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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미라, 박윤미, 신은주, 이선희씨. 금산 행정마을의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은행나무 앞에서
왼쪽부터 박미라, 박윤미, 신은주, 이선희씨. 금산 행정마을의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은행나무 앞에서 ⓒ 권윤영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죠. 외벽을 보수해서 이곳을 수시로 지나치는 사람들조차도 옛날 건물이라는 인식을 못하고 있어요."
"건물 외벽에 적힌 건립년도가 각각 다르게 적혀 있네요. 한번 확인한 후에 정정 요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지난 11일, 조흥은행 대전지점 앞에 여러 명의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민족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건물을 살펴보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인다.

매월 둘째주 목요일이면 평소보다 분주한 아침을 시작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외출을 준비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역의 환경과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모임, 지역문화기행 '산내들' 회원들의 특별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지역문화기행 1기 산내들은 대전 전민동 10명의 주부들이 구성원. 하나 같이 지역 문화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쩌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면 애통한 마음까지 들 정도. 이들은 한밭문화마당이 운영하는 지역문화기행 프로그램에 지난해 10월부터 참가해 오는 9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있다.

구 산업은행 앞에서.
구 산업은행 앞에서. ⓒ 권윤영

매달 답사 장소와 주제가 정해져 있다. 마을의 유래와 주변의 자연 환경과 문화 유산, 17세기 조선 정치 일번지 회덕, 장승을 둘러본 데 이어 네번째 시간인 이번 답사는 '대전 지역의 근현대사 역사 현장과 근대건축'이 주제다. 자신의 마을부터 시작해 조금씩 대전 문화 유산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동안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에 박윤미(41)씨는 역사책을 떠나 살아 있는 역사를 찾아 보고자 평소 친분이 있던 대전문화유산해설사인 안여종(한밭문화마당)씨에게 제안을 했고 뜻있는 사람이 모여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전에 살면서도 정작 대전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어요. 이런 답사 프로그램도 없었고요. 으레 대전의 볼거리하면 대청댐, 계룡산만을 생각하곤 했는데 답사에 참가하면서 많이 배워가고 있답니다. 역사를 글자로만 배웠을 때는 몰랐는데 생활 속에서 배우면서 역사가 바로 삶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조선 후기 유학자 송시열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남간정사에 갔을 때는 후손에게 직접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서 접하던 것과 달리 더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도 이들은 절감하고 있다. 전에는 존재 가치도 모른 채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의 나무 하나, 돌 하나도 이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가는 지역 곳곳의 문화유산들이 이들은 아쉽기만 하다.

열심히 공부중인 '산내들' 회원들.
열심히 공부중인 '산내들' 회원들.
구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시 문화재 자료 47호다.
구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시 문화재 자료 47호다.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한달 정도 지냈는데 처음에는 너무 작은 곳이라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도시의 곳곳을 소개하는 팸플릿이 너무 잘 돼 있어서 그것을 보며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남북전쟁의 시대적 배경을 알게 되고 아이들도 자연스레 미국 역사를 배우게 되더라고요."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대전의 구석구석도 알아보고자 첫 답사에 나선 이선희(40)씨는 나중에 아이들도 데리고 다닐 생각과 대전 구경을 시켜 달라는 사람과 같이 와 볼 요량으로 답사지의 길을 외우고 있었다.

1년의 답사 과정을 모두 마친 후에는 누구나 지역문화기행을 해볼 수 있도록 자신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대전문화유산답사 자료집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시 교육청에서 만든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대전의 생활>에서 발견한 오류를 분석해 바로잡아나갈 계획도 세웠다.

"우리 나라 곳곳에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그나마 원형으로도 보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세대에서 저희들이 지켜내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이 모르고 자라게 되잖아요. 그래선지 이 활동에 애착이 큽니다."

대전문화유산해설사 안여종씨는 "활동들이 잘 이뤄지면 아이들과 참여할 수도 있고 여러 단체나 모임들의 활동을 하면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전해줄 수도 있어요. 1기 산내들의 지역문화기행이 가족, 주변 사람, 더 나아가 지역 사회로의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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