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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심이 계류중인 최명진(왼쪽)씨와 윤여범씨를 지난 16일 오후 서울 장충공원에서 만났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심이 계류중인 최명진(왼쪽)씨와 윤여범씨를 지난 16일 오후 서울 장충공원에서 만났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만약 북한군이 쳐들어와 가족들을 죽이는데도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또 남한의 모든 국민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믿게 되면 '국방의 의무'는 어떻게 하나."


지난 4월 28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여범(25)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에 윤씨는 "가족을 위해서 방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텐데 그렇게 가정해서 묻는다면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우리(여호와의 증인)의 정신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대로 최대한 노력을 하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모든 전쟁이 종식되길 바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재판장은 윤씨에게 "나도 성서를 믿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 병역거부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한다"고 밝히고 불구속 상태에서 상고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윤씨는 같은 시기에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인 최명진(24)씨와 함께 대법원에 사건을 상고해 계류중이다.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 이후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됐다. 이에 대법원도 교통정리 차원에서 윤씨와 최씨의 사건을 1부(주심 조무제 대법관)와 3부(윤재식 대법관)에게 각각 배당했으며, 최근 기초검토에 착수했다.

지난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석태 회장)' 소속의 75명의 변호사들은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법률지원에 나섰다. 그 동안 사실상 '나홀로 재판'을 받아온 이들로서는 큰 원군을 만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장충공원에서 그들을 만나 대법원에서의 판결 전망과 그간 마음 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도 똑같이 축구나 농구를 좋아하는 젊은이입니다"

우선 최명진씨는 "종교적인 양심에 의해 병역을 거부하면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왔을 뿐 우리도 다른 젊은이들과 똑같다"며 "우리들은 '무죄' 판결을 통해 병역을 기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라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서 역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 동안 충분한 논거가 없는 상태에서 판결이 내려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려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기에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병역의 의무에 대한 '형평성'을 떠나 우리들(여호와의 증인)이 묵묵히 양심에 따른 신념을 지켜갈 수 있도록 가치를 부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반면 윤여범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판결하리라고 확신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 실명이 공개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라고 여기고 (대법원 판결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든지 우리의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고 판결을 받아들이겠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 이들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있지만 봉사활동이나 다른 방법 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며 "우리 사회가 열린 마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4월말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돼 있는 사람은 471명. 300여명은 보석이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한 해 평균 600여명의 병역거부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음은 윤여범씨와 최명진씨와의 일문일답 요약.

윤여범씨.
윤여범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개인적인 소개를 간략히 한다면.
[윤여범] "1980년 생이고 부모님 때부터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신도가 되기 위한 절차를 거쳤다. 증인이 되는 것은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그런 것들을 감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수가 있었다. 성서에 나와있는 대로 불특정인 이웃의 가정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기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교 패션&텍스타일 학과를 다니다가 2학년 때 입영통지서를 받고 병역을 거부해 지난 2002년도에 구속됐다. 1심 재판을 받고 한달 후에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위로는 형이 있는데, 형의 경우는 병역거부로 군재판을 받고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최명진]"가족 모두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진리 생활을 했다. 나이는 24살(1981년생)이고 2남 1녀 중 막내로 성장했다. 제 경우도 형이 3년을 교도소에서 살다가 나왔으며, 저를 포함해 형도 전과자라는 이유로 지금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을 받고 있다. 윤여범씨와는 지난 2002년 1월 31일날 같은 구치소의 방에서 만났다."

- 언제부터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나. 또 어떤 점이 힘들었나.
[윤여범]"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병역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다른 길이 없었다. 같은 길을 걸어왔던 주위 사람들에게 교도소에 가는 것이 사회생활에 있어 장애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고민했다. 어쨌든 그런 말들을 어릴 때부터 들어서인지 마음 속에 준비를 하고있었으며 지금도 감수하고 있다."

[최명진]"군복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더구나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교도소에 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힘들었다. 교도소는 사회의 밑바닥인데, 결국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한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결심을 했다. 한편으로는 '군대를 가지 않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기여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으로 우리 사회에서 (대체복무제가) 실현되고 있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기계적인 처벌(유죄 선고)을 받아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던 점이 힘들었다."

- 병역거부에 대해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주위 친구들은 뭐라고 말하나.
[최명진]"병역 대신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믿지 않았다. 그때 친구들에게 '우리도 국방의 의무를 하고 싶고, 국민의 일원으로서 나라를 지키고 싶었지만, 양심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해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저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힘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다."

[윤여범]"양심적 신념에 따라 군대 대신에 교도소를 택한다는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없었다. 주위 친구들 중에 군대를 면제받기도 하고, 공익으로 간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입장을 말하지 않았나'는 것이었다. 우리가 총을 취하지 못하는 입장에 대해 설명했고 공감대도 형성됐다."

