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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열린우리당 '의원직 사퇴 결의' 공식 철회 이전에 쓴 글입니다...<편집자 주>

타락한 성 '소돔과 고모라'가 신에 의해 멸망되던 날, 천사들에 의해 미리 경고를 받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은 동이 터 올 무렵, 성을 빠져나와 산으로 향한다. 모든 걸 버려 둔 채 황급히 몸만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이 쌓아온 그간의 삶과 물질들에 대한 아쉬움을 못 이기고 뒤를 돌아보게 되고,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요즘 열린우리당이 의원직 사퇴라는 국민적 약속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롯의 아내와 닮아 있는 듯해 마음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롯의 아내는 자신의 터전이었던 곳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어떻게 살아온 곳이고, 어떻게 쌓아온 재산인데…. 그런 아쉬움에 그만 약속을 어기고 말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탄핵안이 통과되던 날 의원직 사퇴서를 금배지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던 열린우리당 의원들 모습. 그것은 탄핵안 가결에 대한 소수여당으로서의 마지막 저항과 의지였다. 그런데 그 때의 흥분이 가신 탓일까? 어찌 된 일인지 사퇴에 대한 시원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갖가지 의견들이 분분한 상태다.

사퇴를 하지 말자거나 부분적 사퇴를 주장하는 분들의 입장은 대략 이런 듯하다.

우선 5월 말까지인 16대 국회에서 여당이 모두 의원직을 사퇴해버릴 때 발생할 여러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한 야당이 뭔들 못할까 싶은 걱정이 그 이유인 것이다. 개헌이나 총선 연기와 같은 극단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저지할 원내 의석은 최소 남겨 둬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밖에도 총선에서의 번호 배정이나 국고 보조금 등도 작으나마 사퇴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울부짖었듯이 "이건 아니다!"

개헌이나 총선 연기와 같은 일을 혹이라도 야 3당이 모의한다 해도, 그리고 그런 모의가 실제로 일어나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게 너무나 뻔한 사실 아니겠는가?

열린우리당 의원 몇 명이 남아서 정치적으로 막아내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절대 그런 야당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정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모르는가? 아니면 알긴 해도 국민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어떤 불안 심리가 있는 것인가?

지금 열린우리당에 중요한 것은, 이런 구체적이고 개별적 사안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맘을 정확히 읽고 그 국민의 맘과 뜻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그 어떤 정치 역사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절대적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지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선명하고, 개혁적이고, 양심적 세력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선 국민 앞에 했던 의원직 사퇴라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열린우리당은 국민에게 인정받고 박수 받는 정당이 되는 것이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 더 큰 걸 잃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아쉬움이나 미련 혹은 어떤 이익 때문에 약속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소금기둥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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