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다 전망을 볼 수 있는 동해안 7번 국도가 여행의 주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강릉에 있는 참소리박물관은 그냥 거쳐 갈 여행지였습니다. 그동안 박물관에 가더라도 전시된 유물을 그저 스쳐가며 보아왔던 터라 참소리 박물관에서도 그냥 스쳐 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전시품들…. 그것들이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에디슨의 발명품을 모아둔 곳에서는 설명을 세 번이나 듣기도 했습니다. 1000가지가 넘는 특허를 갖고 있는 에디슨의 발명품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에디슨이 만든 전구의 불빛입니다. 수명이 별로 남지 않아 오랫동안 켜 드리지는 못합니다.”
에디슨의 발명품을 모아둔 곳으로 처음 들어섰을 때 안내원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전구에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맞아. 밤에도 어둡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 에디슨의 공이지….”
정말 많은 발명품 중에는 전구와 축음기, 영사기 등은 잘 알려진 것들부터 와플기계와 전기다리미, 커피포트, 딸을 위해 만들어 준 말하는 인형, 높이 조절 침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까지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 발명품들을 보며 지금 미국 경제력의 뿌리가 에디슨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돌아보고, 뮤직박스와 축음기도 보았습니다. 150년이나 된 뮤직박스 폴리폰의 음악과 몇 개의 축음기 소리도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대부분 세계에 하나, 아니면 둘뿐인 전시품들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만든 텔레비전은 3대 중에 2대가 그 박물관에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박물관이었습니다.
박물관을 나오며 세명의 위대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에디슨과 에디슨의 어머니, 그리고 참소리박물관의 손상목 관장이 그 분들입니다. 에디슨은 어쩌면 골치덩이였습니다.
“학교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학교에서 버림받은 아이, 닭을 낳겠다고 알을 품었던 아이, 기차에서 실험을 한다고 화재를 일으켜 쫓겨난 아이”
하지만 어머니는 늘 에디슨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제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어린시절의 에디슨과 에디슨 어머니 모습입니다. 에디슨의 재능도 놀라운 것이지만, 에디슨을 그렇게 만든 것은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수 있도록 격려해 준 그 어머니가 아니었을까요?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그 어머니가 새삼 위대해 보였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생각하니 그 위대함이 더 커 보입니다.
또 한분의 위대한 사람은 참소리박물관 손성목 관장입니다.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소유하고 있는 전체 유물의 1/3이랍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재력이 있어서 그 박물관을 꾸몄겠지만, 유물을 모으는 일이 재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참소리박물관은 에디슨 유물로는 세계 제일이랍니다. 축음기로도 세계 제일일 것입니다.
지금의 비좁은 박물관은 올해 경포해변 가까운 곳으로 이전을 한다고 했습니다. 강릉시의 협조로 좋은 전시 공간을 만들어 간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긴 하지만, 연립주택을 고쳐 박물관으로 꾸며둔 지금이 무슨 이유인지 더 정겨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전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들러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