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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호 사육사
문진호 사육사 ⓒ 권윤영
동물원 하면 떠오르는 대표 동물은 단연 사자다.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는 동물원 관람자들에게 흥미 1호로 떠오르지만 왠지 친근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런 사자를 애완견 다루듯 하는 사람이 있다.

대전동물원 맹수 전문 사육사 문진호(34)씨에게 사자는 무서운 맹수도, 몸을 사려야 하는 동물도 아니다. 그저 귀엽고 사랑스런 동물일 뿐이다.

지난해 8월 대전동물원의 '사자동산'은 전국 최초로 우리 안에서 사자와 사람이 함께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 언론의 유명세를 치렀다. 문씨는 사자 우리 안에 들어가 사자에게 우유를 먹이거나 공놀이, 물놀이, 점프를 함께 즐긴다. 대전동물원을 찾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건 한순간이다.

대전 동물원 개설 초기, 사파리 담당 사육사였던 그는 '사자동산'을 기획했다. '사자를 순치(馴致)시키기만 한다면, 굵고 단단한 철망이 필요 없고 얇은 우리에서 근접거리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문씨는 어린 사자들을 순치시켰다. 이로써 전국 최초로 사자와 놀 이를 벌이는 '사자동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조금씩 접근함으로써 사자로부터 나를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하나씩 적응시키고 그 다음에는 30분, 1시간씩 시간을 늘려가면서 터치를 시작하는 거예요. 사자와 교감을 나누게 되면 손을 핥는다든지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현을 해옵니다. 그렇게 우유를 먹어가면서 친해지는 사이 사자는 사람을 어미로 생각하게 됩니다."

맹수전문 사육사답게 문씨는 사자들마다 성격 차이가 있는 것을 안다. 사람을 잘 따르는 사자가 있는가 하면 겁이 많아서 따르지 못하는 사자도 있다. "으르렁" 댄다고 해서 무조건 사나운 사자가 아니라, 오히려 겁이 많아서 적대심을 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사자 귀엽죠?"
"사자 귀엽죠?" ⓒ 권윤영
그의 사육사 인생은 10여 년 전 전주동물원에서 시작했다.

"누구나 동물을 좋아하잖아요. 저도 어릴 적부터 토끼, 오리 등을 기르면서 동물에 호감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사육사 하면 단지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고 밥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저 역시 정확한 개념을 모르고 그저 동물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그에겐 사육사라는 직업이 천직처럼 느껴졌다. 동물들을 돌볼 때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직업은 아니었다. 꾸준히 동물을 지켜보며 수시로 브리핑을 해줘야 했다.

처음 맡은 동물은 조류였다. 시간이 지나자 사슴 등의 초식류를 맡았고 들소, 코끼리를 담당했다. 그는 다른 동물을 돌보면서도 사자 사육사를 따라다니며 배웠다. 그리고 지난 98년 드디어 사자를 맡았다. 그때부터 순치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문씨는 그토록 원하던 동물을 맡았지만 사실, 맹수사육사는 목숨을 건 직업이다. 순치시키는 과정에서 위험천만했던 일도 겪었다. 진주동물원에서 암컷 사자를 순치시킨 후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 수컷 사자를 데려왔지만 암컷 사자는 화만 냈다. 그래도 문씨는 수컷 사자와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 다시 접근시켰는데 그만 화가 난 사자가 문씨의 어깨를 물어버린 것이다.

"사자가 상대를 무는 것도 3가지 종류가 있어요. 약육강식에 의해 목을 물어서 질식사를 시키는 것과 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서 살짝 무는 것 그리고 애정표현의 하나로 잘근잘근 무는 것이 있죠. 제 경우에는 두 번째였어요. 갑작스런 환경변화로 화가 났던가 그요. 그때 물려서 15일 동안 근육을 쓰지 못했어요."

그는 동물들을 그저 단순한 동물이 아닌 하나의 영혼이라 생각한다. 전국 최초로 '사자동산'에서 사자와 함께 하는 놀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쇼가 아니다. 그에겐 이것도 동물 사랑의 한 방법이며 사자도 사람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다.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호야'의 사진.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호야'의 사진. ⓒ 문진호씨 제공
"우리 나라는 볼거리가 있는 쇼를 좋아하는 반면, 외국 사람들은 동물마다 모습을 한 커트, 한 커트 사진에 다 담아가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자를 보러 와서는 '잠만 자네?' 하고 돌아가기 일쑤죠. 그런 부분이 정말 아쉬워요. 잠든 모습까지도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사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붙여주며 정성을 쏟는 문씨. 그는 40여 마리의 사자들을 모두 구분한다. 하나하나 애정 어린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런 그의 지갑 속에는 사연 깊은 호랑이 사진 한 장이 들어있는데, 이는 바로 지난 5년 동안 순치시켰던 '호야'이다.

5년여 동안 깊은 애정을 쏟아 기른 호야는 우리 안의 깊은 음수대에서 그와 함께 물놀이나 공놀이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호야는 공놀이를 하다가 음수대에 공을 빠뜨렸고 공을 꺼내려다 간질이 오는 바람에 음수대의 물을 다 먹고 죽어버렸다.

"호야의 몸이 좋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간질이 왔는데, 제가 잘 살피지 못한 탓에 죽고 말았습니다. 충격으로 한동안 방황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제 가슴 속에 묻었습니다. 지갑 속에 호야 사진을 늘 품고 다녀요.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사자들을 잘 키우리라 다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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