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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바빙 속에서 숨쉬고 그것에 익고 나면 다른 풍토는 권태롭고 위선적이고 숨 막혀서 못 참게 된다” - 작가 전혜린
ⓒ KOKI
그는 귄터 제거(Gunter Jager)가 아니라 트럭커 티나(Trucker Tina)이고 싶다고 했다….

뮌헨은 어떤 곳?

뮌헨은 독일 남부에 위치한 거대 도시다. 일반적으로 큰 도시는 진보적인 데 반해 뮌헨은 독일에서 꽤 보수적인 곳으로 통한다.

뮌헨의 보수적 혹은 폐쇄적 분위기를 설명하는 예로 제2차 세계대전의 중추였던 나치스가 있다. 뮌헨은 나치스의 본고장. 뮌헨에서 유명한 대형 맥주집 '브로이 하우스'는 본디 바이에른 왕실의 전용 양조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1919년 들어 나치스의 전신이라 할 독일 노동자당의 창당대회가 열리면서 이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히틀러가 수시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보수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98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당이 되기는 했지만,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 지방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독교사회당(기사당). 보수 가톨릭 세력을 대변하고자 전쟁 직후인 46년 창당된 기사당은 '통일 수상' 헬무트 콜이 이끌던 기민당(기독교민주당)과 함께 독일의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꼽힌다.

이때 기사당이 기민당과 다른 점은, 기사당은 다른 주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 세력 범위도 유독 바이에른 주에만 머무른다는 것. 54~57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바이에른 주정부를 장악하는 등 위세를 떨치지만, 여하튼 보수 정당 기사당은 지금 '바이에른 지역당'으로 불릴 정도로 뮌헨 및 바이에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폐쇄성이나 보수성이 상당 부분 희석되기는 했지만, 이런 뮌헨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개방되고 '서로 다름'에 대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유럽 사회라고 해도….

토요일 밤, 그곳은 여장 남자들의 해방구가 된다

▲ 슈바빙 거리에 자리잡은 바 '코예(Koje)'
ⓒ KOKI
그래도 학생들로 붐비고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곳도 있게 마련. 작가 전혜린이 "슈바빙 속에서 숨쉬고 그것에 익고 나면 다른 풍토는 권태롭고 위선적이고 숨 막혀서 못 참게 된다"고 말한 바 있는 뮌헨의 슈바빙 거리. 그 안에는 20평 남짓한 공간에 여느 바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코예(Koje)'가 있다.

현재 코예의 주인은 트럭커 티나(본인의 의사에 따라 귄터 제거가 아닌, 트럭커 티나로 부르기로 한다). 그는 드랙퀸(Drag Queen)이다. 우리말로 하면 '여장 남자'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성을 지향하는 티나. 아무리 성적 지향이 존중받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동성간의 결혼뿐만 아니라 자녀 양육도 가능한 독일이라지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지역적 특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법. 티나 역시 쉽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인정하기 싫었고 부정하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편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이름도 새로 지었어요. 강한 의미의 트럭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티나. 그러니 이제 귄터 제거 말고 트럭커 티나라고 불러주세요."

▲ 왼쪽부터 트럭커 티나, 필자, 권오석씨.
ⓒ KOKI
티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그의 바를 여장 남자들의 해방구로 개방한다고 했다. 즉 '여성들의 밤(Lady’s Night)'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여장 남자들만의 파티를 여는 것이다.

이때 날 때부터 여자인 사람은 물론 여장을 하지 않은 남자는 출입할 수 없다. 반드시 여장을 한 남자여야만 한다.

"당신이 볼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독일도 아직은 주체적인 성 선택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아요. 저도 일부러 여성이고 싶은 것은 아닌데도 이것을 부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성전환에 대해서는 부담이 있어 하지 않지만, 분명 우리는 소수자죠.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해방구를 마련하는 거예요."

바 한쪽에서 친구들과 슈나이더 맥주를 즐기고 있던 하츠 그로센씨. 이 근처에 살아 꼭 토요일이 아니더라도 종종 이곳을 찾는다는 그로센씨 역시 여성이고자 하는 남성이다.

"쾰른 하고 베를린을 거쳐왔다고 했죠? 여기는 베를린이나 쾰른하고는 달라요. 뮌헨에서도 6월에 러브 퍼레이드가 열리기는 하지만, 이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보수'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건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환영받기 힘든 거죠."

성적 소수자만 소수자의 전부는 아니다

▲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니콜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권오석씨. 그러나 때로 타자에 대한 차별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한다.
ⓒ KOKI
이때 코예를 안내해준 권오석씨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권씨는 한국에서 환경 조각을 공부한 후 현재 뮌헨 왕립미술학교에서 설치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독일은 미술관을 결혼식장으로 이용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어떤 때 보면 신랑과 신랑이, 아니면 신부와 신부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동성간 결혼이죠."

▲ 매주 토요일 코예는 여장 남자들의 해방구로 변한다. 사진은 코예의 내부.
ⓒ KOKI
달리와 피카소, 키리코 등 거장들의 작품과 조형 미술품을 소장한 '예술의 집'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권씨는 "그때는 정말 이상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권씨는, 그러나 반드시 성적 소수자만이 소수자의 전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6년 이상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은근한 인종차별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원래부터 이곳에 살아온 독일 사람 중 일부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을지언정 터키 사람이나 동양인들에게 무언의 멸시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남부가 다른 곳보다 배타성이 강한 편인데, 때로는 시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죠."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니콜과 단란한 가정을 꾸린 권씨.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무시와 폭력에 비해서는 그래도 '신사 대접'을 받는다"고 말하는 그는, 정작 "나중에 한국에서 가서 살기에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타자에 대한 이해심 부족은 한국이 독일보다 한 수 위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란다.

사회의 많은 부문에 있어 다양성이 존중된다는 독일에서조차 성적인 소수자든 인종적인 소수자든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 한국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표정이 굳어지려는 찰나, 티나가 한 마디 던진다.

"이번 토요일에 한 번 오세요! 아, 물론 여장 안 하면 못 들어와요~!"

덧붙이는 글 | 1. 더 많은 사진은 www.finlandian.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KOKI'는 권기봉, 박해얼, 샘, 최승희가 함께 하는 여행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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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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