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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희씨가 배달할 반찬을 자신의 승용차에 옮겨 싣고 있다
원양희씨가 배달할 반찬을 자신의 승용차에 옮겨 싣고 있다
"힘 빼지 말구 기다려요. 내가 빼 줄게."
포개진 그릇을 빼려고 여성봉사자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도시락 나르던 일 손을 멈춘 원 팀장의 손길이 닿자 힘없이 그릇이 빠졌다.

오후 1시가 지나며 아침부터 북새통이던 반찬 만들기 작업도 마무리되는 듯했다. 봉사자들은 도시락 메뉴인 두부 부침. 소불고기. 도토리묵 등 보기만 해도 입맛 도는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다.

봉사자들은 쉴 틈도 없이 "여름에 두부는 조심스러워요. 노인들은 반찬을 아끼는 습성이 있어서…"라며 메뉴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원 팀장은 "노인들의 반찬은 딱딱하거나 간이 짜도 안 되기에 메뉴를 짜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지요"라고 나름대로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메뉴는 미리 짜지만, 갑자기 가격이 폭등하는 등 물가에 변동이 생기면 시장조사를 통해 저렴한 품목으로 대처하는 것도 원양희씨의 몫이다. 여전히 핸드폰으로 "뭐라고요. 뭐가 없다고요" 하며 일 처리하는 과정 중에 빚어지는 잔업무를 해결하는 것도 언제나 원양희씨의 몫.

한 봉사자가 "수저 잡은 손이 떨리고, 기름 냄새에 지쳐서…"라며 맥을 놓고 앉아 있었다. 원 팀장은 벌떡 일어서서 서슴없이 여성봉사자의 어깨를 주무르며 힘내라고 격려한다.

재가 도우미 문영희 회장은 "남성 도우미 일곱 명 모두가 배달이지만, 원 팀장은 기동성과 순발력으로 물품조달과 시장조사며 남들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총괄하지요. 배달에 공백이 생겨도 메꾸는 것은 원 팀장인걸요"라며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임을 강조한다.

물건을 고르고 가격을 흥정하며 깎는 솜씨가 베테랑인 원 팀장은 틈나는 대로 시장 조사를 한다. 노인들을 위한 먹거리를 만들다 보니 요모조모 따지게 되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사랑의 호스피스 봉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감정의 기복.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말기암 환자가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차다.

원양희씨는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후, 1년 전부터 안양 호스피스에 소속돼 사랑의 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1~2회 메트로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그가 펼치는 사랑은 헌신적이다.

임종 직전의 남성 말기암 환자들을 깨끗이 목욕시키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몫이다. 환자들과 대화 중에도 그의 손은 욕창방지 마사지로 쉴 틈이 없다.

죽음을 예견한 환자들은 "왜 하필 나란 말이냐. 6개월밖엔 못 살고 곧 죽을 목숨인데…"라며 분개하고 때로는 통사정도 한다.

봉사자의 전송을 받으며 배달을 떠나는 원양희씨.
봉사자의 전송을 받으며 배달을 떠나는 원양희씨.
그는 격한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직도 6개월이나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하고 조심스럽고 잔잔하게 위로 한다. 이렇게 서너 달이 지나면 환자들은 마음의 분노가 사그라들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할머니 환자들은 주방에서 남은 밥으로 손수 식혜를 만들어 봉사자들을 대접한다.

서로 끈끈한 정이 쌓여 훈훈한 사랑으로 가슴 뭉클하게, 묻어날 때면 환자들은 모든 고통을 잊고 "꼭, 천국에 와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낀다. 그는 환자분들이 다른 봉사자를 제쳐두고 자신을 찾았던 환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 두고두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1365콜 봉사, 장애인의 도우미

매주 화요일 호스피스 봉사가 끝나는 시간,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이 아무개(48세) 주부를 평안동 집까지 수송한다. 후천성 하반신 마비로 홀로 사는 주부의 가정 도우미까지 자청하는 원양희씨다.

