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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발전해 나가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Vilnius)
더욱 발전해 나가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Vilnius) ⓒ 서진석
그날 저녁 밖에선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곳에 모여 앉아있었다. 전문가들이 대통령의 일과 그 일이 리투아니아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눈이 고정되어있었다.

팍사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다 마치지 못하고, 불신임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유와 배경은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대통령 임기를 다 못 마치고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를 바가 없었다. 팍사스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던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임기를 시작했다. 두 나라 대통령이 왜 그리 비슷한 처지에 처해있는지….

당시에는 팍사스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잘 몰랐다. 최근까지도 팍사스 대통령은 언론에서 나오고있는 그의 비리에 대해서는 자신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음모로 단정지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대통령궁의 주요핵심인물들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국제범죄조직과 결탁한 사실이 리투아니아 보안부 직원에 의해서 발설이 되었고, 그들과 결부되어있는 러시아 사업가들 중엔 팍사스 대통령의 정치자금을 대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의 이름도 있다는 것이었다.

리투아니아 국회는 특별회의를 소집해서 그 사건에 결부되어있는 러시아 사업가들이 나누는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그것이 전 리투아니아에 방송이 되었다고 한다. 내용인 즉 팍사스가 대통령 선거 당시 그의 선출을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사업가 보리소프는 "그 팍사스 대통령이 나를 병신 취급했으니, 그 대통령은 이제 죽은 거나 다름없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가히 상상이 된다. 그루지아의 무당 롤리스빌리 역시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말을 한 적이 있긴 하다. 팍사스 대통령은 신이 점지한 대통령이므로, 만약 팍사스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리투아니아 민족은 자취를 검출 것이라는….

카우나스라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에서 아비아 발티카(AviaBaltika)라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러시아 사업가 유리 보리소프(Yuri Borisov)는 롤란다스 팍사스의 선거운동 당시 대선자금을 조달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아비아 발티카는 아프리카 수단에 있는 테러조직에 자금과 헬리콥터 부속을 조달해 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후 보리소프는 리투아니아의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는데, 그 시민권이 팍사스와의 친분에 의해 불법적으로 발급된 것임이 드러나 시민권을 말소당하고 리투아니아에서 추방이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보리소프와 관련된 사항은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인접국가의 국민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했으며, 내가 사는 에스토니아의 사람들은 오늘은 리투아니아에 새로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없는가 하면서 신문을 뒤적이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팍사스 대통령은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로부터 대통령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가 공식적으로 방문하고자 했던 나라들마다 거절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리투아니아와 특별한 역사적 관계에 놓여있는 폴란드만이 여전히 리투아니아 대통령에 대해 공식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릴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리투아니아에는 대통령이 없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불법으로 취득한 시민권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 추방될 것으로 알고 있던 보리소프가 팍사스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임명되기로 했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게 아니었을까, 그 보도를 읽는 본인마저 ‘이건 너무 심하잖아..’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발트3국의 소식을 보도하는 영자신문 < The Baltic Times >는 4월 1일자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카미카제 팍사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건 정말 누가 보아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카미카제의 심정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다음 주 리투아니아의 헌법재판소는 팍사스의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개인적으로 그 탄핵 이후 팍사스 대통령이 리투아니아를 더이상 혼란에 빠뜨릴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나저나 그 그루지아 무당말대로, 대통령 탄핵 때문에 리투아니아 민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사뭇 염려가 되긴 한다.

하긴 이정도 일로 사라질 민족이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다른 발트민족들처럼 일찌감치 사라져 버리고도 남았다. 프러시아, 요트빙게이, 리브인 등 수백년간 발트해 안에 살고 있던 민족들이 외세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릴 때에도 꿋꿋이 살아남았고, 드디어 이번 5월이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리투아니아의 유럽연합이 가져오게 될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에 따를 혼란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트3국이 잘 사는 서유럽의 고령화되는 인구를 보살피기 위해 값싼 노동력으로 팔려나가게 될지, 그래서 리투아니아 내의 인력공동화가 심화될지는 아직 예상뿐이지만, 뚜껑은 곧 열린다.

유럽연합과 어깨를 견주기 위해 갈수록 화려해져만 가는 빌뉴스의 밤거리에는, 아직도 높은 실업률과 저조한 월급의 늪에서 헤매는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며 배회하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롤란다스 팍사스 (Rolandas Paksas)

롤란다스 팍사스는 제메이티야에 있는 텔세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곡예비행사이자 건축회사 직원이던 그는 1997년 빌뉴스시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계에 명성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빌뉴스 구시가지에 대대적인 보수를 시작하여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1999년 게디미나스 바그노류스의 보수정부가 무너진 이후, 팍사스는 리투아니아의 국무총리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윌리암스 인터네셔날의 마제이큐 정유회사 인수에 반대하여 국무총리직을 사임했습니다.

그후 팍사스는 자유주의로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2000년 총선에서 아르투라스 팔라우스카스(Arturas Palauskas)와 사회자유주의당을 이끌면서 다시 한번 리투아니아의 국무총리로 당선됩니다.

이번에도 오래 못가 2001년, 정부 결정권에 간섭하려는 연합정당들의 입장에 반대하여 다시 국무총리직을 사임합니다. 그 사임 이후 팍사스는 영원히 정치계에서 떠날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신당 ‘자유민주당’을 창설합니다.

그는 빌뉴스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비행학교를 마쳤으며, 소련에서 최고의 곡예비행사라는 상을 수여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정치인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짬짬히 곡예비행을 연출해내곤 했는데, 2001년 가을에는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빌뉴스의 빌리아 강의 다리 밑을 통과하는 묘기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팍사스 대통령 당선자는 곡예비행과 더불어 오토바이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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