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규슈조고 리기성 선생님
ⓒ 장원재
규슈조고를 방문한 기자가 세 번째로 만난 이는 스물 일곱의 젊은 교사 리기성씨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금강산 가극단에서 트럼펫과 소조를 연주하다 교사가 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기자가 조선어 교육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을 걸자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줬다. 리씨는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공연을 위해 2000년에 서울, 2002년에 부산과 전주에 와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금강산 가극단은 해외에 있는 유일한 북조선 예술단체다. 오는 26일 잠실운동장에서 윤도현 밴드와 함께 공연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하는 간추린 인터뷰 내용이다.

-대학에서는 무엇을 전공했나.
"어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민족을 특징짓는 첫째가는 징표가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제가 고등학교에서부터 음악을 했는데 조선대학교에 4년 과정의 음악 학부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이 있는 문학 예술 분야를 택한 것입니다."

-금강산 가극단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대학교에서 합창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는 전체 지휘자를 맡기도 했습니다. (잠깐 생각하다) 사실, 졸업을 앞두고는 음악과 교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요. 하지만 결국 아버님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가고 싶은 길을 가라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선택했지요."

-공연 후 한국에서의 느낌은.
"2000년의 공연은 '6·15 남북공동선언'이행을 위한 공연이었습니다. 리틀엔젤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을 보면서 큰 감동을 느꼈고, 한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왜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나.
"삼년 동안 가극단 활동을 하고 나니 이제 자라나는 새세대(신세대)에게 자기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조국을 알려주는 교원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수업 스케치

기자가 참관하러 들어간 수업은 중학교 2학년 조선어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의 주제는 '팜프레트(팜플렛) 만들기' 였다.

마침 기자가 찾아간 날은 학생들이 팜플렛에 실을 홍보문을 위해 교장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는 날이었다.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분주하게 토의했다.

대부분 조선말을 썼지만 약간은 어려워한다는 느낌이었다. 농담을 할 때와 어려운 단어를 반친구에게 설명할 때 일본말이 약간씩 들렸다. 학생들이 만든 팜플렛은 일본 전역의 민족학교에 보낼 거라고 리 선생님이 보충 설명을 했다.

질문을 만든 학생들이 교장실을 찾자 교장선생님은 손님을 기다리게 하고 옆 방으로 건너와 인터뷰에 응해줬다. 질문은 대체로 학교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미리 준비해놓은 듯 학생들의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었다.
-재일교포 자녀 중에 민족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얼마나 되나.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는 일본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지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민족 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다시 민족 학교에 보냅니다."

-수업 시간에 조선말이 서툰 학생이 많던데.
"여기 아이들이 조선 학교에 다니기는 하지만 결국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들입니다. 가정에서도 일상 생활에서는 일본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학생들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은 교내에서 뿐입니다. 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최대한 능률을 키우는 것이 국어교원의 사명이지만 아직 힘든 점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항상 우리말을 사용하는지.
"일본어 수업과 영어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우리말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 아닐 때도, 우리말 사용을 일상화하기 위해 교양을 합니다. (망설이다가) 하지만, 소조(서클)활동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일본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우리말은 북조선 표준어인가.
"학생들이 배우는 우리말은 기본적으로 평양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왕래가 잦기 때문에 한국에서 쓰는 말도 조금씩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겨울소나타'같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 중학교 2학년 수업시간
ⓒ 장원재
-학생들의 조선어 수준도 천차만별일텐데,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나.
"대부분 초등학교부터 민족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기 때문에 수준차가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본 학교에서 편입을 해온 몇몇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는데 애를 먹습니다. 이들을 위해 보충 수업시간에는 일본어를 섞어 우리말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특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거의 모든 수업을 조선어로 진행하는 만큼 듣기는 괜찮은 편입니다. 다만 어휘 소유량이 결정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표현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우리말을 쓸 때 일본어로 사고하고 우리말로 옮긴 후에 말을 합니다. 말바탕이 일본어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 뜨거운 물건을 만졌을 때 아이들은 조선어 수업시간이라도 "뜨거워"라고 말하는 대신에 "아쯔이(뜨겁다)"라고 말을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가르치려고 노력을 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사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저도 가끔 일본어로 회화를 하는 이에게 꾸지람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잠깐 생각하다) 문제는 학생들이 마음 속으로부터 우리말을 아끼고 사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에서도 우리말을 쓰고 어색한 말을 고치는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저도 일본에서 나서 자란 사람입니다. 다만 다른 이들보다 조금 공부를 더 한 것 뿐이지요. 때문에 항상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올바른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국어 교원들도 항상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가끔 일본 전역의 민족학교 국어 교원들이 모여서 효과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 토론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80년대까지는 학교에서 입말체가 아닌 글말체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말할 때도,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을 했지요. 그러다 국어 교원들과 연구자들이 모여서 입말체를 가르치기로 합의해 바꾼 적이 있습니다."

-조선어 교육을 하면서 고민이 되는 점은.
"(한참 생각하다가) 일본에 사는 조선 사람들은 말 문제 하나 놓고도 고민이 많습니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이미 말했다시피 우리말을 학생들의 생활에서 어떻게 살리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또, 일본에서 나서 자란 이들이 일본에서 공부해 과연 진짜 조선말을 습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조선말을 배우더라도 졸업 후 일본 사회에 살아가면서 잊어버리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 역시 문제입니다."

▲ 학생들의 인터뷰 모습
ⓒ 장원재
-졸업 후 배운 우리말 능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배운 말을 사용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지요. 동창생들을 만나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본말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80% 정도입니다. 나머지 20%는 총련 조직에 들어가거나 교원을 하면서 우리말을 계속 썼던 이들입니다. 물론 생각이 깊은 이들 중에서는 모임을 꾸려서 계속 공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입니다. (강하게)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총련과 남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필연적으로 우리말이 생활에서 필요하게 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람을 느낄 때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단결해서 뭔가 해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민족학교 교원의 보수가 적어서 불편하지 않나.
"(주저없이) 생활에 불편을 느낀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겠지요."

-학생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나중에 졸업 후 10년, 20년이 지나서 동창회를 할 때, 조선말을 쓰면서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하도록 저도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