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태어난지 닷새만에 암탉이 죽자 어린 병아리들 옆에 항상 수탉이 붙어있다.
태어난지 닷새만에 암탉이 죽자 어린 병아리들 옆에 항상 수탉이 붙어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생명의 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일까.

21일간의 고요를 깨고 마침내 7마리 새끼 병아리가 부화한 것도 잠시. 그러나 갓 세상에 나온 새끼 병아리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어난지 닷새만에 갑자기 어미 암탉이 죽은 것이다. 원인 모를 병이었다.

관상용의 일종인 '차보'종 닭 암수 두 마리가 이준경(44·광주시 광산구 평동 용동마을)씨 집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4월초. 비둘기, 금계(관상용 닭의 한 종류)와 함께 애완용으로 들인 것이다. 어느덧 암수는 사랑을 싹 틔웠고, 그 뒤 암컷은 유정란을 품기 시작했다. 부화에 들어간 것이다.

새끼 병아리 품고 죽어간 암탉

"암탉이 어쩌다 둥지에서 한번 나와, 얼른 모이만 주워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들어가곤 했지요. 숨만 가쁘게 들이마시더군요. 알을 깰 때까지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성이지요."

마침내 삼칠일(21일)이 되던 날, 딱딱한 껍질을 깨고 7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막 태어나 솜털이 보송보송한 7마리의 새끼 병아리였다.

그러나 불과 3일여가 지났을 즈음, 암탉의 움직임에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웅크리고 앉아 자울자울 졸기만 했던 것. 움직임이 없을 뿐 아니라 모이를 대하는 것도 확연히 달라 보였다. 새끼들을 보고 눈망울만 힘없이 굴리는 것을 보고있자니 적잖이 속이 상하더라는 주인 이씨.

한 닭장 안에 있는 금계 한 마리가 병아리들한테 다가오자 수탉이 경계에 나섰다.
한 닭장 안에 있는 금계 한 마리가 병아리들한테 다가오자 수탉이 경계에 나섰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태어나자 마자 어미를 잃은 새끼 병아리 한 마리가 수탉에 올라 재롱을 부린다.
태어나자 마자 어미를 잃은 새끼 병아리 한 마리가 수탉에 올라 재롱을 부린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다음날 아침에 보니 죽어있더라구요. 죽기 바로 전날 밤에 손전등을 켜고 보니 새끼 병아리들을 품고 있더니만…. 병아리들이 살아있는 걸 보면, 죽기 전까지 그대로 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뒷산에 암탉을 묻은 이씨는 닭장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사람들은 남은 병아리들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태어난 뒤 한동안은 따뜻한 체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직 날개조차 나오지 않은 때였다.

수탉, 암탉 대신 새끼 병아리 품다

사람들을 경악케 한 일은 그 날 밤 벌어졌다. 어둠이 지자 느닷없이 수탉이 새끼 병아리를 품고있는 것. 한때 양계 농장도 해봤던 이씨였지만, 수탉이 병아리를 품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씨의 조그만 닭장에는 새끼병아리들 이외에 비둘기 몇 마리와 같은 관상용의 일종인 금계 3마리가 함께 서식하고 있다. 자연히 새끼병아리들에게 이들의 짓궂은 장난이 없을 리 만무한 것.

어린 병아리들이 눈에 밟혔던 것일까. 난데없이 수탉이 그날 밤부터 바닥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죽기 전날까지 품어주던 암탉을 대신해서 직접 새끼들을 품고 밤을 새는 것이다. 영락없는 어미 노릇. 지금까지 단 하루도 예외 없이 횃대(닭장 높은 곳)에서만 잠을 청해 왔던 수탉이었다.

새끼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한쪽으로 도망가고 있다. 어느덧 이만큼 자랐다.
새끼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한쪽으로 도망가고 있다. 어느덧 이만큼 자랐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변신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암탉 소리까지 냈다.

"꾸꾸꾸, 꾸꾸꾸꾸…."

병아리들을 불러모으는 신호이자, 주위를 맴돌고 있는 금계를 경계하는 신호인 것. 암탉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며 내는 특유의 소리를 수탉이 대신 내고 있는 것이다.

50대 후반의 마을 한 아주머니는 "세상에 수탉이 병아리들을 품을 줄 누가 알았겠냐"며 "동물들도 보면 묘하더라"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개들도 보면 자기 엄마 묻어놓은 자리 가서 꼭 있더라"며 "어미가 묻힌 자리를 아는 개들은 하루종일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얼마나 비정한 세상입니까"

암탉이 죽은지 한 달여가 지난 시간. 제법 날개도 돋고 병아리들의 움직임도 민첩해졌다. 이제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사람들은 죽을 줄만 알았던 병아리들이, 지금은 깃털도 나오고 꽁지까지 생겼다고 흐뭇해한다.

암탉을 먼저 보낸 수탉이 연신 발톱으로 땅을 파헤쳤다. 모이 먹는 법을 가르치는 것. 병아리 한 놈이 잽싸게 먹이 하나를 낚아채더니 뒤뚱거리며 한쪽으로 도망간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새끼들은 수탉의 위세를 호위 삼아 금계와 비둘기 앞에 잔뜩 호기까지 부렸다.

"얼마나 비정한 세상입니까. 부모가 아이들까지 갖다버리고, 이라크에서는 김선일씨가 살려달라고 해도 정치권에서는 눈 한번 끔쩍 안하고…."

자살이다 파병이다 가뜩이나 어두운 소식만 있는 요즘. 새삼 사람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한시도 마음을 못 놓고 있는 수탉.
한시도 마음을 못 놓고 있는 수탉. ⓒ 오마이뉴스 안현주
ⓒ 오마이뉴스 안현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