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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들이 아침 산길을 걷고 있다. 뒤로는 가네쉬 히말. 라울레비나역.
포터들이 아침 산길을 걷고 있다. 뒤로는 가네쉬 히말. 라울레비나역. ⓒ 김남희

트레킹 열 네 번째 날

장작불이 타오르는 난롯가에서 책을 읽다가 펜을 들었어. 요즘은 이 편지가 너희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긴 하지만, 그래도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써보려고 해.

요즘이야 베이스 캠프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으니까 덜 하겠지만, 예전에는 베이스 캠프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은 책을 두 세 번씩 읽고는 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

이 편지가 시간 안에 너희들에게 전해져서 단조로운 생활에 약간의 활력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 난 해발 고도 3930미터의 라우레비나(Laurebina)에 와 있어.

날씨가 좋을 땐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히말, 람중 히말, 마나슬루, 가네쉬 히말, 랑탕 리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는데, 지금 여긴 밀려온 안개로 한 치 앞도 안 보여. 요 며칠째 날씨는 계속 오전에 개고, 점심 무렵 흐려져서 저녁이면 비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어.

아침에 신곰파를 떠날 무렵에만 해도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기분까지 밝게 만들어줬는데, 이곳에 도착할 무렵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매서운 바람까지 불어대고 있어 완전한 겨울 날씨야.

게다가 숙소마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허름한 시설에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여서 어쩐지 외딴 곳에 유배당한 느낌까지 들기도 해. 날씨 때문인가, 오늘은 이상하게 사람이 그립네.

지금, 주인 아줌마가 칼과 나무토막을 들고 와 선반을 만든다며 퉁탕거리거나 스슥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어.

저 큰 칼과 도끼를 자유롭게 다루는 이곳 여자들을 보노라면, 가끔 내 자신이 육체적으로 참 무력하게 느껴지곤 해. 도시에서 살아온 대가로 내가 잃은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육체적 능력’인 것 같아.

이곳 여자들의 삶이 힘들고 고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자란 곳에서 ‘남자들의 일’이라고 아무 의심 없이 믿어져 온 일들을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일어.

참 서글픈 건, 가난하게 살아가는 곳일수록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거야. 남자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봐도, 이곳 남자들이 거리에서 빈둥거릴 때에도 여자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나무를 베어 오고,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뜨개질을 하거나 물레를 돌려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물을 길어오고…. 심지어 마을길을 보수하거나 집을 짓는 공사장에서도 남자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돼.

고사인 쿤드와 등을 마주 댄 호수 바이러브 쿤드.
고사인 쿤드와 등을 마주 댄 호수 바이러브 쿤드. ⓒ 김남희
고사인 쿤드로 가는 눈 쌓인 길을 걷고 있는 포터들.
고사인 쿤드로 가는 눈 쌓인 길을 걷고 있는 포터들. ⓒ 김남희
내가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좋아한다고, 인간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된다고 입바르게 떠들어대고는 있지만, 과연 이곳에서 이곳 여자들의 삶의 수준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면, 이 고단한 삶을 견디어낼 힘이 내게 있을 지 의문이야.

그때 내 삶을 끌어가고, 일상의 팍팍함을 견디게 해주는 동력은 무엇이 될지, 내가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워.

지금의 내게 있어 이 먼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뭘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끝없이 짐을 싸고 푸는 이 길 위에 오르도록 한 것일까?

그리고 정착할 보금자리를 찾기보다는 더 멀리 가야할 길을 찾게 하는, 이 멈추지 않는 갈증 같은 떠밀림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얼굴들을 만나고, 아직 서 보지 못한 길 위에 섬으로써,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겠다는 것. 어쩌면 이것 역시 헛된 미망일 텐데….

가끔은 이 모든 시도와 노력이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길 위에서 행복하게 깨어 있는 한,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한, 나는 쉽사리 멈추지 않겠지.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모두에게 보내며 오늘은 이만 쓸게.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일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고사인 쿤드 가는 길. 뒤로는 가네쉬 히말.
고사인 쿤드 가는 길. 뒤로는 가네쉬 히말. ⓒ 김남희
트레킹 열 다섯 번째 날

여기는 해발고도 4380미터의 고사인쿤드(Gosainkund).

오늘은 내 트레킹 사상 최고로 일찍 일어난 날이었어. 5시 30분에 일어나 햇살이 산을 비추기만을 기다렸거든.

어제는 안개와 비(나중엔 눈까지 내렸어)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산들이 오늘 아침엔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어. 가네쉬 히말과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까지….

추위에 곱아 가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밖에 서 있었어. 그리고 결심했지. 내일부터 내 기상 시간은 무조건 6시라고! 아침 햇살에 깨어나는 산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동안 왜 늘 7시에 일어났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으니까.

감자를 넣은 오믈렛과 뜨거운 우유로 아침을 먹고 7시 반에 숙소를 나섰어. 그동안에 비하면 거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을 일찍 나선 셈이지. 상쾌한 새벽공기와 가벼운 발걸음도 잠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얼마나 힘이 들던지.

