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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이 예상대로 과반인 152석을 확보했고 한나라당이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121석 이상을 얻었다. 진보정치 세력인 민주노동당은 제3당으로 당당히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군소 정당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총선 결과를 두고 다수 언론은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린다. 첫째는 열린우리당의 승리와 한나라당의 선전이라는 평가이고 둘째는 이번 선거가 '탄핵'의 부당성을 공고히 해주어 헌재에까지 '국민의 뜻'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 주장이다. 셋째는 영남권에서 특히 지역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얻기는 했지만 당 관계자들의 공공연한 말처럼 이번 선거가 국민의 90%가 반대하는 '탄핵'에 관한 선거라면 이 선거 결과는 열린우리당에게 결코 승리라 말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당 지지율은 대략 38%로, 탄핵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13%와 합치더라도 50%내외에 머문다. 반면에 탄핵을 찬성했던 한나라당 지지율 35%, 민주당의 지지율 7%, 자민련의 지지율 3%를 합친다면 45%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합인 50%와는 큰 차이가 없다.

여하튼 열린우리당은 16대 국회의원 수인 49석에 비하면 103석이나 증가한 것이지만 분당 이전의 민주당의 의석 수까지 생각한다면 의석 증가는 42석에 불과하다. '탄핵에 대한 국민 심판'으로 인한 압승을 이야기하기에는 전술한 지지율까지 생각해볼 때 너무도 미약하다.

다음은 17대 총선이 남긴 지역감정에 관해 알아보자. 이번 선거에서 16대 국회와 비교해 52석을 잃은 민주당은 그동안 텃밭이던 호남 지방에서 27석을 우리당에 내주고 4석을 건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말 그대로 몰락했다. 이는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던 호남인들의 일관적인 선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공화당 박정희','민정당 전두환', '민정당 노태우', '신한국당 김영삼'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을 선택해온 영남인들의 선택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인 투표행태다. 호남에서 한석도 건지지 못한 민주노동당 소속의 한 패널이 총선 직후 TV 토론회에서 지적한 '또다른 형태의 지역주의'인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선전했다고 말할 수 없다. 16대 국회에 비하여 16석이 줄었고 당 역사상 처음으로 '기호 1번'을 반납해야 한다. 서울 몇몇 격전지에서 명망가들의 승리를 제외하고는 수도권에서 완패했고 제주, 충청과 호남에서는 거의 의석을 얻지 못했다.

'박정희 향수'와 '정동영 실언'에 기대어 영남권에서 얻은 표가 60석, 한나라당이 지역구에서 획득한 의석의 절반이 넘을 정도이다. 예전에는 민주당을 두고 '지역정당'이라고 폄하하던 한나라당이 이제 그 손가락을 자신에게 돌리게 되었는데, 어떻게 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는 여러 여론기관에서 분석한 바처럼 '바람'의 선거에 불과했다. 그 바람은 '탄핵'보다는 '지역주의'에서 불어온 바람이고 세대간 골짜기에 날카롭게 부는 바람이었을 뿐이다. 지역풍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는 수도권과 강원도 역시 의석수를 떠나 지지율 자체를 비교해 보면 탄핵을 둘러싼 양자의 주장만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탄핵'과는 관계없더라도 이번 총선이 남긴 긍정적인 면을 짚고 넘어가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이들이 오랜 숙원인 '제도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이 그렇고,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여성의 정치참여가 늘어났다는 것 또한 17대 총선 결과의 가장 큰 특색이다. 이들은 머지않아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질 정치세력을 대신하여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국회에 바라는 국민의 소망 중 가장 큰 것이 "17대 국회는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인데 부디 17대 국회는 많이 싸우기를 바란다. 자당의 정책을 명확히 밝히되 당론과 국회의원 개인의 소신이 어긋날 때는 이를 허용하는 여유를 갖고 자당의 이익을 투명하게 드러내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논쟁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4년 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는 지역감정이나 세대간의 갈등 같은 것들이 쟁점이 되지 않고 정책을 우선하는 세련된 정치문화가 조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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