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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후세인씨의 영정 앞에서 안이정선(대구여성회 대표)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고 후세인씨의 영정 앞에서 안이정선(대구여성회 대표)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 평화뉴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고 카이사르 후세인(32)의 장례가 4월 29일 치러졌다. 후세인은 4월 9일 과도한 업무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숨졌지만, 체불 임금과 장례비, 퇴직금 등의 문제로 장례도 지내지 못한 채 20여 일을 지체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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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추모식 형태로 29일 낮 12시 30분에 후세인이 함께 일했던 대구시 성서공단 사업장 앞 마당에서 행해졌다. 회사측과 다섯 번의 협상 끝에 서면 합의를 얻어내고 어렵게 치른 추모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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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은 고 후세인의 동료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 사업장의 한국인 노동자들과 성서공단 노동조합원,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평소 후세인과 가장 친했던 이주노동자는 추모사를 통해 "외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지만, 그들은 죽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시 고향으로 행복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며 "아직도 함께 자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차가운 몸으로 누워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한 이주노동자가 이슬람어로 추모사를 하던 중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터트리자, 참석자들 대부분도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참석자들이 헌화를 한 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이슬람 의식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대구여성회 안이정선 대표는 "30년 전에 우리 나라 노동자들이 외국에서 겪었던 부당한 노동 현실을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다"며 "더이상은 목숨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 없도록 차별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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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후세인의 시신은 국제장례위원회가 담당해 유품과 함께 빠르면 이틀 안에 방글라데시의 유가족 품으로 보내진다. 지난 28일 이루어진 서면 합의에 따라 회사측은 고 후세인의 체불 임금과 영안실 비용, 퇴직금 등은 물론 다른 노동자들의 체불 임금도 6월 말까지 두세 번에 나눠 모두 지급하기로 했다.

남겨진 이주노동자들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 사업장을 그만 둘 계획이다. 이곳에서 비교적 오래 일했던 이주노동자 한 명은 "오랫동안 일했던 만큼 많이 정이 들었다. 여기서 좀 더 일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친구가 죽은 곳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고, 정부의 단속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일할 곳을 찾아 어디로든 옮겨가야 하는데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고,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추모식 직전까지도 후세인의 귀향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초 어제 추모식은 오전 11시에 가톨릭대학병원에서 시신을 발인해 성서공단의 사업장으로 옮겨, 12시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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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안실 담당자가 "외국인의 시신을 함부로 내 줄 수 없다. 회사 관계자가 직접 와서 재직 증명서를 제출하고, 서명을 해야 시신을 보내줄 수 있다"며 발인을 거부했다.

성서공단 노조측은 "발인 전날 미리 찾아가서 말했고, 영안실 비용은 회사에서 모두 지불하기로 했다는 노사합의서도 보여줬지만 병원쪽에서는 장례식 비용을 당장 결제 받기 위해서 미루고 있다"면서 "이것은 병원 쪽의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언성을 높였다. 뒤늦게 해당 사업장에서 사원을 보내 겨우 해결했지만, 고 후세인의 귀향을 앞두고 그의 동료들은 또 한번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어렵게 생활하다 마침내 차가운 시신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고 카이사르 후세인. 그의 죽음과 귀향을 지켜보면서도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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