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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태, 송상숙 부부
권순태, 송상숙 부부 ⓒ 권윤영
매일 오전 10시 30분경, 대전의 한 아파트 어귀에는 어김없이 오토바이 한 대가 선다. 90cc의 작은 오토바이지만 그 안에서 줄줄이 실려 나오는 물건들이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권순태(46), 송상숙(41)씨 부부는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물건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검은쌀, 보리, 콩, 좁쌀 등 각종 곡물이 두 자루 가득 이고 상추, 고추, 호박잎 등 채소 등이 한 가득이다.

오토바이 앞의 바구니, 뒤의 짐칸에서 내린 부식 재료가 끝인가 보다 했더니, 의자를 들치자 그 안에서 한 아름의 먹거리가 또 나왔다. 권씨 부부의 몸무게만도 150kg이고 먹거리들은 200kg가 넘으니 90cc 오토바이에 실린 양은 300kg가 족히 넘는 것이다.

먹거리들을 모두 내려놓자 순식간에 난장이 들어섰다. 각종 곡물과 채소들을 보고는 동네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먹거리를 사기 시작한다. 이들이 난장을 펼치는 날은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은 대전 오정동 신동아 아파트에서, 목요일에는 오류동 삼성 아파트에서 먹거리를 풀어놓는다.

“콩, 팥, 좁쌀은 물론 상추, 고추 등도 직접 농사지은 거랍니다. 전부 다 국산이냐고요? 수입한 곡물들도 있어요. 수입 곡물도 함께 파는 이유는 국산 곡물하고 가격, 품질비교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죠.”

초창기에는 국산품만 판매했지만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다고 돌아서곤 했다. 고심 끝에 이들이 생각해낸 대안은 수입품도 갖다 놓는 것. 함께 놓으니 눈앞에서 바로 비교가 가능했고, 장사가 곧잘 됐다.

90cc 오토바이에 싣고 온 먹거리들
90cc 오토바이에 싣고 온 먹거리들 ⓒ 권윤영
오토바이 의자 속에도 먹거리가 나왔다
오토바이 의자 속에도 먹거리가 나왔다 ⓒ 권윤영

이들 부부가 장사를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 권씨가 사업을 실패하자 살 길이 막막했다. 그 당시 아내는 막내를 임신 중이었지만 병원에 갈 돈도 없을 정도로 혹독한 시절이 계속됐다. 그런 이들에게 다시금 살 길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도토리였다.

“그 당시 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산에만 다녔어요. 몇 달째 산에 다니며 도토리를 주워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보니 몇 가마가 되더라고요.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아내와 도토리묵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은 대전역 앞이었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를 들쳐업고 도토리묵을 팔기 시작했다. 의외로 잘 팔리기도 했고, 다시금 살아보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새롭게 희망을 찾은 그들에게 무주에서 농사를 짓던 권씨의 부모님이 자신들이 농사지은 것을 팔아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곡물과 채소 장사를 시작한 것이 어느덧 4년을 넘겼다.

대전역에서 옮겨와 4년째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단골도 늘었다.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전화해서 갖다 달라고 부탁하는 손님도 있다. 비나 눈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더워도 나오고 아무리 혹독한 추위에도 장사를 한다. 자신들을 기다리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콩 껍질을 벗기면서 담소를 나누는 권씨 부부.
콩 껍질을 벗기면서 담소를 나누는 권씨 부부. ⓒ 권윤영
“장사를 하면서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한 겨울에 아기를 들쳐업고 장사를 하고 있으니 걱정해주던 사람도 많았고, 옷을 갖다 주던 사람도 있었답니다. 일부러 사주는 사람도 있었고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권씨 부부들의 인심 또한 후하다. 수북한 덤은 기본이고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다음에 갖다 달라며 물건을 내준다. 씀바귀를 찾는 동네 아줌마에게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으니 돈을 내지 말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기도 한다. 권씨 부부가 펼친 난장은 훈훈한 인심이 오고가는 곳이기도 한 것. 때로는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힘들 때 태어난 막내는 이제 다섯 살이 됐다. 한겨울 추위에 밖에서 고생한 탓에 지금도 겨울이면 동상으로 고생을 한다. 이들 부부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리다. 고생도 많았고, 서러움도 많았던 지난 세월. 하지만 권씨 부부의 얼굴 속에서 힘든 내색은 찾아볼 수 없다. 함박웃음만이 가득하다.

ⓒ 권윤영
ⓒ 권윤영
무주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은 작물도 판매를 하지만 자신들이 작은 텃밭에 고추, 상추, 도라지 등을 직접 재배하기도 한다. 장사를 나오지 않아도 채소를 재배하느라 분주한 요즘, 다시금 행복의 파랑새를 찾은 권씨 부부.

“예전에는 사는 게 지겨웠는데 지금은 편안해졌어요. 첫째랑 둘째도 이제 중, 고등학교에 다니고 막내는 어느새 다섯 살이 됐죠. 지금 둘째가 중학교 1학년인데 초등학교 다닐 때는 꼴찌에서 세 번째 했거든요. 지금은 반에서 17등을 해요. 얼마 후면 기말 고사인데 10등 안에 들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러면 애 아빠가 선물로 5천원을 준다고 했죠.”

송씨는 아들이 너무나 신통하다며 자랑을 한다. 학원을 보내지 못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보냈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다.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삶이지만 별 탈 없이 자라주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장사를 하러 나와 있는 이 순간도 고단함을 떨쳐버릴 수 있다.

“큰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돈벼락이 떨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 일 없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지금처럼 화목했으면 합니다. 이런 게 바로 행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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