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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국가적 혼란을 부른 것이든, 아니면 헌법에 따른 있을 수 있는 법적인 절차이든 상관없이, 작금의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탄핵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어쨌든 미증유의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따라서 그것의 해소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왕에 풀어야 하는 스트레스라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방식으로 그것을 해소하도록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그 중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촛불시위를 선택했다. 여중생 사망 추도 촛불시위 이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폭력 평화 집회가 된 시위 방식으로, 여중생 추모 때와 마찬가지로 그 어떠한 폭력이나 방종도 없으며 심지어는 시위가 끝난 후에는 자발적으로 시위 현장의 청소까지 마치고 해산하는, 그야말로 성숙된 시민의식 표출의 장이다.

그러한 사실은 연인이 손을 잡고 데이트 삼아 나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애정과 결속을 공고히 하는 장면은 물론, 크고 작은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시위 현장을 찾는 부모의 모습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움직임도 있다. 탄핵에 찬성하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인사들은 촛불시위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며, 노사모가 조종하는 것이고, 실제 시위 참석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한다.

물론 '희망'의 표출로도 볼 수 있겠지만 일부 정당인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모 일간지 게시판에는 노사모가 시위 참가자들에게 뭉칫돈을 살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의 스트레스 대처는 부인, 부정, 그리고 현실왜곡에 해당하며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해소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손에 손잡고 온 연인들과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마저도 자신들이 '홍위병'이라 칭하던 부류의 사람들로 치부해 버리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일 뿐이며, 의회 쿠데타라는 초유의 폭거에 분노한 국민들의 공분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서를 보호하고자 하는, 극히 유치한 방어기제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부인과 부정, 그리고 현실왜곡으로 인해 축하의 장이 되었어야 할 지난 대선 직후를 '재검표'라는 세계사적 코미디로 희화화시켰던 것처럼,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분노와 울분을 승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모임마저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촛불시위와 같이 정제되고 성숙한 시민의식의 표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아찔하다. 만일 승화과정이 없이 그대로 억압된 분노와 울분이 전적으로 스트레스로만 작용한다면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촛불시위는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혼란을 방지하는 예방주사의 기능을 하는 것이며, 그러한 예방주사를 금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탄핵 사유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정국이 안정되기 전까지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오히려 탄핵에 찬성하는 쪽의 국민들도 더 이상 부정과 부인, 그리고 현실왜곡과 같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가 아니라, 반드시 촛불시위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평화적인 승화 방법을 찾아 건전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기왕에 초래된 난국을 조금이라도 슬기롭게 풀어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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