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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 ⓒ 김남희
16일간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만에 다시 짐을 꾸려 포카라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차푸차레(Machhapuchre) 베이스 캠프와 안나푸르나(Annapurna) 베이스 캠프를 거쳐 푼힐(Poon Hill)에서 해돋이를 보고 내려오는 열흘간의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은 에베레스트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곡식이 가득 찬 곳'이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풍요의 여신'으로 불린다는 안나푸르나는 에베레스트에 비해 모든 것이 풍부해 보였습니다. 이 길에서는 나무와 꽃과 숲과 사람의 마을이 골짜기마다 들어서 있었습니다. 여행자들의 발길도 그만큼 잦았지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길 위에서 척박하고 메마르던 에베레스트의 길들이 그리워지고는 했습니다. 막막할 정도로 광활하던 그 길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그래서 꼭 그만큼 더 위대한 존재임을 아프게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물도, 나무도 부족한 그곳에서 풍부한 것이라고는 오직 추위와 희박한 공기뿐이었지요. 꼬박 2주일간 머리를 감지 못해 떡진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다녀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안나에서는 베이스 캠프를 빼고는 날마다 뜨거운 물에 씻을 수 있어 '호화 트레킹'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방마다 전기가 들어와 밤 늦도록 책을 읽을 수도 있구요. 이곳은 사람의 마을이 가까이 있고, 마을 옆으로는 울창한 대나무숲과 물기를 뚝뚝 떨어뜨릴 듯 푸른 이끼를 온몸에 감은 나무들이 가득 서 있는 숲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갓 베어낸 풀이 가득 찬 바구니를 멘 부부가 계단식 논 사잇길을 걸어가고 있다. 담푸스
갓 베어낸 풀이 가득 찬 바구니를 멘 부부가 계단식 논 사잇길을 걸어가고 있다. 담푸스 ⓒ 김남희
안나는 트레킹 코스로 개방된 지 30년이 넘었기에 소박하고 따뜻한 인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에베레스트 지역에서는 포터들에게 늘 무료로 차가 제공되고는 했는데, 이곳에서는 고작 뜨거운 물만을 내밀 뿐입니다. 거리의 아이들은 "나마스떼"를 외치고 펜이나 사탕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는 합니다. 이런 마주침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오늘 이 길을 걷고 있는 제게도 비껴 설 수 없는 책임이 있기에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각 숙소의 메뉴판 뒷면에는 여행자를 위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습니다. 산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가급적 나무가 아닌 연료를 쓰는 집을 이용할 것, 아이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줌으로써 구걸을 장려하지 말 것, 분리 수거가 되지 않는 쓰레기는 되가져 가고 일회용 물병의 사용을 자제할 것,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공개적인 애정 표현을 삼갈 것 등등….

하지만 여전히 이 거리를 걷는 누군가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플라스틱 물병에 든 물을 구입하고,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손님을 위해 장작을 때 밥을 하고 물을 끓이고 있습니다.

제게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은 '사탕'이나 '펜'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아니, 볼펜이나 돈을 요구하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일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하는 자신을 만날 때입니다. 그럴 때면 수우족 인디언 '서 있는 곰'의 글을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누구도 아이에게 '이것을 잘하면 상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것을 잘 해내는 것 자체가 큰 보상이며, 물질로 그것을 대신하려는 것은 아이의 마음속에 불건전한 생각을 심어 주는 일에 다름 아니다."

손녀는 울고, 엄마는 골치가 아픈데, 할머니는 무심하기만 하다. 지누
손녀는 울고, 엄마는 골치가 아픈데, 할머니는 무심하기만 하다. 지누 ⓒ 김남희
이제 저는 아이들과 물질을 매개로써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요? 왜 한 번 더 껴안아 주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걷거나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는 걸까요? 마음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그런 행위보다 쉽고 간편한 방법이 물질로 보상하는 것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물질을 매개로 유지하려는 게 아닐까요? 이 산길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외면하기가 일쑤입니다.

해발 고도 2170m의 촘롱(Chomrong) 마을에서 만난 일본인 토모의 가이드 비카스는 무척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더 싼 숙소를 찾아보겠다고 나서는 제게 비카스는 "100루피는 아무 것도 아닌 돈이잖아. 넌 즐기려고, 행복하려고 이곳에 왔는데 100루피 신경 쓰느라 시간을 소비한다면 불행한 거 아니야?"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100루피가 아무 것도 아닌 액수라고 말하지는 마. 단 1루피도 무시할 수 있는 하찮은 액수는 아니야"라고 항변하긴 했지만 저는 속으로 뜨끔했지요.

그렇게 말을 트게 된 그에게 "넌 종교가 뭐니?"라고 물으니 "불교"라고 대답하더니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신은 오직 하나인데 인간이 붙인 이름과 규율만 각각 다른 거야."

