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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조선인피폭자연락협의회 리실근 회장
재일본조선인피폭자연락협의회 리실근 회장 ⓒ 오마이뉴스 이승욱
'재일본조선인피폭자연락협의회'(이하 조선피폭자연락회) 회장을 맡고 있는 리실근(74) 회장은 조총련 계열이지만 남한 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이질적인 정치 체제로 살아가고 있는 남과 북이지만, 리 회장은 "원폭 피해자 문제만큼은 남과 북이 따로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 회장은 현재 일본과 북한 내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의 원폭 피해자 문제뿐만 아니라 남한과 일본의 민간기구와 꾸준한 교류 활동을 벌이며 조선인(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말 일본 히로시마에서 대구KYC와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회) 오사카 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를 위한 호소' 행사를 통해 만난 리 회장은 거듭 "남과 북이 공동으로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리 회장은 "원폭 59주년이 되는 올해만큼은 남과 북의 민간기구가 평양에서든 서울에서든 반드시 만나서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면서 "일본 식민지 지배의 문제는 남과 북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선 65년 8월에 맺어진 한일회담은 일본 정부가 옛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국가 배상을 한 것이 아니다"면서 "90년대 초반 일본이 한국으로 40억엔을 지원한 것은 후원기금 일뿐"이라고 한국 정부의 잘못된 과거사 청산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리 회장은 이와 관련 "공화국(북한)은 한국식으로 (원폭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이라며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그 다음 지원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리 회장은 우경화 되어가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경계를 나타냈다. 리 회장은 "공화국에서도 일본의 정치가 자꾸 우경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재일동포들도 위험하다고 걱정하고 있다"면서 "일본이 옛날의 꿈을 다시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리 회장은 16세 되던 해 원폭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01년 부인의 고향인 경남 의령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리 회장은 현재 일본 히로시마에 거주하면서 히로시마 수도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대구경북>은 85주년 3·1절을 맞아 지난 1월 25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대구KYC와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회) 오사카 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에서 리실근 회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 북한(공화국) 원폭피해자들의 현황은?
"지난 2002년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 다가기 게이치라는 변호사와 함께 공화국(북조선)을 같이 방문했는데, 그 당시 그쪽(공화국)에서 정식적으로 1953명이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 북한 원폭피해자들의 치료와 보호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한국과 일본은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공화국은 사회주의 사회제도이기 때문에 근본부터 다르다. 한국과 일본에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원폭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피폭자수첩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가 된다. 하지만 공화국은 (피폭자 수첩이) 있든 없든 무료이다.

피폭자하고 아닌 사람하고 구별이 애매하다. 다만 원폭 피해라는 것은 방사능에 의한 피해가 원인이기 때문에 특수한 치료가 필요하다. 북조선은 방사능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여사로(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보통 병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본 같이 전문 치료기술과 시설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도 이뤄지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다."

- 지난 2000년 일본 정부가 북한 원폭피해자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아는데. 현재 지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그런 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북조선)에서 회답이 어떻게 나왔느냐 하면,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일본에 가서 피폭을 당하고, 일본에 가지않았다면 왜 원폭 피해자들이 생겼겠나', '(일본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우리(북조선) 책임하에서 책임지겠다고 해라', '왜 우리가 머리를 굽히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구걸하나'고 답했다.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뻔뻔스럽게 우리의 가해자인 일본에 오라고 하는 말이 어디 있느냐."

"한국처럼 잘못된 과거사 청산 되풀이할 수 없어"

- 지난 65년 한일회담 결과 남한 정부는 경제개발기금을 명목으로 유무상 5억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40여년이 흘러가고 있는데, 한일회담에 대해 원폭 피해자들을 비롯한 일제 강점시기 피해자들의 원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한일회담 당시 일본이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는 점을 거론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65년 8월에 맺어진 한일회담은 일본 정부가 옛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국가 배상을 한 것이 아니다. 사과는 하지 않고 경제원조로 돈을 유무상 5억달러를 준 것이다.

또 40억엔이란 돈이 91년과 93년에 두 번에 걸쳐 한국으로 전해졌는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피폭자 후원기금으로 내준 것이지 피폭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배상을 위해 내준 돈이 아니다. 본질으로 배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공화국은 한국식으로 해결하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 사과해라, 잘못했다고 하라, 그 다음에 지원을 하라'고 할 것이다."

