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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청 이진훈씨
대전 동구청 이진훈씨 ⓒ 권윤영
"우리가 먼 거리의 산을 잘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으로 통해야 하잖아요.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땡겨다 자세히 보는 것이 사주라는 것이죠. 한 가지 사물을 미세하게 보기 위해서 현미경으로 확대해야 하듯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미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점이죠."

대전 동구청 총무과 이진훈(47)씨의 별명은 '눈썹도인'이다. 30여 년간 주역 공부를 해온 그는 직장 내에서는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유명세가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지난 85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직장 내에서 카운슬러로 통한다. 직원들은 집안의 대소사, 애경사, 관운상제 등이 있으면 그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 이럴 경우 그는 공무원으로서 민원인을 대하듯 성심성의껏 인생상담에 들어간다.

"부부문제, 자녀들의 입시문제, 근심 걱정 등을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주역에 있는 좋은 이야기도 들려주고 희망도 북돋아 주고, 기운을 내라며 다독여주기도 합니다. 카운슬러 역할을 해주는 것 뿐이죠."

눈썹도인으로 통할 정도로 용하다는 그지만 여태껏 간판을 내걸고 이 일을 한 적은 없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해줄 뿐이다. 30여 년을 하다보니 고맙다며 음료수를 주거나 작은 성의를 표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무료 상담을 해주는 그도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의 운명을 봐줄 때에는 기본적 바탕에 윤리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운명을 알아보는 행위 자체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

"운명론에 심취해 순응하는 삶을 살아선 안 되고 노력하는 운명이 중요합니다. 동료 역학인들도 기본적으로 이런 일을 하면서 사명감을 가져야 해요. 윤리도덕이 없는 역학인들로 인해 오히려 아니 들은 만 못하는 잘못된 지식과 운명에 심취해서 망가진 삶을 사는 경우도 많으니 말입니다."

고교시절 갑작스레 찾아온 운명

"순응하는 운명보다는 노력하는 운명이 중요한 법이죠."
"순응하는 운명보다는 노력하는 운명이 중요한 법이죠." ⓒ 권윤영
고등학교 시절 그의 인생을 흔들어 놓는 일이 발생했다. 몸이 아팠던 그에게 소위 말하는 신들림이 내려진 것.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점을 봐주다가 주역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됐다.

"사람 얼굴만 보고 점을 보던 중 주역을 공부해서 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공부가 쉬운 것만은 아니었는데 외숙부가 철학관을 운영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외숙부에게 역학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는 끊임없이 독학으로 주역을 공부했고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다. 현재 대학에 편입해 철학을 공부 중인 그는 요즘 행복을 절로 실감한다. 그토록 하고 싶던 동양철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시대가 좋아져 무속인, 역학자가 어느 정도 인정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놀림이나 비하 발언도 종종 들어야만 했다. 그로 인해 학창시절에는 오랫동안 방황을 겪기도 했다.

공부에 매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에 평범하게 성장하지 못한 자신의 삶이 원망스러웠을 터. 10대 시절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그의 인생 화두는 '내가 왜 무속인이 됐을까', '왜 내 선택과 상관없이 이런 일이 생겼을까'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고민이었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그런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생을 살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진 못했지만 어려운 사람하고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꿈꿨습니다."

24시간 열린 공간 운영하고 싶어

훗날 퇴직후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사찰을 마련해 무료양로원을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단다. 사찰을 크게 운영하면 부패하기 마련이기에 수용 인원도 이미 27명으로 정해 놨다.

"독거노인을 모셔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같이 살고 싶어요. 24시간 모든 분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운영하면서 고민도 해결하고 대화의 광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답답할 때 이웃집 아저씨 찾아가듯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 말이죠."

사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갖기까지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교도관이던 그의 아버지는 전과자들의 자립과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그도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많이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에게 희망이 되고, 많이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점을 본다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단지 남보다 한 가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 생각을 갖기까지 마음 고생을 워낙 많이 했어요. 공무원을 그만둔 후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인 사찰을 운영하면서 자서전을 내고 싶은 소망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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