주인이 내온 뜨거운 물을 마시며 "이 물 공짜야?"라고 묻는 제게 "너도 아까 인정했잖아.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는 게 인생이잖아"라고 대답합니다. '어, 자식. 나이 스물에 저런 깨우침을 얻다니 대단한데!'하고 감탄했지요.

한 번은 그가 제 어깨에 손을 얹거나 다리를 툭툭 치며 이야기를 하기에 "난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이렇게 남이 몸을 건드리는 거 싫어해"라고 하니 "우리 친구 아니야?"하고 되묻습니다. 지기 싫은 저는 "우린 겨우 오늘 만났을 뿐이잖아"라고 되돌리니 "친구가 되는 데는 언제 만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오늘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동생을 돌보는 어린 소녀. 지누
동생을 돌보는 어린 소녀. 지누 ⓒ 김남희
당신, 연속탄을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제가 보이는지요? 그의 말들을 그저 튀는 재치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비카스 덕분에 식당에 모여 있던 네팔 가이드, 포터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네팔 남자들은 장남들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 공부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꿈은 포기한 채, 그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만 하다 일생을 보내는 게 네팔의 장남이라고 합니다. 장남들의 어깨가 무겁기는 한국뿐 아니라 네팔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오랜 포터 생활을 해온 한 아저씨는 "한국 남자들은 친절하고 좋은데, 술만 취하면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과 함께 묻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술에 취하면 아내를 때린다는 데 사실이냐?"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정말 곤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만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게 제 입장인데, 바깥에 나와서까지 목청을 돋구며 인정하고 싶지가 않으니까요. "그건 극히 일부야. 어느 나라에나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 정도로 대답을 회피하고 말지만 마음은 씁쓸합니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남성들 자신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산에서의 시간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흘러갑니다. 아침이면 눈을 떠 다시 짐을 꾸려 걷고, 오후가 되면 머물 곳을 찾아 들어 배를 채우고, 해가 지면 잠시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들고는 하지요. 한번 산 속에 들어오면 평균 수면 시간이 최소 10시간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산군들. 촘롱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산군들. 촘롱 ⓒ 김남희
트레킹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해 걸었습니다. 베이스 캠프에서는 왼쪽부터 히운출리(Hiunchuli, 6441m),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20m), 바라하 시카르(Baraha Shikhar, 7647m), 8091m의 안나푸르나I, 캉사르 캉(Khangsar Kang, 7485m), 타르케 캉(Tarke Kang, 7202m)과 신구 출리(Singu Chuli, 6499m), 타르푸 출리(Tharpu Chuli, 5663m)가 도열하듯 서 있습니다. 그 오른쪽 너머로는 안나푸르나III(7555m), 간다르바 출리(Gandharba Chuli, 6248m)와 마차푸차레(Machhapuchre, 6993m)가 뚜렷이 보입니다. 얼마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지 누군가 안나푸르나를 등반한다면 그 가쁜 숨소리까지 다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배낭을 내려 놓은 저는 길가에 주저앉아 저 거대한 산군들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안나의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안나푸르나I은 그 생김새도 모나지 않아 에베레스트가 주는 위압감이 없습니다. 몇 시간쯤 헉헉대며 오르면 정상에 설 수 있을 것 같은 어리석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이곳에서는 뺨에 와 닿는 바람도 한결 부드럽습니다.

당신, 혹시 알고 있나요? 인류가 올랐던 최초의 8000m가 바로 이 안나푸르나였다는 것을요. 1950년 모리스 에르족이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였지요. 그 지난했던 등반의 기록은 그가 쓴 <최초의 8000m 안나푸르나>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전 세계에서 1500만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요.

끝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산 마차푸차레는 그 모습이 마치 물 속에서 솟아오른 물고기의 꼬리 같이 생겼다 해서 '물고기의 꼬리(Fish Tail)'라고 불립니다. 이 산은 힌두교도들이 그들의 신 시바와 부인 파르바티의 신혼 여행지라고 신성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따라서 네팔 정부에서는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기에 지금껏 미등정 봉우리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네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저 산에는 신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못 오르고, 혹 오른다 해도 살아서는 내려올 수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미 저 산을 오른 몇 개의 등반대가 있는데 그저 쉬쉬할 뿐이라고 하고, 그 중에는 한국팀도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내려오는 트레커들. 뒤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내려오는 트레커들. 뒤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 김남희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도 어떤 이유로 등반이 금지된 산이 있는데, 외국 사람들이 도둑 등반을 하러 온다면 우리의 기분은 어떨까요? 설령 그것이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의 삶에 뿌리박은 오래된 믿음이기에 지켜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이곳에 와서 깨뜨리고 가는 것이 어찌 등반금지 규정뿐일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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