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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홍어
흑산홍어 ⓒ 김규환

홍어 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미셸 위

홍어 즐기는 한국 최고의 유명인사는 누굴까? 누가 뭐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친인 김홍조옹의 가업 때문에 멸치와 인연이 있다면 김 전 대통령은 출신이 그곳이라 홍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싹쓸이한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멸치와 홍어는 두 분의 정치인생 만큼이나 치열하게 자웅을 겨뤘다. 또한 홍어마저 이규태씨에 의해 ‘정치생선’으로까지 등극하였다. 맛대 맛으로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라이벌답게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YS 때는 명절 때마다 멸치가 동나 폭등했다면 DJ는 대통령 재임할 때 단 한 척이 명맥을 근근히 이어가 흑산 홍어가 거의 잡히지 않던 상황에서도 홍어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찌된 인연인지 영남 출신인 현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재직할 때 발효된 몇 가지 해양 정책으로 퇴임 몇 개월을 앞두고 홍어 풍어 사태를 맞이한다.

홍어는 음식에 있어서 황제 자리에 군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도 씹기 편하고 씹을수록 진득진득한 밥이 토도독 쏟아져 나오는 흑산도 산(産) 홍어로 정기적으로 입맛을 돋우니 그걸 드시고 햇볕정책을 성실히 추진하여 노벨 평화상을 거머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이 그의 아들인 홍일씨다. 음식이란 게 지역풍토를 따르기도 하고 집안 내력이 되기도 한다. 홍어와 아버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아버지 식성을 그대로 빼 닮은 김홍일 전 의원은 선거 때나 지역행사 때면 고향 목포에 내려가 흑산 홍어 전문점에서 홍어 진수를 맛보았을 것이다.

작가 김주영은 소설 <홍어>를 쓴 주인공답게 홍어 대가다. 하지만 그는 작가다. 작가가 눈여겨본 건 수놈 홍어의 생태적 특성을 아버지인 인간에 대입한 측면이 강하다. 그의 작품 <홍어>를 읽어봐도 홍어 요리에 대한 탐닉보다는 숫 홍어의 무지막지한 정력에 바탕을 둔 바람기와 떠돌이 인생을 그렸다.

가수 겸 방송인 서수남씨와 탤런트 나한일씨도 뺄 수 없다. 여기에 이혜숙씨도 그 맛을 안다. 미식가 치고 발효음식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한식 요리의 진수를 아는 미식가, 맛의 대가 치고 홍어 맛을 모르면 가짜이거나 진짜에서 멀다고 할 수 있다.

홍어찜
홍어찜 ⓒ 김규환

정찬용 수석도 맛있다던 홍어탕
정찬용 수석도 맛있다던 홍어탕 ⓒ 김규환

'홍어 수석'과 만난 4월 어느 날

그런데 과거의 인물은 가고 이제 새로운 리더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장수 수석 중 한 명인 정찬용 인사 수석이다. 그는 나와 전혀 안면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전날 정기모임을 치른 뒤끝이라 쉬고 있는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김규환 기자십니까? 정찬용 수석 비서관입니다.”

단박에 알아들었지만 짐짓 모른 체 하고 재차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라구요?“

“청와대에 계시는 수석께서 김 기자가 쓴 홍어 기사를 보고 한 번 뵙자고 합니다.”

“그러시죠. 그럼 언제 뵐까요?”

“오늘 12시에 어제 정기모임 가졌던 종로3가 그 집에서….”

“좋습니다. 오시는 방법은 알고 계신가요? 5호선 3번 출구로 나오시면 바로 보입니다.”

“강남에서 차를 갖고 갈 건데요.”

“아 예, 그러시면 종로3가 대로변에서 안국동 쪽으로 직진을 하시면 조그만 사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서 좌회전을 하시면 낙원상가가 나오는데요. 돌자마자 바로 차를 세우세요. 왼쪽에 있습니다.”

내가 재야 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처럼 길거리표 홍어 회장, 홍어 박사가 되었나 보다. 조회수 2만회를 넘었던 그 글을 읽으시고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 주말을 그냥 보내기 힘드시더란다. 마침 대통령 탄핵 정국의 착잡함 속에서 뭔가 확 뚫어주는 청량제가 필요했던 걸까?

“잇몸이 좋지 않아 홍어회를 씹기가 편치 않다”고 했다. 체증도 뚫는다는 홍어, “탕과 찜을 드시면 된다”고 했다. 내가 누군가? 임기응변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사람 아닌가. 미리 홍어집에 전화를 넣어놓고 전날 술기운을 빼다보니 내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영암 출신이면서도 거창에서 오랫동안 교사와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정 수석을 대하자 나처럼 편한 삶을 살지 않은 이력이 묻어나는 듯 고생 티가 줄줄 흘렀다.

그걸로 우린 금방 친해져 토요일 오후 홍어탕과 찜에 막걸리 몇 잔을 나누며 홍어에 얽힌 이야기를 안주 삼았다. 덤으로 나는 <자랑스런 민족음식-북한의 요리>(한마당) 책을 얻었다.

삼합-홍어회, 돼지고기, 묵은김치와 막걸리를 마시면 홍탁삼합이 됩니다.
삼합-홍어회, 돼지고기, 묵은김치와 막걸리를 마시면 홍탁삼합이 됩니다. ⓒ 김규환
소녀 골퍼 미셸 위도 홍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버지 고향이 전남 장흥이다 보니 귀국할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챙겨 먹인다. 하와이 태생이 홍어를 찾는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뒤로 나자빠질 쇼킹한 이야기 아닌가. 집안 내력을 속일 수 없으니 홍어가 사람을 끄는지 사람이 홍어에 빠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향과 맛, 맛과 고향은 질긴 실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정권의 핵심은 바뀌었지만 인사수석이라는 자리에 있는 분이 홍어를 즐긴다니 나로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신이 그 곳이라서가 아니라 전통 음식을 보존하는데 고향이라는 말이 백 번 나온들 대순가. 고이 간직하고 발전시켜 오래 보존하면 그만 아닌가 말이다.

만나 홍어 한 접시에 탁주 한 잔 기울이기로 기약하고는 자리를 파했다. 촌사람 정 수석과 젊은 촌놈이 홍어라는 매개물로 만났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1400여명과의 만남은 결코 만만치 않은 홍어 덕택이다.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주선하는 홍어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푹 삭힌 홍어, 짜릿한 홍어회, 찌릿찌릿 전율을 몰고 오는 그 생선과 인연은 언제까지 이어지려나. 내일은 비릿한 바닷바람과 박하 향 가득한 홍어를 만나러 목포에 가봐야겠다.

야외에서 가졌던 5월 정기모임
야외에서 가졌던 5월 정기모임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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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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