3년째 세탁기를 돌려서 빨래를 널어주고,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일까지 척척이다. 그 주부는 벽을 짚어야만 간신히 일어서고 누울 정도의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부흥동 새마을 총무

'학의천 살리기 운동' 때는 앞장서서 긴 장화를 신고 역한 냄새 진동하는 하천 쓰레기와 부유물 제거했다. 산업도로나 버스 승강장, 구름다리 위를 가리지 않는다. 물 청소를 할 때는 제일 먼저 팔을 걷고 호스를 잡는다. 새마을 행사로 불우이웃 돕기 일일 찻집을 운영하고, 알뜰 바자회 수익금으로 솔선수범해서 어려운 이웃의 김장 담가주기에도 앞장선다.

6월부터 10월까지 동네에서 오토바이에 방역기를 부착하고, 해충방제 활동을 한다. 허연 연기를 내뿜으며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면 아이들이 신명나게 그의 뒤를 따라 달린다. 그는 부흥동의 크고 작은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재원이다.

새 일터, 그리고 자원봉사

강원도 홍천 출신인 원 팀장은 가난했던 학창시절 사회 사업이 꿈이었다. IMF무렵 근무했던 회사의 부도로 실직, D정기화물에 취업했다.

밤 12시에 출근해 아침 8시까지 밤길을 달려온 화물차의 하역 작업을 돕는 반장이다. 초창기에는 밤 11시 출근해 다음날 4시에 퇴근할 만큼 고된 중노동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뭐 다른 일은 없을까" 하고 생활정보지를 보다가 '반찬 배달 차량봉사자'를 찾는 광고를 보고 자원봉사센터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7년째 목요일마다 천직처럼 봉사를 하면서도 그가 빠진 날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큰 돈으로 헌금은 못해도, 꿈이고 소망이었던 봉사활동은 늘어나는 재산만큼이나 그를 행복하게 했다.

자원봉사의 이모저모

재가 도우미팀에서 원 팀장은 어려운 독거노인에게 단순하게 반찬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뭐 어려운 일은 없나" 살피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아이디어를 공모,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낡은 전구 교체며 고장난 가전제품을 발견하면 즉시 수리나 교체까지 해주고, 미용 봉사자를 인솔하여 어려운 이웃의 가려운 곳을 적절히 긁어주는 원 팀장.

병들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자녀처럼 오근자근 말벗이 되는 사람이다. 수해지역이나 농촌 일손 돕기를 떠날 때는 아낌없이 월차 휴가를 쓸 만큼 자원봉사 하는 날은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하루다.

행복이 싹트는 가정

부흥동 부영 아파트에 사는 원 팀장은 부인 김화순(45)씨와 3남매를 두고 알콩달콩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빠를 닮았는지 이들 3남매는 요즘 아이들과 다르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봉사 활동에 더 관심이 많다.

큰딸 미연(대학 2년)씨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아빠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배달했다. 둘째 이슬(고2년)이도 초등학교 때부터 도시락 배달을 했지만 학업 때문에 중단한 상태다.

큰딸이 하던 일을 아들 종성(초6년)이가 이어 받아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부인을 도와 요리는 물론, 청소며 빨래까지 척척 해낸다.

올곧게 자란 자녀들은 자기 일은 스스로 처리한다. 부인은 늘, 자기 몸은 뒷전이고 남을 위한 봉사에 이력이 붙은 남편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원 팀장은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지만, 나로 인해 이웃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내겐 더 바랄 게 없다"며 활짝 웃었다.

자원봉사센타의 남현 국장은 "원 팀장을 지켜보며 봉사 영역을 늘릴 때마다 솔직히 불안했어요. 다 유지할 수 있을까? 지속성이 떨어지면 신뢰도가 문제라서 만류했지요. 건강하고 성실해서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대상이지요"라고 말한다.

원 팀장의 수면 시간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이 전부다. 재난이나 재해가 있을 때는 4시간의 수면 시간마저 반납한다니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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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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