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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받는 원주민 모습
ⓒ 이경수
문맹률 99%의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지역의 나반 아에타 마을에도 서서히 글을 알아야 다른 종족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문맹 퇴치 사역이다.

마을의 문맹 퇴치는 외국인이 하기에는 언어적 장벽이 너무나 컸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따갈록어, 일루카노어, 잠발어, 영어 순이고, 한국인들은 따갈록어와 영어, 한국어로 의사 소통을 한다. 그러나 정작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인 잠발어는 문자가 없는 구어여서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아에타 원주민들은 '잠발어'라는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언어만 있고 문자가 없다. 미국인 마가렛 선교사가 지난 20년 동안 연구하여 그들의 언어에 맞는 잠발어 문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문자는 일반 학교나 사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지역적 한계성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지역 바랑가이 지도자들과 피나투보 선교회 이사들이 힘을 합해 영어와 따갈록어를 가르치기 위한 문맹 퇴치 사역을 시작했다. 바랑가이에서는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제공해 주고 피나투보 선교부에서는 학교로 쓰일 교회 건물과 교사의 보수를 지급해 주기로 해 1999년 4월 첫 학기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마을 촌장을 비롯하여 7살의 어린이까지 모두 20여명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이렇게 이틀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웃 마을 지미 부인으로부터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1시간 넘게 걸어 나반 마을로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40도가 넘는 열대아를 참는 것은 그나마 쉽다. 강을 건널 때는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야 하는 수치심도 견뎌야 한다. 배를 타면 30분 안에 갈 수 있지만 매주 2회씩 배 삯을 주고 다니기에는 재정이 빠듯했다.

▲ 원주민들의 교통수단인 방카
ⓒ 이경수
이렇게 힘든 6개월의 세월이 흐르고, 학생들은 점점 많아졌다. 부락 사람들의 학업에 대한 열의는 더욱 높아져졌다. 어느 날 나반 촌장인 '우딱'이 7년 동안 PDMI 선교회에서 각 부락을 위해 사용하다가 수리 중이었던 '방카(소형 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유는 자기 마을의 학생들을 정식 학교가 있는 바랑가이 '필리' 지역으로 매일 등하교를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배는 지원해 줄 수 있지만, 수송에 필요한 연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물으니 우딱은 자기 마을에서 자라나는 '꾸군(집을 지을 사용하는 풀)'을 베다가 팔아 연료를 충당하겠다고 말한다.

생계 유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마을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헌신하는 촌장의 열정에 감격해 방카 사용을 허락했다. 그러나 뱃길을 통해 공부할 날만을 기다리던 학생들과 나반 마을에는 뜻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동안 문맹 퇴치 교육을 하던 지미 부인의 큰 딸이 학교 교육 때문에 늦는 엄마를 마중 나가기 위해 나반 마을로 오던 중,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죽고 만 것이다. 이 사건으로 6개월 간 진행된 교육 사역은 일시에 중단되었고, 아에타 부락에서는 부족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어린 딸이 죽게 된 것은 그 어머니가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으로 그 부모는 친족들에게 카라바오 물소 5마리를 보상하라.'

딸을 잃은 슬픔으로 치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부모가 다른 친족들에게 배상을 하라니? 지금까지 이곳에서 사역한 국제 단체나 선임 선교사들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판결이었다.

다른 원주민 사역자들에게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에타 부족들은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는 부모의 아이가 아니라 친족 전체의 아이가 된다. 그리고 부모는 그 자녀가 결혼하기까지 잘 돌볼 의무를 지게 된다. 만약, 결혼 적령기(13세) 이전에 죽으면 그 부모는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한 책임을 친족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보상금은 돼지 한마리나 물소 한마리 정도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외국인과 함께 하는 교육 사업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물소 다섯마리를 요구했다.

PDMI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갖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긴급 이사회는 아에타 부족의 잘못된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지미 부인에게 내려진 배상 판결을 이행하기 않기로 결정 내렸다. 이후 원주민과 선교사들 사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족회의에서는 지미 부인에게 배상을 요청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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