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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10시 서울역 신청사에서 시민들이 헌재의 대통령 탄핵 선고 방송을 보고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역 신청사에서 시민들이 헌재의 대통령 탄핵 선고 방송을 보고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결과다. 이제 정치권은 이를 받아들여 상생의 정치를 해야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민생안정에 신경써야 할 것이다."

서울역과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에서 만난 시민들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예상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또 약속이나 한 듯 '민생안정', '실업문제 해결' 등 정치권과 노대통령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울역 시민들 "이젠 고용창출과 민생안정"

14일 오전 10시 서울역 신청사 3층. 두 대의 TV 앞에 모인 시민들이 숨죽인 채 눈과 귀를 기울였다. 시민들은 결코 짧지 않은 두 달을 떠올리는 듯 진지한 표정이었다.

화면에서 약 30여분간의 선고문 낭독에 이어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이라고 최종 선고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금 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고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리는 시민도 보였다. "당연하지"라며 혼잣말을 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옆 사람에게 "말도 안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청사에서 만난 김경범(31· 수험생)씨는 "(3.12 탄핵가결을 보고) 정치권에 큰 배신감이 들었다"며 "이번 헌재의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헌재 결정을 예상하고 수긍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민도 있었다. 본인을 탄핵 찬성자라고 밝힌 이세화(25)씨는 "기각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탄핵에 찬성하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독단적으로 정치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정치권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시민들은 역시 여·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대구로 간다는 김가람(22·대학생)씨는 "이렇게 결정이 됐으니 여야가 모두 나라를 잘 이끌어야 한다"며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에서 특별히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조건 여당과 대통령에 반대하지 말고 무엇이 민의인지 헤아렸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 선고방송을 보고 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 선고방송을 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휴가를 나왔다는 백아무개(24, 군인)씨는 "야당은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여당은 총선 결과, 야당의 힘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함께 갈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시민들은 또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촛불행사에 참석해 감동받았다는 주두봉(58·목수)씨는 "경제를 살려서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없는 사람들을 돌아봤으면 한다"며 "부패한 정치권이 깨끗해질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강경범씨는 "국민의 대표로서 객관적으로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고 책잡힐 수 있는 말실수를 줄였으면 한다"면서 "서울역에 노숙자들이 아직까지 많이 있던데 고용창출도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말부부로 남편을 만나러 부산에 내려간다는 이유진(35·주부)씨는 "장기적으로는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등을 해야 하고 단기적으로 봤을 때 이라크 파병 등 문제는 해결했으면 한다"고 노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탄핵안 가결에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문흥모(43·개인사업)씨는 "구시대 정치인들이 많이 갈렸으니 노무현 대통령도 안일한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없애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여의도 직장인들 덤덤한 반응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발표되는 순간, 여의도 공원에는 근처 빌딩에서 나온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헌재 결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공원 매점에는 산책 나온 몇몇 시민들이 둘러서서 TV 중계 보도를 세심하게 챙겨봤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기각 결정을 어느 정도 예상해서였는지 헌재 결정이 나온 순간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근처 모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이강준(34)씨는 "이미 지난 총선 결과가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헌재 기각 결정을 예상한 것 같다"며 "소수 의견 등이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은 남지만 헌재 결정은 총선에 드러난 민의를 수용한 바람직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서 근처 상가 식당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은 오전 헌재 결정을 화제에 올리며 노 대통령 직무 복귀 이후 정국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내놓았다.

민주노동당 근처 한 식당을 찾은 직장 동료 3-4명은 "재판관 말은 왜 이렇게 어렵던지 선거법 위반 이야기했을 때는 (노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는 줄 알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무엇보다 국정혼란이 마무리되고 안정된 정국운영이 진행될 것 같아 다행스럽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 나와 같이 항의집회를 했다고 밝힌 양성철(38)씨는 "막상 헌재 결정이 나오는 날 국회 앞에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이제 다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며 "노 대통령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고 제대로 개혁과제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일찍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산책 중인 증권사 직원 박현아(28)씨는 "헌재 결정 이후에는 정치적인 이슈에만 과잉 관심을 갖는 사회 분위기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소박한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많았으면 좋겠다"며 박씨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오랫동안 집 비웠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연극인 김지숙씨 인터뷰

▲ 연극인 김지숙씨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14일 서울역 신청사에서 연극인 김지숙(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씨를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오늘(14일)부터 대구에서 열리는 제 22회 전국 연극제 개막식 참석차 연극계 인사들과 함께 서울역에 왔다고 한다.

김씨 역시 이번 헌재의 결정을 예상했고 국회의 탄핵 가결이 정치인의 미성숙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17대 국회는 대화와 토론이 우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헌재의 기각 결정을 봤는지.
"택시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선고문을 들어보니 그럴듯한 내용도 있었지만 편협한 의견도 있어 보였다. 이제 오랫동안 자리 비웠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으니 정치권은 국민의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불협화음도 없애야 할 것이다."

- 국회 탄핵안 가결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나?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거칠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것 같다. 대화와 설득으로 같이 가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설사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었더라도 탄핵할만한 이유였는지… 당초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배려가 전혀 없었다."

-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솔직히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사실 검증 없이 감정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 그렇다면 17대 국회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젊은 분들이 많아진 만큼 미래지향적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한다. 문화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서 문화 강국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 노대통령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면.
"역시 말하는데 조심했으면 한다. 난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 큰 마음으로 정치를 했으면 한다."

- 연극인으로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가 문화 복지국가 지향하는데 그 말에 비해 실질적으로 지원이나 예산이 너무 없다. 이번에 선거 때도 가장 불만이었던 게 모든 당에서 실현 가능한 문화정책 인지가 약했다. 이에 맞는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

요즘 기초예술 62개 단체들이 연대해 모임을 만들었지만 기초예술이 살지 않으면 문화복지 국가 가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번에 탄핵이 무자비하게 일어난 것도 정치문화의 결여에서 온 것 아닌가. 사회가 성장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역시 문화다. 기초예술은 산소와 같다. 우리 문화계가 고사할 위기에 와 있다. 정말 문화예술에 대한 시급한 문제인데 신경 써야 한다." / 강이종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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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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