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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대학시절의 추억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나비표본을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명진(33) 경장은 인터뷰 내내 “저 혼자만 한 일도 아닌데, 직업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저만 부각되는 것 같다”라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에서 근무하는 그는 ‘한 경찰관의 나비표본 기증으로 대전동물원에 나비 상설전시관이 개관된다’는 식의 세간의 관심이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그와 나비와의 인연은 91년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정과 패기 넘치는 대학시절, 그는 여러 개의 동아리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나비생태 동아리 ‘사계’였다.

“동아리 활동을 이것저것 해봤지만 나비 동아리만큼 즐거웠던 것은 없었어요. 초기에는 나비 그 자체에 대한 매력보다는 선후배들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나비를 채집하는 것이 마냥 좋았습니다.”

활동적인 생활이 즐거웠던 그는 동아리 회장까지 맡아가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주말이나 방학, 때로는 수업이 없는 날을 이용해 계룡산, 속리산, 금강, 울릉도 등을 돌면서 나비 채집에 나섰다. 무더웠던 여름, 걷다가도 나비가 보이면 더위도 잊은 채 나비의 날개 짓을 쫓아 산을 뛰어다녔던 시간들.

잡은 나비는 도감을 찾아보며 종, 생태, 서식지, 특성을 공부했기에 이제는 날아다니는 나비만 봐도 학명과 특성 등을 알아차릴 정도로 나비 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동아리 회원들과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채집해 온 나비 표본이 2000여 마리. 이를 대전동물원에 기증한 것이다. 기증한 나비는 번개오색나비, 유리창나비, 울릉도 왕 나비 등 134종으로 우리나라에 사는 260여종 가운데 절반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고 학술적 가치 또한 높다.

“채집해 온 나비표본을 가지고 동아리 자체에서 매년 전시회를 했어요. 그 전에는 동아리 방에 보관돼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동아리 선후배들과 회의 끝에 동물원에 기증할 결심을 했지요.”

동물원에서도 흔쾌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현재 나비 상설전시관 공사가 한창이다. 고 경장은 동물원에 갈 때마다 나비 전시관에서 오래 머물 듯 하다. 나비 표본만 보더라도 그것을 누가 언제 어디서 채집했는지 단번에 떠오를 만큼 그것에는 그의 대학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틈틈이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비 채집에 나선다. 바쁜 업무로 인해 많은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날개 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나비만 봐도 눈길을 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추억 때문인 듯.

“가끔씩 친구들과 모여서 나비 채집을 하는데 앞으로도 종수가 늘면 기증할 생각입니다. 곧 나비전시관을 개장할 텐데, 동물원에서 관리를 잘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나비전시관을 사랑해준다면 바랄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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