- 일부에선 북한이 결국은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고 말한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녘으로서는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상당히 곤란한 문제인데…(웃음). 인민들의 생명과 인권의 문제이다. 피폭자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그것을 딴 구실을 만들어 국가가 유용하면 안된다. 한국은 그렇게 했다. 남한의 한 인사에게 말을 들었는데 40억엔 그것을 받아서 합천의 복지회관 하나 지어주고 돈 몇 푼씩 주고 그뿐이라고 말하더라.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공화국은 한국처럼 잘못된 정책을 되풀이 할 수 없다. 공금을 유용한다면 그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피폭자에게 한 푼이라도 줘야지 남한의 정치가도 국가도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 한동안 일본의 독도 망언으로 남한이 들끓었다. 북한도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의 독도 망언과 관련한 강경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남과 북이 공통된 입장인 것 같다. 독도 분쟁과 관련한 일련을 사태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봤나.
"독도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조선반도의 영토이다. 이제 와서 자기나라 영토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들 스스로)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꼴이다. 침략적인 시각에서 말하는 것이다. 잘못된 사상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머리 속에 꽉꽉 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일본의 정치를 과거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이 자신들이 예전에 조선에 대해 뭘 했는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독도는 누가 말하든 조선의 영토이다. 침략적인 발상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유대손손에 이르기까지 그런 발상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민족의 주권과 존엄성을 지켜야하고 민족성을 지켜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본이다. 기본에서 이탈해서는 안된다."

"일본 우경화에 북한과 재일동포도 우려"

지난 1월 25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호소'에 참석한 리실근 회장이 재일동포 3세들에게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해 즉석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25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호소'에 참석한 리실근 회장이 재일동포 3세들에게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해 즉석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 올해도 역시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공화국에서도 일본의 정치가 자꾸 우경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위험하다고 걱정하고 일본이 옛날의 꿈을 다시 실현하려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변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냈다. 고이즈미와 일본 군대가 부시의 나발이 되어 호흡을 맞춰서 우경쪽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썼다. 일본이 대의를 거론하는데 그 미명하에는 수천만의 통곡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일본이란 나라가 옛날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다. 많은 분들도 동감하셨다."

- 핵문제를 둘러싸고 조미간의 관계가 좀체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미관계의 진전을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은 뭐라고 보나.
"얼마 전 북조선 영변으로 미국의 조사단이 갔다. 거기서 영변 핵시설을 둘러보고 플루토늄을 짜내고 있다고 보고 왔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는 없더라는 것이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핵무기가 있다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나는 공화국에는 지금은 핵무기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들 재료는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일본) 너희들이 강경적인 정책을 취한다면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고 본다.

결국 조미관계라는 것은 미국이라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안 가지고 있는 조그만 나라 약속국에 대해서 핵으로 위협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미국이 한국과 동해바다, 태평양지역 군함이나 비행기에 핵을 달고 협박을 하고있는 것 아닌가. 조미관계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그 협박을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핵무기를 없앴다고 거짓말한 부시 '애비'의 말을 실천해야 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조미관계가 좋아질 것이다."

- 아직까지 북녘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북측 정부가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피해배상들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데, 이것은 향후 조일간의 협상에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인 것도 같다. 어떤가.
"우리 공확국은 한국이나 일본하고 생각이 다르다. 공화국은 어느 쪽이 득이 많은가를 요리조리 철두철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득이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 일본이 예전 한국에 보낸 45억엔을 보고 그 돈이면 공화국이 부강해질 수 있는데 어떻게 받을 수 없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받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딴 문제부터, 위안부나 강제징용자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 미군에 의해 지난 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번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남한에선 그동안 원폭투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를 해방시켜준 계기가 됐다는 점에 많이 주목한 것 같다. 그러나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원폭투하의 본질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70~80년대 미국을 세 번 다녀왔다. UCLA 대학에 초청을 받아갔는데 당시 나를 초청해준 한국인 여교수가 소수 민족문제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갔었다. 그때 샌프란시스코지역 7~8군데 교회에서 강연을 했다.

원폭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미국의 잘못이라고 말하니 동포들이 '당신 무슨 말을 하느냐', '원폭으로 일본제국주의 밑에서 해방된 것 아니냐', '미국의 덕택'이라고 나를 나무라며 야단이었다. 원폭 투하로 인해 일본이 패망했다는 점은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지만 원폭 자체가 대량적으로 사람을 학살하기 때문에 좋지 못하다. 미국에 대해서도 종국적으로 너희들이 무슨 나쁜 일을 했는지 각인시키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일본 식민지 지배 문제는 남과 북이 공동의 목소리 내야"

- 일본 식민지 지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남과 북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원폭 피해자 문제도 남과 북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지 않나.
"원폭 피해자 문제를 가지고 남과 북의 관련 단체들이 합동으로 회견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나도 이 점에 있어서 동의했다. 원폭 59주년이 되는 올해만큼은 꼭 평양이든 서울이든 관련 단체 사람들이 만나 공동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 지배의 문제는 남과 북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한 말씀을 하신다면?
"일본에 있는 사람으로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이든 공화국 국적의 피폭자이든 상관없이 가해자의 나라인 일본에 있는 만큼 큰 책임감을 느낀다. 언젠가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한국에 계신 피폭자 어르신들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빈다고 전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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