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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들은 의원들의 도구에 불과해.”

국회를 출입하는 한 고참 기자의 이 말이 16대 회기가 끝나가는 요즘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17대 총선에서 탈락한 현역의원들이 대거 방을 빼느라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와 함께 갈 곳 잃은 보좌관들의 마음도 심란하다. 마지막 방 정리 역시 보좌관들의 몫이지만,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거취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의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밤샘도 마다않던 이들이지만, ‘낙선’이라는 현실 앞에서 모셨던(?) 의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몇몇 의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의원들은 ‘네 갈 길은 네가 알아서 가라는 식’으로 이들을 매몰차게 방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선된 의원의 보좌진 자리를 두고, 물고 물리는 암투가 의원회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낙선 의원의 A보좌관이 같은 처지의 B보좌관과 ‘동병상련의 비애’를 느끼며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A보좌관은 자신이 가게 될 것으로 거의 확정된 보좌관 자리에 대해 언급했다. B보좌관은 다음 날 바로 작업에 들어가 그 자리를 가로챘다고 한다.

A보좌관은 내게 “이런 곳이 바로 국회”라며 원망을 털어놨다. 소신 있는 정책을 내놓기 위해 땀을 흘려 왔던 이 보좌관이 냉정한 현실 앞에서 상처를 입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보좌관들은 보통 혼자서 수십여 가지의 일을 처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해당 의원과 사회로부터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 관심의 사각지대 놓인 것이다.

의원이 낙선하거나 의원이 임의로 해고를 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게 보좌관의 현 주소다. 따라서 보좌진 사이에서는 40살이 되기 전까지 내 사업을 할 수 있는 종자돈을 마련해 국회를 떠나야 한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지금 ‘정치 개혁’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의정활동의 실무를 보좌관들이 맡고 있다는 현실에 비쳐볼 때, 책임과 경험 게다가 실력까지 갖춘 보좌진들이 ‘떠난다’는 사고방식으로 업무에 임한다면,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책임감 있게 이뤄질 수 있을까.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이들의 자리보전 방안도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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