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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급식 튜브에 의지한 채 식물인간 상태를 유지해 온 테리 시아보라는 여성의 안락사 문제가 가족간의 논쟁에서 젭 부시 플로리다(부시 대통령 친동생) 주지사와 주 법원간의 공방으로 이어지게 됐다.

처음 <탬파 트리뷴>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 <올랜도 센티널> 등 플로리다 지역의 주요 신문들에 의해 보도되었던 이 사건은 10년 동안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사건은 테리가 14년 전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에 실려가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녀는 당시 의료과실로 인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채 급식튜브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는 신세가 됐다. 4년여가 지났는데도 테리가 깨어나지 않자 남편 마이클 시아보는 "테리가 사고를 당하기 전 입버릇처럼 인공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며 급식 튜브 제거를 주장했다. 그러나 테리의 부모 등 친족들은 이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양측은 이후로 10년동안 팽팽한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2001년, 마이클 시아보의 주장이 법원에 받아들여져 이틀동안 급식튜브가 제거된 적이 있었으나 테리가 식물인간 상태가 아니라는 새로운 반박 자료가 제시되어 판결이 뒤집혀 다시 급식이 재개됐다.

이어 2003년 10월 15일 플로리다 연방 항소법원은 테리에 대해 급식 튜브를 제거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이를 지지해 왔던 그녀의 남편 마이클의 손을 다시 들어줬다. 이 판결로 급식 튜브는 다시 제거됐다.

남편 - 친족, '튜브제거 여부' 놓고 팽팽한 대응

이에 테리의 친족은 마지막 희망을 젭 부시 주지사에게 걸었다. 낙태 반대 등 프로 라이프(Pro Life, 생명 우선)를 지지하는 공화당에 호소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테리의 가족은 웹사이트를 개설해 전국적으로 동정 여론을 유도하는 등 '테리 구명운동'을 벌여 보수 성향의 여론을 들쑤셨다.

테리의 가족이 띄운 웹사이트에는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딸이 엄마를 보고 웃고 있는 장면이 게시됐는데, 이 사진이 각 신문에 오르면서 여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테리가 살아있다는 가족들의 주장에 동조해 급식튜브 제거에 대해 반대한 반면, 전문의들은 테리의 웃는 표정이 살아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 무의식 상태에서 나온 반사 근육 작용인 것으로 풀이해 논란이 일어났다.

테리 가족의 호소와 아울러 '테리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며 전국적인 안락사 찬반논쟁이 일자 그동안 '생명 우선' 정책을 내세워 온 부시 주지사는 테리 친족의 손을 들어 주는 조치를 내렸다.

부시 주지사 "급식 튜브 제거 말라"

부시 주지사는 지난해 10월 급식 튜브 제거 판결이 내려진 뒤 6일만에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에서 몇분만에 '테리 법안'을 통과시켜 테리에게서 제거된 급식 튜브를 다시 재삽입하게 했다.

테리 법안은 '식물인간 상태자 가족이 급식튜브 제거를 반대할 경우 주지사가 재삽입을 명령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테리의 남편인 마이클 시아보는 이번에는 젭 부시의 테리 법안이 부당하다며 부시 주지사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5월 6일 플로리다 순회법원 판사인 더글러스 베어드는 "법원의 판결을 의회와 행정부가 뒤집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면서 "테리 법안은 위헌인 동시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정부의 부당한 간섭"이라고 판시, 부시 주지사이게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 등 플로리다 지역신문들은 7일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부시 주지사가 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 보도했다. 또한 부시 주지사는 지난해 통과시킨 테리법안이 졸속이라는 법조계의 비판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한다"며 한 발 빼는 듯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부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며 항고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현재 테리는 급식튜브를 통해 음식물을 투여 받고 있으며, 마이클 시아보는 부시의 항고에 대한 판결이 끝나는대로 다시 급식튜브 제거를 위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법원 "부시 주지사 간섭 말라"

미국에서는 지난 수년간 안락사 허용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 벌어져 왔으나 이번 만큼 오랜 기간이 걸린 적은 없었다. 그동안 이 사건을 맡은 재판장만 19명에 달하고 급식 중단 판결도 세 차례나 내려졌다가 뒤엎어졌다.

테리의 친족들은 "테리의 남편인 마이클 시아보가 튜브제거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는 70만불의 보험 보상금액이 테리의 병상 관리로 인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플로리다 법조계에서는 테리의 남편인 마이클 시아보의 입장에 대체로 동조하고 있다.

현재 플로리다 중서부 도시인 클리어 워터 너싱홈에 거주하고 있는 테리는 부시의 항고로 급식을 다시 제공받게 되긴 했지만 언제 다시 튜브가 제거될지 모를 처지다.

테리의 친족은 보수세력과 주지사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물러서지 않고 있으며, 남편 마이클 또한 미국 시민자유연맹 등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고 튜브 제거를 주장하고 있어 논쟁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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