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피에르 부르디외의 작품들
피에르 부르디외의 작품들 ⓒ 대림미술관
봉스와(저녁 인사)를 처음 듣던 날
우리 입에는 일격이 가해지고
빗장 지른 감옥이 넘쳤다.

봉쥬르(안녕)을 처음 듣던 날
우리 코에는 일격이 가해지고
축복은 더 이상 없었다.

꼬숑(돼지)를 처음 듣던 날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되었고
소작인은 노새 한 마리를 샀다.

프레르(형제)를 처음 듣던 날
우리 무릎에 일격이 가해지고
수치는 가슴까지 찼다.

디아블(악마)를 처음 듣던 날
우리를 미치게 하는 일격을 받았고
우리는 인분 배달꾼이 되었다.

하노르, 쥬르주르 지방 카빌족의 민중 시가
-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서 <실향> 중에서

이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는 알제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적 삶의 방식을 서서히 파괴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30여년 일본 통치로 우리 문화가 일본 문화에 좀먹었듯이, 130여년의 프랑스 통치 기간은 알제리의 전통 문화를 충분히 파괴하고도 남는다.

프랑스식의 구획 정리, 노동력 착취를 위한 강제 이주와 집단 거주, 전통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취급하여 파괴하기 등 부르디외의 사진전은 프랑스 지배자들의 폭력성을 냉정하게 고발한다. 그 고발이 피해자인 알제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배자였던 프랑스인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자신들의 폭력적 행동을 인정하고 그것을 또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신의 저서와 사진들을 통해 평생 프랑스의 알제리 문화 파괴를 드러내는 데에 주력하였다.

부르디외가 사르트르와 미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그의 사회 비판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태도가 한 몫을 한다. 부르디외의 연구들은 '사회 문화적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서구 문명으로 인해 알제리 원주민이 겪은 문화 박탈에 대한 것들을 포함한다.

대림 미술관의 안내서에도 언급되었듯이,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사회 문화적 박탈과 폭력성에 대한 그의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진들 속에 담긴 슬픈 눈의 사람들, 사라져 가는 알제리 전통 문화, 프랑스 식 건물들과 서서히 변화하는 알제리의 모습.

이것은 단순한 사진이 아닌 역사적 기록이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역사의 서글픈 과거이다. 현재에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폭력이며,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 침범과 전통 파괴이다.

과거 식민주의가 한 사회를 좀먹고 그들의 전통을 말살시켰듯이, 현재 세계화라는 이름의 괴물이 많은 약소 국가들의 고유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이러한 위기감을 항상 느끼면서 지내라고, 2002년 사망한 부르디외의 사진들은 한국의 조그만 전시실에서 주인도 없이 그 흐릿한 흑백의 조화를 빛내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