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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년 단장.
홍년 단장. ⓒ 권윤영
볼링공이 핀을 모두 쓰러트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볼링을 치는 10여명의 무리. 볼링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여느 사람 못지않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불과 몇 달 전부터 볼링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이들은 대전지체장애인 하나로 볼링동호회다.

이들이 볼링을 치게 된 것은 지난 10월부터. 여기에는 어느 한 사람의 절대적인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전 지체장애인 대덕지회 봉사단 홍 년(54) 단장이 바로 그 후원자. 대전에서 현대볼링장을 운영하는 그녀는 40여 장애인 볼링 동호회에게 장소를 제공했다.

한 번 게임을 하는데 드는 요금은 천원. 일반인이 2,200원하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비용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던 장애인들도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볼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체장애인들은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는 폐쇄적 성격이 많고 술을 자주 먹더라고요. 볼링으로 그들의 건강도 되찾아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장소를 제공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편견으로 인해 손님들이 싫어하거나 난색을 표하기도 했던 것.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누구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며 손님들을 설득시켰다. 지금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찾아가 양해를 구한다.

그들이 타던 휠체어 바퀴에 끼어 있던 모래가 레일 위로 떨어져 손님들의 볼링공을 변상해 준 적도 있다. 하지만 홍 단장은 날이 갈수록 밝아져 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에 그저 만족할 뿐이다. 볼링을 시작하고부터는 확실히 장애인들의 건강도 좋아지고 음주량도 줄었다.

볼링장에서 일하는 코치가 그들을 지도해 주지만 때로는 그녀가 직접 볼링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공 잡는 것도 어려워하던 이들이 요즘엔 제법 실력도 늘었다. "장애인 올림픽 종목에 볼링이 있으니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며칠 전에는 지체장애인 하나로 볼링동호회가 한국타이어 봉사회와 결연을 맺게 됐다. 앞으로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이 다 났습니다. 후원을 받기 위해서 병원, 교회도 많이 다녀봤는데 뜻밖의 곳에서 좋은 소식이 있어서 너무 고맙고 기뻤어요."

그녀가 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1년. 지체장애인단체 사무실이 임시로 그녀의 가게 옆에 온 것이 그 계기였다. 막연히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던 그녀는 봉사단을 만들었다. 2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대덕지회 봉사단은 장애인 행사에 참여해 노력봉사를 펼친다.

홍 단장은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수지침 봉사를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집이 어려워져 5년간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사람들이 고맙다고 주는 돈도 거절했던 그녀였다.

"사람들이 고맙다며 차비라도 쓰라고 돈을 주기도 했어요. 그 돈 앞에서 이 돈이면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갈등도 했지만 한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돈을 받으면 제 의지와는 멀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홍 단장은 "자녀들 셋이 이제 모두 장성했으니 더욱 장애인들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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