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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전경.
경복궁 근정전 전경. ⓒ 유성호
수도 서울의 중심도로인 세종로 북쪽을 가로막고 근엄하게 자리잡고 있는 조선왕조의 터, 경복궁.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면 반드시 한번쯤은 들러야 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얼굴'이기도 하다.

국민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방송국에는 훌륭한 사극 촬영장소인 이곳은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수많은 관람인파로 들끓고 있다.

근정전 천정 단청.
근정전 천정 단청. ⓒ 유성호
벽안의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건축양식과 화려한 단청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국민들에게는 식상한 유적 정도로 비쳐지는 것은 이탈리아 로마 국민들이 콜로세움을 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복궁 속에 숨어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에 이르는 우리 역사의 부침을 생각한다면 만만한 생각으로 찾아서는 안될 것 같이 느껴진다.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북악산.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북악산. ⓒ 유성호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에 들어서면 내궁으로 통하는 두 번째 근정문이 있다. 근정문을 들어서면 경복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근정전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산세를 고스란히 받아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근정전 내부 어좌 전경.
근정전 내부 어좌 전경. ⓒ 유성호
경복궁에서 유일하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개방돼 있는 근정전은 건물 자체가 국보 제223호이다. 근정전 앞마당에는 문무백관이 벼슬 순으로 도열할 수 있도록 품계석이 박혀 있다. 이곳에서는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 최근에 보수공사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근정전은 수려한 단청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경회루 전경.
경회루 전경. ⓒ 유성호
근정전을 지나 북쪽으로 작은 문을 몇 개 지나면 바람에 비릿한 물 냄새가 묻어 온다. 그 길로 고만 고만한 전(殿)을 몇 채 끼고 돌면 1만원짜리 지폐 도안으로 유명한 경회루가 나타난다. 경회루에는 비단잉어들이 떼지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탁 트인 경회루 뒤편으로 청와대 푸른 기와지붕이 보일 듯 말 듯하다.

향원지 위에 섬처럼 떠 있는 향원정.
향원지 위에 섬처럼 떠 있는 향원정. ⓒ 유성호
경회루에는 시원한 연못과 바람, 탁 트인 시야와 궁내에서 유일한 매점이 있는 관계로 인파가 제법 붐볐다. 여기저기서 일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심조심 말하고 살그머니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얄미울 정도로 침착했다.

자경전 꽃담.
자경전 꽃담. ⓒ 유성호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겨 북쪽으로 향하면 작은 연못과 못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향원정을 만날 수 있다. 향원정은 1867년 고종이 건청궁 남쪽에 못을 파 향원지라고 이름짓고 정자를 지은 것이다. 정자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는 취향교라고 해서 이 곳은 온통 '향기'로 이름지어졌다.

왕조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 본 듯한 고목과 담장.
왕조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 본 듯한 고목과 담장. ⓒ 유성호
경복궁 내에는 이 밖에 편전인 사정전, 강녕전과 교태전 등 침전 등 건물들이 풍수지리에 맞게 배치돼 있다. 북쪽으로 계속 오르면 청와대 경호부대인 듯한 건물과 경계가 나온다. 이곳이 경복궁의 끝이다. 이 끝은 조선 역사의 끝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낀다. 이 곳은 다름 아닌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돼 화장된 터이기 때문이다.

재잘거리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곳도 이 곳이다. 굳이 관광안내원의 설명이 없더라도 또 일본어로 적혀 있는 안내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 날을 재현해 놓은 그림 한 폭만으로도 구한말 우리 역사를 유린한 일본 제국주의의 흉포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는 아무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한낮의 번잡함이 사라진 고즈넉한 고궁.
한낮의 번잡함이 사라진 고즈넉한 고궁. ⓒ 유성호
폐문 시간이 가까이 오자 관람객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사실 이제부터 경복궁을 둘러보기 안성맞춤인 시간이다. 궁의 북쪽 끝에서부터 광화문 방향으로 훑어 나오면서 아무도 없는 고궁의 나른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 바로 폐문 5분전이다.

모두 빠져나간 폐문 5분전이야 말로 고궁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다.
모두 빠져나간 폐문 5분전이야 말로 고궁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다. ⓒ 유성호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왕조의 600년을 굽어보며 자란 노목과 수많은 나인들의 옷자락이 스쳤을 법한 담벼락…. 문이 굳게 닫힌 근정전과 외롭게 서 있는 품계석. 그리고 고궁의 정적 속에 서 있노라면 귓가를 윙윙대며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우리의 역사. 아무도 없는 폐문 5분전에만 느낄 수 있는 고궁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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