이건 여태까지의 ‘고난의 행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구! 4000미터를 넘어 20킬로그램의 배낭을 멘다는 건 이런 고통을 수반하는 거라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다니까.

난 어디선가 계속 북소리가 들려온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더라구. 그 다음 길은 바위산 허리를 치고 돌아가는 덜 급한 오르막이어서 겨우 참을 만했고.

고사인쿤드에 도착하니 두 개의 호수가 나란히 맞닿아 있고, 작은 숙소 몇 채가 붙어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가장 전망이 좋은 나마스떼 호텔에 짐을 풀고, 호수가 코앞에 내려다보이는(딱 세 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바로 호수로 뛰어들 수 있어) 야외 테이블에서 책을 읽다가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오늘이 보름인데 벌써부터 저쪽 산허리에서 먹구름이 올라오는 걸 보니 달구경은 틀린 것 같아.

내일 4610미터의 라우레비나 패스를 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이야. 헬람부 트레일로 들어서는 거니까 곧 카트만두 밸리로 내려서게 될 거고. 이 트레킹이 종반에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그동안 잊고 지낸 문명의 혜택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해.

두 달 넘는 기간을 세상과 격리되어,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을 꿈꾸는 그대들은 지금 무엇을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는지?

새벽 햇살에 깨어나는 안나푸르나 히말, 람중 히말과 마나슬루. 라우레비나(3900M)
새벽 햇살에 깨어나는 안나푸르나 히말, 람중 히말과 마나슬루. 라우레비나(3900M) ⓒ 김남희
트레킹 열 여섯 째날

드디어 오늘 치러야 할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난롯가에서 차를 마시며 쉬는 평화의 시간이 돌아왔어.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어. 척박한 환경에서 캠프들을 설치하느라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너희들에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자니 왠지 어리광을 피우는 것 같아 기분이 좀 찜찜해. 하지만 나로서는 정말 긴 하루였어.

새벽 6시에 일어나 우선 뒷산을 올랐어.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짧은 구간이었지만 어쨌든 새벽 운동(!)을 했지. 아침 먹고 출발은 가뿐하게 했는데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잖아. 1시간 40분에 걸쳐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막 끝까지 오르니 바로 4610미터의 라우레비나 패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이제는 내리막이다. 신난다’ 환호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지. 중간에 찻집에서 만난 독일 아저씨들과 이스라엘 친구들이 이 큰 배낭을 메고 혼자서 걷는 내가 대단하다고 마구 치켜세우는 거야.

“대단하긴요. 힘들어서 헉헉대며 다니는데요, 뭘”이라며 짐짓 겸손한 척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김남희, 정말 대단해. 이 배낭 메고 4600미터 고개를 넘었으니 훌륭하지, 암 훌륭하고 말고'라며 자화자찬을 마구 남발하고 있었어.

패디(Phedi 3630m)에서 점심 먹을 때까지는 계속 내리막인데다가, 날도 흐리기만 해서 괜찮았어.

패디에서 곱테(Ghopte 3430m)로 이어지는 길을 내가 왜 내리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 그것도 바위투성이의 길.

배낭은 무거운데, 신발은 발목 보호가 안 되지, 길은 바위투성이….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하면서 무릎이 아파 오는 거야.

불행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다더니, 우박까지 쏟아지고…. 정말 새끼손톱만 한 얼음 덩어리들이 사정없이 떨어지는데, 30분만에 흠뻑 젖었지 뭐. 오죽했으면 큰 바위 밑에 들어가 우박이 그칠 때까지 피할 생각까지 했겠어.

‘언제 그칠 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젖은 거 그냥 걷자‘ 하고 계속 걸었더니 곱테에 도착해서야 우박이 그치네.

오늘 걸은 시간은 총 여섯 시간. 타레파티까지 두 시간을 더 갈까 하다가 그냥 이곳에 머물기로 결심했어. 어제 머물렀던 곳처럼 이 집도 영어를 못하는 부모를 대신해 겨우 초등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손님을 상대해 (돈도 받고, 주문도 받고, 음식도 나르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별로 아이들 같지가 않아.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 가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눈동자가 순진함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눈이 아니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 거침이 없고. 그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마음이 서글픈지….

하지만 또 한국의 아이들이라고 낫다고 할 수도 없잖아? 어린 나이부터 온갖 학원에 시달리며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니. 아이들이 아이답게 밝게 웃으며 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고사인 쿤드 수면에 비친 산.
고사인 쿤드 수면에 비친 산. ⓒ 김남희
큰일이다, 오른쪽 무릎이 계속 쑤셔대고 있으니. 왼쪽은 아무렇지 않은데 왜 오른쪽만 그런 걸까? 내가 배낭을 ‘우편향’으로 싼 걸까?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인데 좀 걱정이 되네.

이제 슬슬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어. 요즘 내 취침 시간은 7시 전후가 되고 있어. 좀 심한가? 다들 좋은 꿈꾸기를!

