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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 개발 현장에서 위태롭게 남은 C-1지역(붉은 선 안) 아랫 부분이 습지 보존 지역이다.
택지 개발 현장에서 위태롭게 남은 C-1지역(붉은 선 안) 아랫 부분이 습지 보존 지역이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산다운 산은 하나뿐'이라서 이름도 일산(一山)이다. 그 일산이란 다름 아닌 고봉산을 말한다. 경기도 일산의 '남산' 고봉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30일 대한주택공사가 일산2지구(25만평. 6100가구) 택지개발사업을 착공하면서부터다.

고양녹색소비자연대, 고양환경운동연합 등 고양지역 13개 시민·환경단체는 "일산2지구 택지개발 계획은 주변환경과 도로여건 등을 무시한 마구잡이식 난개발"이라고 강력 반발, 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 4년 넘게 '고봉산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2일 고봉산 공사현장을 향하는 길. 이곳에서만 10년 넘게 택시운전을 했다는 기사 한 분은 "그래도 일산을 상징하는 산인데…"라며 못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착한 현장에는 뽑혀진 나무들과 시뻘건 흙들로 뒤덮여 있었다. '고양 일대의 허파'라는 고봉산 본연의 모습은 커다란 중장비의 굉음과 뿌연 흙먼지로 인해 찾아보기 힘들었다.

환경단체 "고봉산 습지, 생태공원으로 보존될 때까지 투쟁할 것"

6월 2일 고봉산 인근 주민들이 고봉산 보전에 고양시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며 고양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6월 2일 고봉산 인근 주민들이 고봉산 보전에 고양시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며 고양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TV 김호중
이미 공사가 상당부분 진척된 상황에서 시민·환경단체들은 고봉산 남쪽 산자락 부근(C-1 지역. 1만3000여 평)을 보존해야 될 마지막 보루로 삼고 주공측의 공사를 적극 저지하고 있다.

일산구 일산2동 안곡초등학교 옆 현장에 마련된 작은 컨테이너에는 고봉산 보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소속 회원들이 밤잠을 설치며 반년 넘게 공사 강행을 막고 있다. 공동위 고혜수 회장은 "고봉산 C-1 지역은 물길이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라며 "이곳이 없어진다면 고봉산 일대의 생태계 훼손은 불 보듯 훤한 일"이라고 이 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했다.

공동위는 "산들마을 2단지 뒤편 고봉산 자락은 도심에선 보기 드문 천연 습지로 반드시 보존해야 할 지역"이라며 "주공이 습지 2000평을 보존하기로 했지만 C-1 전역(13000평)이 함께 보존되지 않는 한 습지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동위는 "이 일대가 생태공원으로 보존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14일째 릴레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2일 찾아간 C-1 지역 일대의 습지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습지는 500여 평 안팎이었는데, 관계자에 따르면 주변 지역을 포함해 2000여 평 정도를 습지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만여 평은 밤나무숲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습지 주변에는 올챙이를 잡으러 온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과 산책 나온 주민들의 모습으로 한산한 풍경이었다. 아파트 바로 옆이었건만 갈대밭 주위에는 백로 2마리가 먹이사냥에 여념 없는 모습이었다. 공동위에 따르면 이 일대 습지에는 부들, 금강아지풀, 갈대, 고마리꽃, 물자라, 송사리 등 60여 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공 "습지 보존 최대한 노력... 적법절차 따라 사업 진행할 것"

고봉산 습지에서 놀고 있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 환경단체에 따르면 고봉산 습지에는 보존 가치가 있는 60여종의 동식물이 있는 일산 생태의 보고라고 한다.
고봉산 습지에서 놀고 있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 환경단체에 따르면 고봉산 습지에는 보존 가치가 있는 60여종의 동식물이 있는 일산 생태의 보고라고 한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한편 일산2지구 택지개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주택공사는 C-1 지역에 대한 시민·환경단체들의 개발중단 요구로 인해 난처한 입장이다. 특히 C-1 지역은 이미 환경영향평가 절차와 토지보상 문제 등을 거쳐 사업승인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개발 중단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 관계자는 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C-1 지역 습지 주변 2000평뿐만 아니라, 인접 지역 3만6000평을 자연녹지로 남겨두는 등 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난개발에 대한 시민단체의 항의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99년 고봉산 일대에 대한 택지개발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오히려 난개발의 우려가 있었다"며 "고양시와의 협의를 통해 고봉산 자락 대부분을 보존하고 자연녹지·습지를 최대한 남겨두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애초에 18층 아파트로 계획된 개발계획을 12층 이하 일반분양아파트 건립으로 바꾼데 이어, 현재는 C-1 지역 중에서 4500평은 보존하고 8500평에 저밀도 단독주택 단지를 건립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공 관계자는 "C-1 지역 개발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현재 농지로 쓰이고 있는 지역을 보존 가치가 있는 습지로 볼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견해 차이"라며 "2000년 초부터 환경·문화전문가에게 조사 의뢰한 결과 사업을 진행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결정을 받았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른 사업 진행임을 강조했다.