-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여범]"성서의 기본적인 원칙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칼을 들지 말라. 칼로 흥하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고 했다. 초기 그리스도의 행로를 보면 로마의 강제 징집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들이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계속 같은 행로를 걸어왔다. 원칙적으로 전쟁을 거부해왔다."

"전시상황에서 대체복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 비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최명진]"오태양씨의 경우 평화주의자로서 병역을 거부했다. 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해줘야 한다. 이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풍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또하나의 의무를 지키고,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명진씨.
최명진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윤여범]"병역거부자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관심이 증가했다. 일부에서 병역거부는 완전히 '면제'를 받기 위한 수혜가 아닌가 라고 이의를 제기하는데, (우리는)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른 소수자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 여호와의 증인 등 병역거부자들이 원하는 대체복무제는 어떤 것인가. 또 대체복무제가 '악용'될 우려도 있는 것이 아닌가.
[최명진]"전세계적으로 대체복무제를 많이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양로원에 가서 신체를 잘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의 대소변을 치워주는 일을 일반 복무기간보다 1.5배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3년 동안 계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면 일반사람들의 70% 이상이 병역을 기피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아 대체복무기간을 줄였다고 한다."

[윤여범]"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일부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면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군대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군대를 면제받기 바라는 사람들은 돈 있고 힘있는 사람들일 것으로 본다. 해방 이후 1만 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옥고를 치르면서 '기피'가 아닌 대신 일할 수 있는 의무 자체를 받지못했고, 국가가 주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만약 전시상황이라면 누구든지 군복무 대신에 대체복무를 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최명진]"전시상황이라고 해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징집에 대해 국민은 호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총을 잡을 수는 없다. 전시상황에 따른 처벌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윤여범]"과거의 전쟁사를 보더라도 전쟁이 났을 때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병역거부자였다. 그때 국가가 정하는 바에 따를 것이다."

- 1심과 2심을 거치는 동안 충분한 변론은 했나.
[윤여범]"2002년 2월 28일 1심 판결을 받았다. 그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례가 별로 없는 상태였다. 또 유죄를 선고받고 보석으로 나오게 된 것도 생소한 때였다. 부모님과 보석 신청을 하기로 결정하고 신청서를 냈을 때, 병역을 거부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다. 당시 재판관은 우리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보석 결정을 내려줬다.

그러나 2심을 맡은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분이었다. 우리에게 말할 기회를 줬는데, 질문하길 '북한군들이 쳐들어와 가족들을 죽이는데 손놓고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했다. 또 '남한의 모든 국민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믿게 되면 '국방의 의무'는 어떻게 하나'라고 물었다. 이는 변론의 기회를 준 것이라기 보다 단지 (재판장의) 질문에 대해 답하라는 것으로 그에 대한 답변만 했다. 그리고 또 유죄가 나왔다."

"1심과 2심 재판 과정은 나 홀로 변론... 앞선 판결에 없었다는 것이 큰 어려움"

'양심적 병역거부'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중인 여호와의 증인 최명진씨(사진 왼쪽)와 윤여범씨.
'양심적 병역거부'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중인 여호와의 증인 최명진씨(사진 왼쪽)와 윤여범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재판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나.
[윤여범]"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어떠한 선례가 없었던 점이 어려웠다. 이제는 대법원의 판결만이 남았는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재판을 받으면서 법률적인 자문을 받기도 어려웠다. 정확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즉각 내리지 않고 있는 점에서도 재판을 담당해 적극 나설 변호인이 없었던 것 같다."

-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어디에 구속 수감됐고, 생활은 어떠했나.
[최명진]"성동구치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소위 말하는 '강'자가 붙은 사람들을 만나 생활도 했다. 이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이런 곳(교도소)에 왔나'라면서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각오를 하고 (교도소에) 들어간 것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됐다. 한 달 여의 수감생활을 하면서 취장(조리실)에서 일하기도 했고, 행정업무도 보기도 했다. 사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 같은 죄인일 수밖에 없는데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아직도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평소 듣지 못했던 욕이라든지, 들으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네티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명진]"앞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 지에 대해 유무죄를 떠나 우리(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역의 의무에 대한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징역 3년이나 1년 6개월 대신에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민의 세금을 소비하며 교도소에 있는 것보다 대체복무로써 좋은 일을 하길 바랄 뿐이다.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우리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윤여범]"앞선 대법원의 판례를 보더라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무죄 사례는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서, 바뀌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소수자를 바라봤을 때 감옥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우리도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똑같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우리를 100% 이해해 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기에 좀더 열린 마음으로 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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