트레킹 열 일곱째 날

그곳 베이스 캠프의 날씨는 요즘 어떤지 궁금해. 이곳의 날씨는 영 엉망이거든. 그동안은 오전 9-10시까지는 날씨가 그나마 괜찮더니, 오늘은 아예 아침부터 잔뜩 구름이 끼었어. 아침은 뜨거운 우유 한 잔으로 대신하고, 7시부터 걷기 시작했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배낭을 메고 타레파티(Tarepati) 가는 길로 들어섰을 때 숲은 고요했고, 길 위에는 나 혼자였어. 비 그친 후의 맑은 공기가 숲을 떠돌고, 젖은 낙엽들과 흙에서는 싱싱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퍼지고 있었지. 그리고, 붉은 등을 매단 초록 나무들의 사열식.

아, 난 그 아침 숲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꽃 핀 나무들과 만난 거야. 어쩔 줄 모르고 숲길을 서성이다 마침내는 배낭을 내려놓고 오솔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꽃들을 바라봤어. 그리고 꿈을 꾸었지. 그리운 이들 모두를 이곳으로 불러모아 저 꽃이 다 질 때까지 함께 머물렀으면 하는 모진 꿈을.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피어나는 4월, 랑탕의 트레일은 ‘천상의 화원’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이 길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상상을 넘어서.

‘전생에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이번 생에 이토록 자주 만나다니.’ 이런 생각을 하며 그 고요한 아침 숲에서 나 혼자 꽃들과 함께 머물렀어. 먹구름만 몰려오지 않았어도 더 오래 숲에 머물렀을 텐데….

꽃길을 빠져 나와 한 시간 반에 걸친 오르막을 올라 타레파티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또 우박이 쏟아져. 결국 오늘은 두 시간 걷고 배낭 풀었어. 숙소도 마음에 들고, 이곳에서 보는 동쪽 히말라야 전망도 좋다기에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보려구.

주인 아저씨가 담아다 준 한 양동이의 뜨거운 물로 머리 감고, 씻고, 빨래까지 다 해서 널고, 엽서 몇 장 쓰고, 책 읽으면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중이야.

라우레비나 가는 길에 돌아본 고사인 쿤드.
라우레비나 가는 길에 돌아본 고사인 쿤드. ⓒ 김남희
해발 4380m의 호수 고사인 쿤드.
해발 4380m의 호수 고사인 쿤드. ⓒ 김남희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기록한 책이야. 카트만두에 돌아갈 때까지 이 책 하나로 버텨야 하는데 겨우 200쪽 남짓 남았을 뿐이어서 걱정이야. (이 책 전체는 700쪽 분량의 제법 두꺼운 책이라 베개로 쓰기에도 좋아.)

이 트레킹을 시작할 때 책은 두 권 밖에 안 가져왔는데 한 권은 이미 랑탕에서 끝냈고, 하나 남은 이 책마저 끝나가니 이를 어쩐담. 할 수 없지 뭐. 다 읽고 나면 읽은 책 또 읽어야지. 머리 나쁜 사람들의 장점은 읽은 책을 다시 읽어도 늘 처음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지.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의 ‘꿈과 희망’이라는 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설립 자체가,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의 살육 위에 이루어진 것인지 생생하게 깨닫게 돼. 인간이 피부색이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이성이라는 게 얼마나 편협하고 자의적인 것인지를 솟구치는 분노와 함께 다시 생각해 보게 돼.

인류가 주창해 온 ‘진보와 문명’이라는 틀거리 역시 허구적이고 기만적으로 느껴져 새삼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래서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수많은 의문과 의심, 분노와 체념 속을 넘나들게 되니까 진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

그동안 인디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몇 권의 책들을 읽어왔지만, 이 책처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인디언 학살’을 다룬 책은 못 본 것 같아.

지금 막 쏟아지는 눈발을 뚫고 세 명의 독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터 및 가이드 4명을 이끌고 들어섰어. 이 분들은 신곰파에서부터 얼굴이 익은 분들인데 내가 “절대로 웃지 않는 사람들(Never smiling people)"이라고 별명까지 지은 사람들이야. 왜냐, 절대로 안 웃거든! (물론 이분들은 내가 이런 불명예스런 별명을 지은 줄 모르고 계시지.)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 ⓒ 김남희
어쩌면 저렇게 화난 듯 무뚝뚝한 얼굴로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싶다니까. 독일인들이 유럽인들 중에서 표정이 좀 딱딱한 편이긴 하지만, 이분들처럼 경직된 얼굴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아.

결국 나의 고즈넉한 평화도 깨어지고, 난로 독점도 끝났어.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제법 쌓였어. 그곳에도 이렇게 눈이 자주 오는지?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날씨가 나빠도 캠프 설치 작업은 계속되는지? 궁금한 건 많은데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고…. 조금 답답하다. 다들 건강한 지도 궁금하고.

덧붙이기.

드디어 ‘절대로 웃지 않는 사람들(Never smiling people)‘이 웃었어! 눈보라 속에서 걷느라 완전히 탈진이 되어 들어온 할머니께 계속 마사지를 해 드리고, 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추위를 녹이시라고 빌려드렸거든. 고맙다며 웃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뵈니 기분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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