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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세대는 과연 젊었을 때 무슨 음악을 듣고 자란 것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 분들은 도통 문화생활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히려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삼삼오오 모여 이따금 흘러간 신민요도 곧잘 부르시고, 이미자 디너쇼도 다녀오시곤 하니까. 그런데 부모 세대의 문화생활이란, 기껏해야 영화관에 가거나 노래방을 가는 정도가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1년에 한번 있는 조용필 공연은 티켓이 비싸다며, 막내 아들 학원비에 쓰는 게 낫겠다며 지레 포기해 버리고. 대체, 어떻게 된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이렇게도 우울한 것일까. 부모 세대는 마치, 문화적으로 정지된 세대인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야기하자면 긴데, 분명한 것은 지금의 40-50대에게도 젊은 시절 열광하던 언니 오빠가 분명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열광의 대상이 지금처럼 댄스 가수가 아니라 그룹 사운드나 포크 가수들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열정은 하수상한 시대와 좀처럼 어울리지 못했고, 선망하던 언니 오빠들은 불온의 딱지를 달고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거나, 연극 제작자나 방송인으로 정체를 감추거나, 그도 아니면 미사리로 향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부모 세대는 문화적으로 가장 불행한 세대가 되었으며, 세월이 지나고 인생역정을 겪으며 젊은 시절의 총기와 정열은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그러니까, 부모들의 문화 생활이 영 빈곤함을 면치 못하는데는 꽤나 가슴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년 전, 2003년 7월에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났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YMCA에 청개구리 홀이란 장소가 생긴 것이다. 1970년에 생겨났다가 1년만에 문을 닫은, 그렇지만 내로라 하는 포크 가수들은 하나같이 거쳐간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그 청개구리 홀이 무려 32년의 세월을 극복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 정지되어 있던 부모 세대의 문화적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젊은 시절의 활기와 생기가 되살아났다. 기타를 놓고 생업에 열중하던 고수들이 속속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

함께 모여 앉아 손뼉을 치며, 30년 전 그 시절 추억의 노래를 오손도손 합창했다. 이게 지난 1년 동안 청개구리가 해낸 일이다. 부모 세대의 잃어버린 30년을 복원하는 대단한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건 조용필 공연도, 나훈아 리사이틀도 하지 못한 일이다. 말하자면, 통기타와 청바지의 힘이랄까.

1년 동안 청개구리에서는 매월마다 주인공을 바꿔가며 12번의 공연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잊혀져 있던 옛 스타를 다시 무대에 불러낸 공연도 있었고, 고인이 된 전설적 가수를 추모하는 의미있는 시간도 있었으며, 정권의 탄압으로 부당하게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진정한 ‘고수’에게 제자리를 찾아준 무대도 있었다.

윤연선, 방의경, 이성원, 김두수, 양병집, 박영애, 김광희, 이정선, 오세은 등이 그동안 청개구리를 거쳐간 대표적인 얼굴들이다. 하나같이 우리 포크 음악계에 지울 수 없는 큰 발자국을 남긴 존재들이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음악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뮤지션들임에 틀림이 없다.

▲ 김의철
ⓒ round
첫 돌을 맞은 YMCA 청개구리의 부활 1주년을 기념해, 이번 6월에도 어김없이 의미 깊은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 주인공은 과거 포크 기타의 대부이자 현재 클래식 기타의 마에스트로로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기타리스트 김의철이다.

그는 고교 시절 만든 곡을 모아 발표한 음반 <김의철 노래모음>으로 음악계의 경탄을 한 몸에 받은 뛰어난 뮤지션이지만, ‘창법 미숙’, ‘불신 풍조 조장’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고 음악계를 떠나 있어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1년간 청개구리의 대부분 공연에서 기타 세션을 도맡으며 팬들에게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 그가 데뷔 30년만의 첫 단독 공연 장소로 청개구리를 선택한 것이다.

김의철은 이번 공연을 통해 중학교 시절 처음 작곡을 했던 동요 '뭉게구름'부터 '저하늘에 구름따라', '군중의 함성' 등 시절을 거슬러 현재의 음악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일 생각이라고 한다.

초대손님으로는 오랜 기간 양희은과 활동을 해 온 국악인 김소연이 창과 더불어 김의철과 '세노야'를 크로스오버 국악으로 선보일 예정이고, 신비의 포크가수 김두수 그리고 폴리포니 남성합창단이 우정출연 해 맑고 선 굵은 공연으로 포크 팬들을 만날 예정이기도 하다.

부활 청개구리의 1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김의철 공연은 청개구리의 지난 1년간을 돌아보고, 관객과 가수가 함께 하는 뜻깊은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공연에서 선보일 신곡과 국악과의 크로스 오버 작업은 앞으로 청개구리가 지향할 방향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 1년간 청개구리가 해낸 업적만으로도 평가받기에 충분하지만, 감추어진 과거의 복원과 ‘제자리 찾기’만으로는 아쉬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옛 추억을 되살리는 차원을 넘어 좀 더 내일 지향적인 음악을 많이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단 이야기다.

다행히도 청개구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월의 오세은 공연을 비롯, 6월의 1주년 기념 공연에서 선보일 포크와 국악이 하나되는 독특한 무대는 한국 포크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이자, 앞으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 김의철
ⓒ 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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