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롭다. 활짝 핀 봄 꽃의 꽃 향기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 바람의 향기다. 아니다. 구수한 된장, 간장의 고향 장독대 내음이다. 안성 서일농원에 들어서니 참 다양한 향기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꽃 향기더니 길을 따라 갈수록 구수하고, 조금은 짭짜름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 구수한 내음은 길게 줄지어 늘어선 장독대 앞에서 절정을 이룬다.
장이 익어간다. 봄이 익어가듯, 내 삶이 익어가듯 그렇게 장이 익어간다. 한참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그 정체를 따져본다. "이건 간장…… 음…. 이건 된장이겠지…." 맞는지 틀리는지 누가 뭐라 시비할 사람도 없다. 그저 느낀 대로 맡고, 냄새 맡은 대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틀림없는 사실은 된장, 간장의 내음이 그리 싫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 이 냄새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한 메주가 익어가면서 이 냄새는 점차 심해졌다. 며칠 후 방에서 마루로 옮겨져 메주가 기둥에 매달려도 그 냄새가 다 가시지 않았다. 메주가 익어가는 동안에는 방에서도 이불에서도 옷에서도 온통 메주 냄새가 났다. 그래서 된장의 냄새도 싫었다. 조금은 퀴퀴하고, 잘 사라지지도 않는 그 냄새. 그 냄새가 싫었다.
하지만 언제였던가? 문득 장 냄새가 그리워졌다. 어머님의 무 된장이 먹고 싶었다. 무를 길쭉길쭉 썰어 넣고, 대파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 된장이 어떤 무엇보다 먹고 싶었다. 그때부터 된장 냄새가 싫지 않았다. 그것은 포근한 고향의 냄새였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냄새였다. 메주 냄새도 구수해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음식이 괄시 받았던 적도 있다. 외국에서는 김치 냄새가 싫다고 동네에서 한국 사람을 쫒아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마늘 냄새, 된장 냄새도 외국인이 싫어하는 냄새였다. 그런 냄새 때문에 우리의 음식 문화를 미개하다고 손가락질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질은 이제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김치와 된장이 다른 나라의 어느 음식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암 예방에 좋다는 된장, 서양인들의 유산균보다 좋다는 김치. 이젠 김치와 된장이 수출 상품이 되고 있다.
서일농원의 봄날, 환한 봄볕에 철쭉도 화사했다. 그리고 그 봄볕을 받아 정성껏 만든 장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잘 정돈된 된장독에서, 간장독에서 우리의 맛이 익어가고 있었다. 그곳을 가꿔온 사람은 서분례 여사. 그분의 꿈은 "온 세상의 밥상 위에 가장 그리운 어머님의 마음을 올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곳을 떠나오면서 그런 시도가 조금은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처음 찾은 나도 그곳 주인장의 글귀를 읽어보기 전에 어머니를 떠올렸고, 맛있었던 식탁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주인장의 시도가 성공하길 진정으로 빈다. 더불어 '온 세상의 밥상 위에 김치를 올리고, 된장을 올릴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