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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노선이 바뀌지 않은 버스들은 옛 번호도 함께 붙이고 다닌다. 그러나 출발지와 목적지를 쓴 글자는 색깔도 희미하고 크기도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김미정

아침 8시. 버스 정류장엔 스무 명 가량이 서 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 전에는 한산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더 붐비는 것 같다. 오히려 배차 간격은 늘어나고 바뀐 번호와 노선 등이 아직 익숙치 않다 보니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다.

빨리 지하철역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아니, 버스들이 오기는 하는데 번호가 낯설어서 사람들이 계속 헤매고 있다. 게다가 경유지를 적은 글씨도 너무 작고, 색깔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버스 한 대가 오면 우르르 앞으로 몰렸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노선이 바뀌지 않은 버스들은 예전 번호도 조그맣게 붙여 놓긴 했지만 멀리서는 잘 안 보이니, 버스가 가까이 왔을 때 사람들이 허둥댈 수밖에.

드디어 버스가 왔다. 또 사람들이 우르르 몰린다. 예전에는 대부분 앉아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많아서 손잡이라도 빨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앞 사람 교통카드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운전사 아저씨가 뒤에 사람들이 많으니 일단 올라서라고 재촉한다. 다시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내 차례가 돼서 카드를 갖다 댔다. 그런데 1600원이 찍히는 게 아닌가. 아니, 오늘 처음 타는 건데 왜 1600원?

사람들에 밀려서 안으로 들어온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기사 를 본 것 같다. 마지막 버스 내릴 때도 카드를 찍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요금이 더 부과된다고. 어제 별 생각 없이 마지막 버스에서 카드를 찍지 않고 그냥 내렸던 것 같다. 갑자기 아침부터 짜증이 난다. “교통개편 혼란은 서울 시민 무관심 탓”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더 화가 난다.

▲ 버스에 있는 안내문에는 환승 할인 말고 다음날 더해지는 요금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 김미정
아니, 버스나 지하철 타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또 몰라. 하루 아침에 교통체계를 바꿔 놓고, 그것도 무리하게 일정을 맞춰서 밀어붙이고 우리 탓이라는 말을 하다니. 솔직히 사람들이 바뀐 체계에 대한 정보를 서울시 홍보 정책을 통해 얻었나? 언론 보도가 나오고서야 그나마 좀 알았지. 정책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바뀐 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바뀐 게 오죽 많아야지.

지하철역이 가까워 지자 사람들이 일찌감치 뒷문으로 향한다. 나중에 내릴 때 한번에 몰릴 걸 생각해서 미리 단말기에 카드를 찍으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팔만 쭉 뻗어서 카드를 갖다 댄다. 참, 대중교통 이용이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 될 줄이야.

교통카드도 꺼내서 손에 들고 있어야지 안 그러면 귀찮아진다. 가방에 넣다가 다시 내릴 때 꺼내야 하니까. 짐이라도 많은 날엔 그리고 오늘처럼 비가 와서 우산을 들어야 하는 날엔 더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카드를 찍었는데도, 버스가 멈추자 뒷문 쪽은 완전히 엉켜버린다. 평소 같으면 한번에 두 사람씩 내릴 수 있고 사람이 빠지는 속도도 빨랐지만, 이제는 카드 단말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한 줄로 내려야 한다.

게다가 카드 인식이 잘 안 되면 더욱 느려질 수밖에. 안 그래도 내 앞의 학생은 두 번이나 “카드를 다시 대 주십시오”라는 말을 듣더니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휙 보고는 그냥 내려 버린다. 내일 아침이면 요금이 두 배가 될 텐데.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정말 좋아지기는 하는 걸까?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오늘 오는 곳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예전에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던 요금을 생각하면 내가 내는 요금은 적어졌거나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더 불편해졌고, 좋아진 것을 모르겠다.

물론 아직 체계가 바뀐 지 얼마 안된 건 사실이지만,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개편을 밀어 붙인 서울시를 생각하면, “정착이 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디를 믿고 참으라는 건가.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교통체계 개편 후 요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친구(석촌->홍대)는 400원 가량 올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하철 정기권이 도입되면 자기는 2호선만 이용하기 때문에 좀 저렴해진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일산에 사는 사람은 버스를 타고 오는데 경기도 버스를 타면 요금은 그대로라고 한다. 환승을 안 하기 때문에 추가 요금이 안 드는 것이다. 역시 다행이다. 또 다른 사람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200원 정도 올랐다고 한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불만이 단순히 요금 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살림살이도 어려운데 교통비가 또 오른 것이 큰 타격이 되기는 하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야기될 문제점을 알고도’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견 수렴은 전혀 없이’ ‘오히려 반대 의견은 무시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무리하게’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 내릴 때 뒷문 오른쪽에 붙어 있는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려는 사람들로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 김미정
서울시는 버스개편 홈페이지에서 현재 버스의 문제점으로 다음 몇 가지를 들었다. ▲버스 노선이 복잡하고 ▲운행 시간을 예측할 수 없으며 ▲느리고 답답하다 ▲불안한 난폭 운전 ▲버스의 집중 현상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버스 노선이 과연 합리적으로 바뀐 걸까? 엊그제 부모님과 종로로 영화를 보러 갈 일이 있었다. 개편 전에는 집(신림)에서 종각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런데 그 버스의 노선이 축소되면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지하철을 탄 후 2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 외에도 사당동으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다.

바뀐 노선을 보며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우리 동네에서도 도심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정말 그렇다. 신촌, 종로, 강남 뭐 어디 한 군데쯤은 버스 한번으로 연결이 되면 좋을 텐데. 요금은 크게 늘지 않아도 노선이 짧아지고 갈아타야 하는 횟수가 늘면서, 버스 타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다. 우리 집이 너무 구석에 있어서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배차 시간도 불만족스럽고, 버스 기사들이 계속 노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야기되는 위험도 난폭운전만큼이나 걱정스럽다. 돌아다녀본 지 며칠 안 됐지만 그다지 버스가 빨리 다니는 것 같지도 않다.

바뀐 교통 체계가 과연 현재 버스의 문제점 중 어떤 걸 해결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결함을 알고도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이 역시나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하자, 그저 “죄송하다”고 말로만 사과하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열심히 외워둔 번호의 버스가 보인다. 카드를 꺼내 들고 버스 탈 준비를 하려는데, 버스는 서지 않고 저 앞쪽으로 달려간다. 나와 함께 그 버스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어, 어” 하며 앞으로 열심히 뛰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서.

▲ 바뀐 정류소를 모르고 예전 위치에 서 있다가 버스가 지나쳐 가자 달려가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 이 사진은 비가 그친 후에 찍었다.
ⓒ 김미정
한참을 달려서 겨우 버스에 오르니, 운전기사가 “이제 버스 여기서 타세요” 한 마디 툭 던진다. 나중에 살펴 보니 예전 버스 정류소에 버스 타는 곳이 옮겨졌다는 흰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이왕이면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눈에 띄게 표시해 놨으면 좋았을 것을. 비까지 오니 더욱이 곧 떨어지게 생겼다.

이런 걸 쉽게 사람들의 무관심이라고 해도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적극적인 홍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신속하게, 쉽게 알 수 있도록 홍보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바뀐 교통체계가 합리적이라고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면 홍보라도 철저히 했어야 한다.

[기사모집]확 바뀌는 대중교통, 당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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