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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교직생활에서 가출하고 나서 못 찾은 학생이 한 명 있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10년 쯤 지난 어느 날, 그 학생은 교무실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 ‘×일이’입니더.”

바짝 여윈 모습에 얼른 못 알아보았는데 그 녀석이 맞았다. 나의 첫 말이,

“너 어디 있다 이제 왔니?”
“…”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서,
“너 그때 가출해서 어디 있었니?”
“가까이 있었습니더.”
“그런데 왜 연락도 한 번 안했니?”
“혹시 잡혀갈까 싶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몇 년을 살았다 아입니꺼.”

이 학생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였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무엇이 이 학생을 그렇게 꽁꽁 숨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의 학생지도 방법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돼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이 학생은 도심에 있는 시골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마을버스는 1시간에 한 번씩 다닌다. 마을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학교로 온다.

앞차는 타고 오면 1시간쯤 일찍오고 뒤차를 타고오면 지각한다. 그래서 그는 일찍 집에서 나온다. 집을 나온 다음 마을에서 나오는 아무 차를 향해서 손을 흔든다. 그러면 시골 사람들이라 대부분 손을 들면 태워준다.

그렇게 되면 평소보다 더 빨리 학교 근방에 도착하게 된다. 너무 일찍 도착한 그는 할 일이 없기에 시간을 조금 때우려고 오락실에 간다. 그는 오락 마니아이다. 문제는 그는 한 번 오락기를 잡았다하면 4시간 동안 계속한다는 것. 그러면 오전이 후딱 가 버리고 그 날은 학교를 공치는 날이 된다.

등교하지 않았음을 통보 받은 엄마는 다음날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온다. 엄마가 얼마나 열심인지 학교에서 모르는 선생님이 없다. 엄마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유명 인사다. 선생님들이 엄마를 만나면 농담을 한마디씩 한다.

“어머니께서 학교를 다니십시오. 대신 졸업장 드릴께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원도, 한도 없겠심더.”

학생에게 물어본다.
“어제는 왜 학교에 안 왔니? 또 오락실에 있었나?”
“예.”
“그럼 게임 끝나면 오지.”

선생님에게 매를 맞을까 무서워서 못왔다고 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는데, 또 참지 못하고 오락실에 가버렸으니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맞아 죽겠구나”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선생님, 이 놈은 말로 안 되는 놈이니 다리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패 주이소.”
“내 아무리 잘못돼도 아무 말 안 할터니 걱정마시고 죽도록 패 노이소.”
“엄마 말을 들은 척도 안하니 선생님만 믿습니더.”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알았습니다"하면서 어머니를 돌려 보낸다. 그때는 나도 젊은 기운이 있는데다 학생들은 잘못을 저지려면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잘못을 저질렸을 때 따끔하게 다루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나의 불찰이었다. 따끔하게 다루더라도 학생들이 구구절절 변명을 하면 담임선생님이 약간은 속아 넘어가는 여유를 보였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거의 조절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그 공간마저 빼앗아 버리니 그 녀석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잘못을 저지르게 되자, 졸업이 얼마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왜 왔니?”
“그냥요!”

‘그냥요’였다. 사라질 때도 그냥이고, 나타날 때도 그냥이다. 나는 죄책감으로 타협안을 하나 내 놓았다.

“그래, 내가 지금 3학년 담임이니 네가 다시 학교온다면 우리 반에 넣어줄께.”
“졸업장이라도 받아 가야지.”

지금은 어렵단다. 딸이 하나 있는데 미숙아라서 인큐베이터에 들어있어 돈은 너무 많이 들고 여유가 없단다. 병원비가 자그마치 1200만 원이라나?

그런데 자기가 사는 전셋집의 전세금이 겨우 1000만 원이란다. 오래간만에 도움을 구하고자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이미 가출해 버렸고 아버지는 병환 중이란다.

안 풀리는 집안은 항상 이렇다. 빈곤의 악순환이랄까, 부의 고착화라고나 할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녀석에게 누가 월급을 많이 주겠나' 생각하다보니, 학교에 한 번 올라와 보고 싶었다고. 나 역시 그에게 해줄 게 하나도 없었다. 봉투를 하나 준비했다.

“너희 어머니가 퇴학서류 작성하고 가실 때 살짝놓고 사라져 버려 돌려주지 못했는데…. 잘 왔다, 네가 대신 받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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