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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의 제15회 정기공연 작품인 <피그말리온>은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동명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오드리 햅번이 출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로도 유명한 <피그말리온>은 어느 음성학자와 꽃 파는 가난한 처녀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음성학자는 목적대로 실험대상인 처녀의 심한 사투리를 고치고 예의를 가르쳐 귀부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를 꽃파는 처녀 이상으로 상대해 주지 않는다. 처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의 곁을 떠난다.

간략한 스토리를 가졌지만 <피그말리온>은 흥미로운 인간고찰이다. 그것은 버나드 쇼의 남다른 결말로 인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모두가 기대했던 <신데렐라> 스토리 대신 냉소적인 결말을 택한 것. 그렇게 함으로써 쇼는 계급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하려했던 것 같다.

서울시극단의 <피그말리온> 또한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닌 버나드 쇼의 차가운 선택을 따른다. 원작을 알았던 사람들에겐 예상했던 결말이었겠으나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거나 당황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당황 쪽이다. 그것은 연극이 끝 부분을 충분히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끝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음성학자와 처녀 간의 갈등을 좀 더 축조시켜 놓았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계급간 차에 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강력하게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단 한 번의 갈등 이후 클라이맥스의 언덕을 미끄럼 타 내려와 버린다.

부분이 아쉽긴 해도 <피그말리온>은 매우 잘 만들어진 연극이다.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잘 조율해 내고 있으며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다.

특히 천박한 처녀를 연기한 강지은(36)은 상당한 연기력을 과시한다. 천박과 우아를 동시에 보여주는 그녀는 정체성에 갈등하는 내면 연기는 물론, 영화 <가문의 영광>의 김정은처럼 인간의 여러 면을 오가는 리모컨 연기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4월 2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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