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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청
경산시청 ⓒ 허미옥
지난 6일 공무원들은 경산시청 기자실을 자진해서 없앴다. 2002년 11월 기자실 폐쇄 이후 문화공보실 옆에 작은 칸막이를 하나 두고 마련된 8평 공간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문화공보실 관계자들은 "보도자료는 담당 기자 이메일이나 서류함에 넣어두면 되고 주요한 문제나 시정 홍보내용 등은 시청내 상황실이나 회의실을 통해 브리핑하겠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기자 자진 철수 및 기자실 폐쇄를 요구했던 공무원직장협의회(이하 공직협)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편 경산지역시민단체들은 "이후 시정 홍보 및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경산시 관내 공무원들과 물의를 일으킨 몇몇 기자들과의 관언유착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자실 폐지를 넘어서는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월 7일 신문의 날, 물의를 일으킨 경산시와 몇몇 기자들

경산시가 기자실을 자진 없애게 된 결정적 계기는 4월 7일 신문의 날에 있었던 몇몇 기자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였다. 매년 신문의 날이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관행처럼 점심 이벤트를 준비한다. 경산시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백준호 시장권한대행이 점심 이벤트를 준비했고 공무원과 출입 기자들은 술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과 담당 공무원들은 20여 명선. 1차 식사를 마치고 몇몇 기자들과 공무원 대부분은 복귀했지만 남아있던 몇몇 기자들은 2차, 3차로 술자리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모기관에 전화를 해 "술값이 모자라니 술값을 가지고 오라"는 요구까지 한 것.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산지역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경산시 공직협에서 이들 기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더군다나 이 날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박재욱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윤영조 경산시장의 1차 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경산시민모임은 4월 20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동안 언론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기자들을 격려하는 자리라면 모를까 시장이 없는 시정공백 상태라는 비상 사태에서 시정을 책임져야 할 시장권한대행이 직접 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도 가관었다"며 "이런 와중에 P, L, 기자 등 평소에도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던 일부 기자들은 관내 기관으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산시 공직협(회장 박형근)도 4월 27일 백준호 시장권한대행에게 보낸 공문에서 "일부 출입기자들의 향응요구, 영수증 떠넘기기 등 폐해들이 여전히 잔존하여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서 출입 기자들의 자진철수 및 기자실 폐쇄"를 요구했다.

이와 함께 "어떠한 명목의 촌지나 향응 제공도 중단해야 할 것이며 유사한 사례 재발시 제공 공무원 및 해당 기자의 실명을 거론함은 물론 해당 신문사에 정식 통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명절 때마다 시청출입기자단 이름으로 돈봉투 요구…배달사고로 인해 기자들끼리 왈가왈부

경산시 공무원직장협의회 홈페이지 게시판
경산시 공무원직장협의회 홈페이지 게시판 ⓒ 허미옥
지난 7일 신문의 날 사건 이전부터 몇몇 물의를 일으킨 기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 공직협 관계자 뿐만 아니라 경산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주장이다.

A신문사 기자의 경우 "명절이 되면 해당 기자들은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시청출입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돈 봉투를 거두었다"며 "가끔 돈 봉투가 배달 사고가 나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등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7일 관내 모 기관에 금품을 요구했던 기자들은 사건이 불거지고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해당 기관을 찾아가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협 한 관계자는 "시청을 출입하는 몇몇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기자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신문사 기자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음식을 먹고 그 영수증을 간부급 공무원들이나 관내 각 기관장들에게 건네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제시하고 "공무원들에게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라고 제안했지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난감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물의를 일으켰다고 지목되고 있는 K신문사 모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몇마디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전화를 끊었다. 모씨는 짧은 전화통화에서 "동료가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나는 기자생활 30년째다"라며 "대답하지 않겠다. 전화를 끊겠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기자실 반납 이후 재발방지 대책 찾아야

이와 같은 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채 기자 사회 술자리 담론으로 머물 수 밖에 없는 데는 공무원 사회 뿐만 아니라 피해 업체나 당사자의 함구무언이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경산시청을 출입하는 또 다른 기자는 "이런 문제의 가장 좋은 해법은 기자 사회가 스스로 변하게 끔 피해 대상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공무원, 기관단체장, 은행관계자 등 기자들이 금품을 요구하거나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일 때는 해당 언론사로 제보해 각 사에서 징계위원회 등을 열어 제제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경산시 공직협이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지난 27일 발표한 시청 기자실과 관련된 요구사항에는 "이후 어떠한 명목의 촌지나 향응 제공도 중지해야 하며 유사한 사례 재발시 제공 공무원 및 해당 기자의 실명을 거론함은 물론 해당 신문사에 통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공직협은 기자 사회뿐만 아니라 향응을 베푼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박 회장은 "간부 공무원들과 기자들과의 유착사례는 밝히는 대로 지적할 것이며 신문의 날 행사에 대해서는 반성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경산시민모임 안승대 사무국장은 "성명서에서는 기자실 폐지와 해당 공무원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후 후속 조치 마련이다"라며 "몇 년 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시청 기자실을 1차로 폐쇄하고 이후 시민, 기자 그리고 공무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열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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