이 같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넝쿨이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오늘이 시험 마지막 날이어서? 그동안 시험을 잘 보아서? 여자친구한테 초콜릿을 선물로 받아서….' 도무지 넝쿨이 마음상태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아내와 넝쿨이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넝쿨이 기분이 왜 좋은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넝쿨이에게 물었습니다.

"넝쿨아! 뭐가 좋아서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고 연신 싱글벙글이니? 오늘 시험 끝나는 날이어서 그러냐?"

"아뇨."

"그럼 시험을 잘 봐서 그러냐?"

"아뇨."

"그럼 소○이 한테서 초콜릿을 선물로 받아서 그러냐?"

"아뇨."

"그럼 뭐가 그리 좋으냐?"

"오늘 시험 끝나고 와서 실컷 잘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요."

"으악!" 아내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발랑 뒤집어졌습니다.

▲ 넝쿨이와 은빈이 남매. 넝쿨이가 은빈이를 무척 예뻐합니다. 5년전 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내가 '참 예쁘다'고 했더니 넝쿨이가 '난 은빈이가 더 예쁘다!'고 하더군요.
ⓒ 박철
시험을 하루 앞두고 한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 4시까지 소설책을 보았던 피로가 시험기간 동안 내내 쌓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 넝쿨이 기분이 업(up)되어 자기 엄마에게 말을 걸고, 여자 친구가 선물로 준 초콜릿을 자랑하고(평소 같았으면 초콜릿을 받았어도 얘기도 하지 않았을 텐데…), 괜히 싱거운 짓을 하며, 애교를 떤 이유가 바로 ‘잠’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3과목 시험만 치르고 일찍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 모자랐던 잠을 실컷 잘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았던 모양입니다. 넝쿨이는 참으로 단순한 녀석입니다.

오늘 아침, 아내는 강화시민연대에서 하는 생태교육을 받으러 넝쿨이와 은빈이는 학교에 가기 위해 세 모자가 함께 집을 나서고 나만 집에 남았습니다. 나는 혼자 무얼 할까 하다가 오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벌써 넝쿨이는 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내 방에 들어와 기웃거리며 책을 만지작거리며 왔다 갔다 합니다.

"넝쿨이 너 오늘 시험 잘 봤니?"
"그럭저럭요."
"또 그럭저럭이냐? 그런데 너 오줌 마렵냐? 왜 왔다 갔다 하냐?"
"아빠! 시험 끝났으니 인터넷 해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넝쿨이가 신나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글을 다 마치고 타이핑 좀 해달라고 넝쿨이 방으로 갔더니 컴퓨터를 켜놓고 책상에 코를 박고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 우습고 귀엽데요. 못 말리는 녀석입니다.

"그래,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책 얻어왔으니 실컷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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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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