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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겐 웃음과 열린 마음이 최고의 선물"

[난민협약 비준 10년의 대한민국-③]유엔난민고등판무관 한국연락사무소 모건 모리스 대표 인터뷰
04.06.21 17:1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난민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건 뭘까요? 그건 돈이 아닙니다. 멀리서 피난처를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과 열린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모건 모리스 대표는 대한민국을 찾아온 난민들을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하듯이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난민 구호활동을 벌여 온 그에게 한국은 개척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건 무엇보다 한국인들에겐 '우리 주변의 난민'이라는 존재가 매우 낯설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한국에 부임한 이후 모리스 대표가 줄곧 하고 있는 일은 이 '이방인'과 '이웃' 사이의 먼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거리가 좁혀지는 만큼 불안하고 고단한 난민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난민이란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 내의 난민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에서 난민으로 공식 인정받은 외국인은 모두 열네 명이다. 한국이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게 1992년이니 1년에 한 명꼴인 셈이지만 그것도 2001년 이후 일이다. 세계 140여 협약 가입국 중 최저 수준이다. 영국의 경우 한 분기에만 2만 명 정도 신청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는 난민 신청자가 많이 늘고 있지 않은가.
"계속 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1년에 30∼50명 정도 된다. 난민(및 난민 신청자들)을 직접 접촉하는 출입국 관리국 직원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국내 난민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날씨가 난민들에게는 추운 편이고 물가도 비싸고 한국말 배우기도 까다로워 한국을 찾는 난민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 난민들이 한국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인가.
"대개 한국과의 개인적 인연이 많이 작용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경우도 있고 먼저 난민 신청을 한 친구나 친지를 좇아 들어오는 식이다. 난민들은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다. 급박하게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유엔난민기구가 6월 현재 사무소를 두고 있는 나라는 115개국. 난민협약 가입국 중 일부와 난민 현안이 있는 나라들이다. 한국사무소를 낸 건 2001년 4월. 한국사무소는 정부에 난민 업무에 관한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난민 업무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있다."

모리스 대표는 난민 인정 절차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우리 사무소가 난민 인정 결정을 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한국처럼 난민협약에 가입한 나라의 경우 난민 인정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 우리는 난민 인정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난민문제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점점 좋아지고 있고 더욱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다만 아직 인적 물적 배려가 아쉬운 점이 있다. 가령 난민 문제를 맡고 있는 정부의 담당 인력이 부족해 많은 일을 처리하기에 역부족인 듯하다."

모리스 대표는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코 많은 도움이 아니다"하고 강조했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지만 대단한 지원을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최소한의 지원'을 바랄 뿐이다."

그가 말하는 '최소한의 지원'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시내 빌딩가 숲(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 있다)에 자리잡은 이 사무소의 좁은 공간에서는 난민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얘기를 나누기가 힘들다. 난민들은 단지 돈이나 직업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섞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난민들끼리, 또 한국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참으로 아쉽다."

그 공간이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난민 인정을 받는 것이 난민들에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한국인들이 마음을 열고 우정의 손길과 작은 도움을 건네줄 때야 비로소 난민들은 한국에서 진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모리스 대표는 영국 출신이지만 사실 그에게 국적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세계를 '유랑'하면서 살아온 그의 삶 자체가 난민의 삶을 닮았다.

그는 난민 구호 일에 뛰어든 건 "나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50년대 유럽은 전쟁 후유증으로 가난한 이들이 많던 때다. 그는 아버지가 길을 가다가 불쌍한 이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돈과 따뜻한 말을 전하는 걸 보면서 자랐다.

"그때 아버지가 늘 '너는 지금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만약 우리 운명이 조금만 뒤바뀌었다면 너도 저런 사람들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죠."

20대 초반부터 사회복지사로, 유엔 직원으로 아프리카, 인도, 스리랑카, 알제리, 보스니아를 돌면서 그의 가슴 속에 늘 자리했던 것은 아버지의 그 한마디였다.

그는 한 난민 신청자의 얘기를 들려 줬다.

"한국에 와서 2주 만에 처음으로 돈을 번 날 눈물을 흘렸다더군요. 그런데 그가 운 진짜 이유는 돈을 손에 쥐어서가 아니라 2주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자기에게 먼저 말을 걸어 왔기 때문이래요."

우리 주변에 그처럼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이웃들이 있다. 또 모리스 대표와 한국사무소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 주고 아주 작은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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