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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있는 박래근씨
힘겹게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있는 박래근씨 ⓒ 권윤영
"술 생각이요? 왜 안 나겠어요. 무지하게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술 한 잔 들어가면 난 죽는다는 생각으로 참고 있어요. 10년 단주한 사람들도 한 잔 들어가면 본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 알코올 중독이거든요."

햇볕이 제법 따갑다. 따사로운 햇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박래근(44)씨는 구슬땀을 흘리며 시장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마 위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도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채소 도소매를 하고 있는 그는 인생을 새로 시작한 사람처럼 의욕이 넘친다. 사실 그렇다. 그는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대부분 시장 사람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격려해주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도 한다. 그는 요즘 180도 새 사람이 됐다.

알코올 중독. 지난 20여 년을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왔다. 술을 마시고는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하고 다녔을 정도였고 시장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30대를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채소 도소매업을 하고 있다.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채소 도소매업을 하고 있다. ⓒ 권윤영
기름 3통 값이 없어서 인근 은행을 털었고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교도소에 첫 입방을 하게 됐다. 그 후로 지금껏 열여덟 차례나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렸다. 참으로 굴곡 많던 지난 세월. 어디서부터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걸까.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는 대전과 청주를 오가며 수협공판장 중매업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불행은 뜻하지 않게 한꺼번에 닥쳤다. 오징어 값 폭락으로 하던 일이 실패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85년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얼음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일은 번번이 잘 되지 않았고 인생의 쓴 맛을 느끼는 만큼 술 먹는 횟수와 양도 늘었다. 평균 소주 12병은 기본이었을 정도. 술 취했을 때는 시장에서 그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 시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날도 잦아졌고 건강도 악화됐다.

"정신병원에도 3번이나 입원해 있었는데 전부 실패했어요. 처음에는 모진 마음을 먹고 안 마시려고 하지만 술을 입에 안 대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힘이 들었습니다.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었죠. 교도소나 병원에서 나와서 현실에 부딪쳐보면 저는 항상 동떨어진 삶을 사는 이방인 같았습니다."

지난 1년 간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금단현상과 심한 고통들을 이겨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자활훈련에 임했다. 그동안 자신 때문에 고통 받은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여동생은 그의 수발을 다 들어줬고 자신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들, 딸은 지금껏 부모없이 자라야 했다.

현재 박씨는 건물지하 창고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박씨는 건물지하 창고에서 생활하고 있다. ⓒ 권윤영
"전 학비 10원도 보태주지 못했어요. 지들이 알아서 컸지요. 아들은 초등학교 때 한번 보고 지금껏 못 만났고 딸은 얼굴 못 본 지 4년쯤 됐어요. 얼마 전 쌍둥이를 낳았다던데 손자 얼굴도 못 봤습니다. 자식들이 너무 보고 싶지만 지금 제 처지가 이러니 만날 엄두가 안 나네요."

그가 조그만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아들과 딸이 살고 있는 주소를 읽기 시작했다. 아들 사는 주소를 며칠 전에야 알았다는 그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주소만이라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보고 싶을 때마다 수시로 꺼내 읽어본다는 그가 "제가 볼 때는 우리 딸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뻐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기에 미안한 마음 가득하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온다.

"아빠, 술 마시지 마세요."

그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했던 어린 딸의 외침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두 달 전 대전 오정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야채 도소매를 시작했다. 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으로 나오는 20만원을 매달 아끼고 아껴 2백만 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25만 원짜리 오토바이와 50만원하는 트럭을 장만했다. 그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수년째 그를 지켜보던 시장 사람들이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는 다들 놀랐다.

낮 12시부터 장사를 시작해 밤 9시까지 일을 하는 그는 현재 집도 절도 없는 상황. 시장 건물 지하에 있는 기계실에서 세수하고 샤워를 하고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시멘트 바닥 깔린 창고에서 매트리스 하나 놓고 지친 몸을 눕힌다.

그의 꿈은 지금 하는 작은 채소 가게를 '청산유통'이란 상호로 키우는 것. 청산은 자신의 고향인 충북 영동의 지명에서 따왔다. 3년 전부터는 옥천 행복의 집에 먹거리를 나눠주는 봉사를 실천하고 있기도 한 그는 언젠가는 양로원을 설립하고 싶단다.

왜 굳이 양로원이냐고 물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편하게 모시지 못했으니까요. 부모님 대신에 여러 어르신들을 편히 모시고 싶어요."

이내 말라가던 그의 눈가가 부모님 얘기를 하자 다시금 촉촉이 젖어들었다.

"떳떳한 아빠가 돼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언젠가는 자식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날이 오겠죠."

그의 나이 마흔 넷. 그는 다시금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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