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웨스턴 스프링스의 호수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사람들을 반긴다
웨스턴 스프링스의 호수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사람들을 반긴다 ⓒ 정철용
그 아이들을 제일 반긴 것은 바로 새들이었지요. 갈매기부터 시작해서 청둥오리, 집오리, 가마우지, 거위, 검은 고니, 비둘기, 그리고 참새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온갖 새들이 아이들을 반기며 몰려듭니다. 아이들도 새들에게 환성을 지르며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새들과 아이들의 이 반가운 해후는 아이들에 대한 새들의 추격전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왜 새들은 아이들을 쫓고 있는 걸까요?

바로 아이들의 손에 들린 식빵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너무나 익숙한 이 새들은 식빵 한 봉지씩 들고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자 참지 못하고 달려든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갈 수밖에.

그 모습에 내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새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꼴이라니! 그러나 아이들도 새들의 추격이 식빵 때문이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쯤에서 멈춰 서서 아이들은 얼른 식빵을 꺼냅니다. 쫓아오던 새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들의 손에 집중됩니다.

다가오는 거위들이 무서워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꽁무니를 내뺀다
다가오는 거위들이 무서워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꽁무니를 내뺀다 ⓒ 정철용
이윽고 빵 한 조각이 허공에 던져지고, 새들의 발걸음과 날갯짓이 한 차례 요란합니다. 잽싸게 날아서 먹이를 차지한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들에게 빼앗길까봐 그 큰 빵 조각을 통째로 '꿀꺽' 합니다. 먹이를 놓친 다른 갈매기들이 어깻죽지를 잔뜩 세워 성질을 내면서 "깍깍" 댑니다.

덩치만 컸지 동작이 굼뜨고 순한 거위들과 오리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목을 길게 빼 보지만 이미 빵 조각은 없습니다. 중간에 먹이를 가로챈 갈매기 때문에 부지런히 쫓아온 거위들과 오리들의 수고가 말짱 헛것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나는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에서 빵 조각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직접 빵 조각을 들고 거위들과 오리들에게 다가가 시범을 보였습니다.

“던지지 말고 이렇게 들고 있어보렴. 그러면 거위들과 오리들이 와서 빵 조각을 낼름 채 간단다. 그럼 갈매기들에게 뺏기지 않잖아.”

그러나 아이들은 거위들과 오리들이 빵 조각을 채 가면서 자신의 손까지 물까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던져줄 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니까 거위들과 오리들에게도 차례가 많이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갈매기들과는 달리 거위들과 오리들은 한사코 아이들에게 달려듭니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내달리고 마는 것이지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이번에는 조금 어두워집니다.

조금 떨어져서 먹이를 던져주는 그 거리만큼 자연은 이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
조금 떨어져서 먹이를 던져주는 그 거리만큼 자연은 이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 ⓒ 정철용
아이들이 이곳 뉴질랜드에서 산 지 벌써 2~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이들에게는 자연이 손으로 직접 만지는 대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위들과 오리들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그 거리만큼이 아직 아이들에게는 남아 있습니다.

그 간격은 아마도 자연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살았던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이 그들에게 남긴 흔적일 터입니다. 사람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저 갈매기들처럼 이 아이들도 친근하게 다가서는 거위들과 오리들이 아직은 안심이 안 되고 조금 경계하는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저 거위들이 나만 따라 와!”

딸아이 동윤이는 나에게 이렇게 소리치면서 달아납니다. 물론 거위들이 딸아이를 쫓아가는 것은 딸아이를 친구삼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빵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딸아이가 저 거위를 친구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삶의 지혜와 우주의 이치를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에 자연은 딸아이의 온전한 친구가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민 초기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산책길에 따라 나선 귀엽게 생긴 작은 개조차도 무서워서 내 등 뒤로 숨곤 했으니까요. 마당 한 조각 없고 강아지 한 마리 키우지 못했던 서울의 아파트 생활이 어떻게 쉽게 극복이 되겠어요!

도시에서만 자라난 저 아이들이 이렇게 소리치면서,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 새들이 나만 보면 피하네! 얘들아 도망가지 말고 이리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