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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봄갈이 해 놓은 밭에 하얀 벚꽃 눈이 쌓여있다
ⓒ 김도수
아내와 함께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부식가게로 생선을 사러 가는데 화단에 시들어버린 벚꽃과 개나리 꽃들을 보면서 아내가 “이번 주에 우리도 도시락 싸들고 산에 봄 나들이나 한번 갑시다” 하고 제안을 합니다.

봄이 되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정원의 동백꽃이 마른 잔디 위에 선혈을 해 놓은 것처럼 뚝뚝 떨어져 잔디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어 개나리와 벚꽃, 목련 꽃마저 뚝뚝 떨어져 버리자 아내가 봄 꽃들이 만발한 산으로 도시락 싸들고 봄나들이 한번 가자고 말을 꺼낸 것입니다.

사실 겨우내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산에 도시락을 싸 들고 등산을 다녔는데 봄이 찾아 온 요즘은 한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 쌍계사 들어가는 십 리 벚꽃 길
ⓒ 김도수
주말 아침, 아내는 도시락을 쌉니다. 묵은 김장김치와 된장을 담고 상추와 오이 두 개를 비닐봉지에 싸서 등산용 배낭에 넣습니다. 야외에 오랜만에 놀러 가는데 반찬을 보니 좀 부실한 것 같아 아내에게 한마디 합니다.

“아니, 오랜만에 봄 나들이 가는데 어찌 그리 반찬이 썰렁허데아?”
“음마, 야외에 나가 상추에다 쌈 싸 묵은 것 같이 좋은 것이 어디 있다요.”

그래, 맞다. 봄 꽃들이 만발한 야외에 나가는데 맛 있는 반찬이 봄 꽃 말고 달리 뭐가 필요하겠는가. 아내에게 괜히 반찬투정을 부린 것 같아 슬그머니 주방에서 자리를 피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으로 비쳐지는 밖의 날씨는 흐릿하기만 합니다. 그 동안 화창한 날씨가 계속 되어 당연히 오늘도 맑은 날씨가 되리란 기대와는 달리 바람도 불고 날씨도 제법 쌀쌀한데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흐릿한 날씨입니다.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비는 내리지 않고 기온이 뚝 떨어져 조금은 쌀쌀한 날씨가 되겠다고 합니다.

▲ 계절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 김도수
내가 사는 곳은 가까운 곳에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 자동차 핸들만 꺾으면 지금 사방이 꽃천지 입니다. 아내와 나는 하동 악양면에 있는 고소성(姑蘇城)을 거쳐 신선대와 성제봉(형제봉)으로 등산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악양 고소성 가는 방향에 있는 쌍계사 벚꽃도 구경을 하고 싶어 집을 일찍 나섭니다. 지난 주에 하동읍에서 쌍계사 가는 섬진강변 벚꽃 길을 구경했지만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들어가는 십리 벚꽃 길은 완전히 만발하지 않아 쌍계사로 다시 벚꽃 구경을 갑니다.

주말이라 상춘객들이 붐빌 것 같아 아침 일찍 갔는데도 벌써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쌍계사 들어가는 도로가 붐비고 있습니다.

연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며 즐겁게 걷기도 하고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단체 관광객들 중 일부는 버스에서 내려 화사하게 핀 벚꽃 길을 걷습니다.

▲ 화개골짜기에 봄 꽃들이 만발하고
ⓒ 김도수
상춘객들은 일상에 찌든 잡다한 일들 다 잊고서 봄 바람에 휘날리는 꽃송이를 머리에 받으며 모두들 즐거워합니다. 아내도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들이 분분이 날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좋은지 “야, 좋다. 하늘에서 꽃눈이 쏟아져 내린 것처럼 휘날리네.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쬐께 더 붙어 있지 한꺼번에 너무 우수수 다 떨어져 부네.”

악양에 있는 성제봉은 처음 올라가보는 산이라 등산로 길을 몰라 악양면사무소 가기 전,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산에 오르는 등산로 길을 물으니 “입석마을 뒤로 가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입석마을을 지나 좁다란 시멘트 포장 길을 따라 산을 향해 가다 보니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어 주차를 시키고 산에 오릅니다.

경운기가 다녔을 것 같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쑥을 캐다가 우리를 보고는 말을 건넵니다.

▲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김도수
“여그까지 뭐하러 올라 오시능교?”

등산길도 아닌 길을 올라오는 우리들에게 할아버지는 조금 의아한 말투로 물어봅니다.

“저, 뒷산에 등산 좀 하려고 왔는디요.”
“어, 길을 잘못 들었니다. 더 올라가면 길이 없어지니 다시 오던 길로 내려 가이소.”

할아버지는 봄이면 쑥을 캐서 판다고 합니다. 쑥 차를 만드는 분이 쑥을 사가는데 물에 깨끗이 씻은 뒤 물기가 마르면 저울로 달아서 kg당 2500원씩 판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캐면 하루 2만5천원은 벌 수 있다며 할아버지는 요즘 쑥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하십니다.

