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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생각을 모으는 사람>
책 <생각을 모으는 사람> ⓒ 풀빛
"아저씨의 일은 생각을 모으는 거야. 예쁜 생각, 미운 생각, 즐거운 생각, 슬픈 생각, 슬기로운 생각, 어리석은 생각, 시끄러운 생각, 조용한 생각, 긴 생각, 짧은 생각. 아저씨에겐 모든 생각이 다 중요하단다. 물론 아저씨가 좋아하는 생각들도 있어. 하지만 다른 생각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내색을 하지 않는 거야."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추상적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세계로 형상화시켜 표현하면 좀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아이들에게 '생각'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꾸며내어 전달하는 책이 바로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다.

글쓴이 모니카 페트는 현재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독일의 여러 아동 및 청소년 문학상에 지명되었던 그의 대표작으로 <행복한 청소부> 등이 있다.

이 책의 화자는 한 어린이다. 그의 집 앞으로 부루퉁씨라는 괴상한 이름의 아저씨가 새벽이면 날마다 배낭을 메고 지나간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잠 속에 빠져 있는 동안 아저씨는 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가로등 옆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천천히 걸어온다.

이 아저씨를 보면서 아이는 노인들은 종종 시간이 많은 것처럼 보이며 사람들이 그림이나 도자기, 또는 가구들을 주변에 두는 것처럼 노인들은 곧잘 자기 주위에 조심스럽게 시간을 쌓아 놓는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저씨 또한 시간이 많은 한 노인네인 것이다.

이 아저씨가 하는 일은 바로 생각을 모으는 것이다. 아저씨는 생각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아무리 작은 생각이라도 아저씨의 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의 소리가 들리면 아저씨는 당장 배낭을 열고 아주 낮고 짧게 휘파람을 한 번 '휙' 분다.

그러면 그 생각이 날아와 배낭 속으로 들어온다. 어떤 생각은 천천히, 또 어떤 생각은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오다가 아저씨에게 쾅 부딪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생각은 배낭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다가 미끄러져 길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생각마다 하는 짓이 달라서 미리 짐작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많은 생각들을 만난 아저씨인데도 때로는 멈추어 선 채 생각에 잠겨 고개를 젓기도 한다. 왜냐하면 생각들이 저마다 그처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발견한 생각들을 다 주워 모으면 아저씨는 배낭을 지고 걷는다.

사람들은 생각이 깃털이나 눈송이처럼 가볍다고 하지만 꽤 무게가 나가는 생각들도 많다. 아저씨는 생각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미리 바닥에 깔아 놓은 부드러운 큰 보자기 위에 모아 온 생각들을 붓는다. 그리고는 서로 엉켜 있는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이것을 정리하는 작업은 기역 니은 순인데, 예를 들어 기역 선반에는 개성 있는 생각, 고운 생각, 거친 생각, 고지식한 생각, 기쁜 생각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니은 선반에는 나쁜 생각, 너그러운 생각, 노여운 생각, 넓은 생각 등이 존재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은 조심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각을 분명하게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아 혼동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생각들은 그게 무슨 생각인지 뚜렷하지 않을 때도 많다.

몇몇 말 안 듣는 생각들은 아저씨를 고생시킨다. 건방진 생각, 제멋대로 구는 생각, 나쁜 생각, 못된 생각들은 아저씨 손을 벗어나 책상 밑에 숨을 때가 많다. 아저씨는 이런 사고가 생기면 컴컴한 구석과 모서리를 뒤진다.

이 같은 고생 속에서도 아저씨는 아름다운 생각을 발견하는 기쁨에 모든 노고를 잊는다. 선반에 잠시 놓여 있던 생각들은 다시 아저씨 손에 하나씩 들어 올려져 커다란 대바구니 속에 담긴다.

그리고는 하나씩 꺼내져 아저씨네 커다란 화단 흙 속에 심어진다. 이슬이 내린 화단에 심어진 생각들은 아침이면 불그스름한 아침놀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특별한 꽃들을 피운다.

온갖 색깔과 향기를 자랑하는 꽃들이 아저씨의 화단에 자리하고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해가 떠오르면 꽃들은 무수히 많은 작은 조각들로 알알이 부서져 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한 줄기 바람이 일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날아오르는 꽃 조각들은 아주 작은 알갱이가 되어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날아간다.

그리고는 창문 틈으로 들어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의 이마에 가만가만 내려앉고 새로운 생각으로 자라난다.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 없으면 생각들은 줄곧 되풀이되다가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생각 모으는 사람 덕분에 우리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은 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난 아저씨가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 밤 늦은 시간에 아저씨가 내 방을 떠날 때면, 때때로 아주 조금이지만 생각 꽃의 향기를 맡은 것만 같아. 그러면 나는 스르르 긴장이 풀리며 생각이 텅 빈 채 잠이 들어."

이 기발한 상상력의 그림책은 '생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적인 것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었다는 데에 가치가 있다. 우리들 마음 속에 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이 생각 모으는 사람에 의해 수집되고 다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거듭난다는 상상.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 '그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생각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 그건 바로 생각 모으는 사람이 생각을 수집해 가고 또 꽃으로 피어난 생각들이 다시 이마에 내려앉기 때문이야'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게 엉뚱하고 꿈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생각을 모으는 사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모니카 페트 글, 김경연 옮김, 풀빛(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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