대한주택공사는 현재 C-1지구 개발이 중단될 경우 500억원이 넘는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에 큰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소극적 태도의 고양시 "마땅한 중재안 없어 고민"

환경단체들은 고봉산 습지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지정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환경단체들은 고봉산 습지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지정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한편 고양시는 시민단체와 대한주택공사와의 논란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워낙 평행선을 달리다 보니 이견 조율에 어려움이 있다"며 "주공 측의 양보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손을 뗐다고 하지만 애초 택지개발 과정에서 대한주택공사와 공동 시행자로 분명히 사업 계획에 관여를 했으면서도, 막상 습지보존과 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시민단체·주공 양측 모두로부터 받고 있다.

고양시는 고봉산 습지 보존을 바란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대한주택공사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 고양시는 대한주택공사 측에 C-1 지역에 대한 대체부지로 농업진흥지역 4만3천여 평을 제공하거나, 대한주택공사가 맡고 있는 풍산역 입체화 도로 시행을 고양시가 대신 떠안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하지만 고양시 담당 공무원조차 공유재산 취득 승인, 중기 지방재정 계획 등과 관련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3일 시민단체-대한주택공사-고양시 3자는 고봉산 습지 보존과 관련 협의체를 구성하고, 8월 말까지인 1차 협의기간 동안 합의 사항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데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협의체 구성을 놓고도 시민단체는 C-1 지역에서 완전히 공사가 중단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해석하는데 반해, 대한주택공사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온 노력의 일환으로 합당한 협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적법 절차에 따라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협의회 운영에 난항이 예상된다.

논란의 핵심, 물길 흐르는 농지는 습지인가 아닌가

▲ 고봉산 습지에는 백로가 쉬어가기도 한다.
ⓒ2004 오마이TV 김호중
고봉산 습지(일산2지구 C-1지역) 1만3000평에 대한 보존-개발 논란의 핵심은 습지 보존 지역 2000여 평을 둘러싼 농지 8500여 평을 보존 가치가 있는 습지지역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이다.

대한주택공사는 관계자는 "2000년 초반 환경영향평가에서 이미 C-1이 환경적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주택공사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습지지역 2000평에 대한 보존과 함께 고봉산 자락 보호는 물론 자연녹지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관계자는 "고봉산 조망권 침해 문제도 당초 18층으로 계획된 아파트를 저밀도 단독주택가로 변경하는 등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며 친환경 주거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대한주택공사는 습지가 아닌 농지를 개발하는 것이고 습지 보존을 위한 방안도 충분히 세워 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에서는 "자연 습지를 보존한다고 해놓고 그 물길이 내려오는 농지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주공의 주장은 습지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공동위 고혜수 회장은 "물길을 돌리거나 지하를 통해 습지에 물을 댄다는 것은 인공습지를 조성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연습지 보존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대한주택공사의 방안이 또 하나의 '개발논리'라고 지적했다. 고 회장은 "C-1 지역은 고봉산 물길이 흐르는 마지막 자락"이라며 "산자락의 물길이 막히게 되면 습지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고봉산 전체의 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현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연구부 수석연구원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밑에 습지 2000평만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며 "이미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에서 습지전문가 분들이 나와 그 유역 전체가 원래 습지였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적인 견해로 발표했기 때문에 습지 여부 논란은 더 이상 추호의 가치가 없다"고 강조했다.

고봉산 습지가 고양 전체에서 차지하는 생태적인 중요성에 대해서 김 수석연구원은 "도시에서 가장 부족하고 중요한 습지일 뿐만 아니라, 숲의 외투인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생물 다양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전자의 창고, 보고가 된다"며 기존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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