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리핀에서는 여자 아이를 낳으면 축제를 열고 남자 아이를 낳으면 여자 아이 옷을 입히며 슬퍼한다. 그만큼 여성 상위 사회이다. 그들의 사고 속에는 여자는 지혜롭고 연약하지만 남자는 강한 대신 우둔하다는 선입관이 내재돼 있다.

▲ 원주민 어린이들의 유아 헌신(Dedication) 예배 모습
ⓒ 이경수
필리핀이 400년 이상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스페인 정부가 여자들에게만 사회 지도층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육 혜택을 주고 남자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요인이 문화적으로 고착화돼 필리핀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았지만 최근 재선에 도전한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것도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피나투보 화산 지역의 아에타 원주민들은 상반된 가부장적 문화를 갖고 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아는 여자를 만나도 한 마디 이상 인사를 나누면 안 된다. 친구 집에 갔다가도 친구가 없으면 비록 친구의 아내가 있어도 그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사냥을 통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원주민 남자들은 가족 중 가장 존경받는 대상이다. 남자 어른들이 결정한 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마을 촌장을 뽑을 때도 결혼한 남자들은 일반 여자들보다 투표권이 더 많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결혼에 있어서만은 여자가 우위에 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성은 가족의 가장 중요한 재산으로 취급되며 혼례를 위해 준비해 오는 신랑의 지참금(Bandi)은 온 가족이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약 부모들의 결혼 허락 없이 남녀가 야반도주를 할 경우, 남자 측 부모와 친족들은 여자 측 부모와 친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벌금을 내야한다. 또 도망간 남녀가 잡힐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부모에게 있어서 딸의 존재는 가장 귀한 재산이다. 지참금은 소나 돼지 등 부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얼굴이 미인이고 나이가 어릴수록 지참금의 액수는 올라간다.

원주민들도 이런 면에서 결혼 후 딸을 낳기를 원하는데 아들을 낳아도 쓸모가 많기 때문에 무방하다.

이들의 결혼 적령기는 13세에서 15세로 양가 부모가 혼약하면 남자 측 친족들이 한달 안에 지참금을 마련해야 하고 만약 마련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파혼이 성립된다.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가족들은 그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혼약을 할 때 신랑 측 부모에게 예비 신부가 모습을 보이는데, 부모 간에 혼약이 이뤄지면 당사자들은 순종해야 한다. 신부가 결혼을 거부하면 다시는 결혼할 수 없고 마을에서도 살기 어렵다. 신랑측 부모는 정혼 뒤 한달 안에 지참금을 신부측에 보내고 지참금을 받는 즉시 결혼 날짜를 잡아야 한다.

이들의 결혼 절차는 'Hogo'(사전 결혼 제안 단계), 'Suson'(지참금 결정 단계), 'Banhal'(결혼식)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짝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지만 지참금이 없을 때는 신부측 부모의 동의를 얻어 7년 이상 처가 살이를 한 후에 독립할 수도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