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봄이 아니야." 태안의 한가한 어촌 마을 갯벌에서 오밀조밀 모여 있는 갯것들은 낯선 여행자에게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갯벌을 둘러봅니다. 찬바람이 옷 틈을 찾아 듭니다. 한기를 느낀 여행자는 옷깃을 여며봅니다.
갯벌의 돌을 들춰 보았습니다. 그곳에 게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바닥만한 돌 하나를 들춰내면 꼭 한두 마리의 게가 들어 있었던 곳인데, 아직은 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추위에 몸을 숨겼나 봅니다.
갯벌에 갯것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위 틈을 따라 한줄로 어린 홍합들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고둥들도 빼곡히 무리지어 있습니다. 그 녀석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시선을 잡아끄는 고둥들이 보입니다. 고둥 여섯마리가 한줄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론가 바쁜 나들이 중입니다. 그들의 나들이를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바람은 차고, 마음은 급해 그들의 나들이를 계속 지켜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직은 봄이 아니었지만 갯벌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갯것들이 이미 봄을 즐기고 있지만 여행객의 무딘 귀가 갯것들이 이야기를 잘못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갯것들이 귀가 무딘 여행자를 탓하진 않을 것입니다.
봄이든, 아직 봄이 아니든 갯벌의 갯것들은 그 자리에서 그냥 존재합니다.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라기까지 할 것 입니다. 무리지어 있는 홍합과 고둥들이 조금씩 자랄 테고, 보이지 않는 게들도 조금 깊은 갯벌에서 숨쉬고 있을 것입니다. 바람이 차도 봄이 가깝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볏가리마을은 충남 태안군 이원면 관1리 마을입니다. 지난 2003년부터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육성되어 도시민들이 농촌과 어촌을 체험 할수 있도록 가꿔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