잠시 후 할머니께서 쑥을 캐러 올라오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쑥을 캐서 비료도 떼고 삯꾼을 사서 농사짓는데 경비로 쓴다며 쑥을 팔아서 돈을 만질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고 하십니다. 두 분이 다정스럽게 이야기 하며 쑥 캐는 모습을 보니 산 속에 핀 한 송이 들꽃처럼 따스한 이 봄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 바위틈에서 자라나 꽃을 피우는 진달래
ⓒ 김도수
아내는 “오늘저녁에 향긋한 쑥국이나 끓여 먹자”며 쑥을 뜯기 시작합니다. 칼이 없이 손으로 쑥을 뜯고 있자 이를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쑥을 캐라며 아내에게 여유분으로 가지고 온 칼을 하나 줍니다. 등산을 가던 우리들은 길을 잘 못 찾아 들어 산에 오르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가하게 쑥을 캤습니다.

아내와 내가 경사진 산길에서 파릇한 쑥들을 캐고 있는데 할머니 무덤가에 피어난다는 할미꽃이 예쁘게 피어 쑥을 캐던 손길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아내는 오랜만에 할미꽃을 보았는지 “야, 할미꽃이다. 할미꽃 본 지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내 어릴 때 요 꽃을 보면 꼭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곤 했는디∙∙∙”라며 감탄합니다.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고소성(姑蘇城)을 거치지 않고 성제봉 가는 길을 물어서 등산을 시작합니다. 산에 오르니 취나물과 고사리가 벌써 올라와 있습니다. 아내는 등산길에서 벗어나 취나물과 머위, 그리고 고사리 꺾습니다. 등산길은 멀기만 한데 아내는 종종 가던 길을 멈추고 바쁘게 손을 놀립니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성제봉 정상을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한데 아내는 등산을 가는 게 아니라 봄 나물을 뜯으러 산에 온 것처럼 등산가는 일은 잠시 잊어버립니다. 나도 등산가는 길에서 벗어나 아내와 함께 고사리와 취나물을 뜯습니다.

▲ 노란 생강나무 꽃
ⓒ 김도수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데 진달래 꽃이 여기저기에 만발하여 지친 우리들을 반깁니다. 물오른 나뭇가지에는 벌써 새순을 틔우기 시작하며 벌거벗은 산에 푸른 옷을 입힙니다.

산 중턱쯤 오르니 산수유 꽃을 닮은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우며 우리를 반기고 높은 바위 틈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진달래꽃이 붉은 선홍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노랗게 만발한 생강나무와 붉게 핀 진달래꽃들을 보니 우리들도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는군요.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생강나무 꽃 옆에 서 있던 아내는 배낭에 들어있던 물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킵니다. 나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배가 고파 오이 하나를 꺼내 먹습니다. 아내는 생강나무 꽃을 보고는 “여기는 이제야 산수유 꽃이 피네” 하고 내게 말을 건넵니다. “그 꽃은 산수유 꽃이 아니라 생강나무 꽃”이라 알려 주니 “그렁게 산수유 나무보다는 나무 굵기가 조금 작기는 하네요. 꼭 산수유 꽃처럼 생겼네요 잉. 생강나무 꽃도 참 이쁘네요.”

“저 생강나무에서 열리는 까만 열매로 옛날엔 기름을 짜서 등잔용 호롱불이나 머릿기름을 썼었데아. 옛날 사대부 양반집 부인들이나 이름난 기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머리 기름이었당만∙∙∙.”

▲ 할미꽃
ⓒ 김도수
우린 생강나무와 진달래꽃이 핀 산 중턱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습니다. 날씨가 흐려 하얀 모래들이 너부죽하게 깔린 섬진강 모래밭과 하동읍과 쌍계사 가는 악양 골 도로변에 핀 벚꽃들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아내와 나는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섬진강과 산에 핀 봄 꽃들을 마주하며 상추 쌈에 점심을 맛있게 먹습니다.

“아따, 여그서 밥 묵응게 참말로 맛있네. 밥을 좀 넉넉하게 싸올 것인디 밥이 좀 모라고만. 근디 경치 한번 끝내 주제 잉. 오늘 날씨만 맑아부렀다먼 참말로 좋아부렀을턴디∙∙∙.”

들녘엔 어느새 밀들이 이삭을 피워 올리기 시작하고 산 넘어 골짜기에선 뻐꾹새가 ‘뻐꾹뻐꾹’ 봄 노래를 들려 줄 것만 같습니다. 논두렁에는 자운영 꽃들이 만발하여 농사를 준비하고 계시는 농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아내는 콧노래를 계속 불러댑니다.
그 소리가 봄을 노래하는 종달새 소리와 같이 들리기도 하고 산 넘어 멀리에서 뻐꾹새 우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 악양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
ⓒ 김도수
저녁 밥상에 봄 향기 가득한 쑥국이 올라와 아이들 입 맛까지 돋굽니다. 봄 꽃이 활활 타오르는 주말 하루를 아내와 함께 보내고 나니 아내는 이젠 아파트 화단에 떨어지는 꽃들을 보고 ‘봄이 간다고, 이 봄이 다 간다’고 내게 더 이상 졸라대지 않을 것입니다.

▲ 보리밭과 소나무 두 그루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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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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