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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목화 20주년 시리즈> 포스터
<극단 목화 20주년 시리즈> 포스터 ⓒ 극단 목화
라디오에선 소련 전투기에 의해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된 KAL007기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거창 출신 윤서기는 42일간의 결근에 대한 사유서를 적으며 결근의 사유가 된 자신의 미스터리 한 경험을 충청도 출신 구서기에게 이야기한다.

윤서기의 이야기는 사실과 환상이 혼재되어 마치 전설같이 들린다. 윤서기와 구서기는 이야기를 정리 재구성하면서 한국전쟁 중 거창에 있었던 양민학살과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 장면의 라디오 뉴스는 강대국의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무참히 학살당한 KAL007의 승객들과 거창의 양민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극단 목화의 <자전거(오태석 작/연출)>는 1983년 김우옥의 연출로 동랑레퍼토리에 의해 초연된 이래 87년 극단 목화(오태석 연출), 94년 예술의전당 <오태석 연극제>에서 김철리의 연출로 상연된 바 있는 극작가 오태석의 대표작이다. 올 초 극단 목화 20주년 기념공연으로 공연 된 후 6월 4일 현재 대학로 아롱구지 극장에서 앙코르 공연되고 있다.

<자전거>는 파편화 된 윤서기의 기억 속 단서를 찾아 하나하나 모자이크해 나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처녀귀신이 땅속에서 튀어나와 까무러쳤다”는 처음 이야기는 한국전쟁 중 백여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마을 사람 대다수가 제사일이 같은 ‘등기소 제삿날’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로 윤서기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윤서기의 이야기 속에는 산속에 살고 있는 문둥이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네 명의 자식을 낳아 자식들이 사람구실하며 살 수 있도록 거위를 키우는 한씨 집에 양자로 보냈다.

이 중 두 딸은 자신이 문둥이의 자식이란 걸 알고 충격 속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 중 큰 딸은 문둥이 부모의 흉한 모습과 손가락이 뚝뚝 떨어지는 문둥병이라는 천형에서 동생이나마 자유롭게 살라며 가출시킨다.

이는 한국전쟁이라는 큰 상처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한국인을 상징한다. 인민군에 붙어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윤서기의 당숙은 그 원죄로 ‘등기소 제삿날’ 사금파리로 얼굴을 그어 피를 쏟아낸다. 그것만이 자신의 죄를 씻어 낼 수 있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 또한 한국전쟁의 상처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매년 ‘등기소 제삿날’ 마다 참혹히 죽은 가족들을 추억한다. 윤서기가 ‘등기소 제삿날’ 숲에서 본 환영은 그날의 경험이 그 후손들의 유전자까지 기억되어 대대로 전해짐을 암시한다.

모든 대사가 경남 거창의 사투리로 진행되는 <자전거>는 극작가 오태석이 문학의 원석인 말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돋보이게 한다. 그는 이미 제주 4․3 항쟁을 다룬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를 통해 제주도 사투리를 대사로 사용 한 적이 있다.

무대는 간단하지만 아기자기 하다. 무대 중앙의 웅덩이는 면사무소, 개울 등으로 이용되고 그 주위를 산길을 연상시키는 소로가 둘러 있다. 높낮이가 있는 이 길은 자연스럽게 오르막 내리막을 만든다. 배우는 길을 따라 움직이고 더불어 움직임에 속도감이 난다.

조명은 사건의 중요 포인트에서 충격적인 무대를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솔매집의 방화 장면은 붉은색 조명이 충격을 주고, 중요한 장면에서 인물의 정면에서 쏟아지는 빛은 무대 벽에 표현적인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극의 음악은 모차르트의 곡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 밖에 숲에 부는 바람소리, 캐스터네츠로 만들어낸 게의 움직임, 키와 삼태기를 오브제로 이용하는 등의 실험적인 모습이 극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6월이 되면 홍역에 걸리듯 한국전쟁의 상흔이 돋아난다. <자전거>는 한국전쟁 중 좌우 이데올로기의 광기에 희생당한 사람들, 그 희생의 상처를 후유증처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특별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우리는 그 잠재된 공포를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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