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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슬로 푸드>
책 <슬로 푸드> ⓒ 나무심는사람
최근 들어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느린 음식에 대해 예찬하는 책 <슬로푸드(Slow Food)>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법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놓는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슬로 푸드 운동은 매우 미미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슬로 푸드 운동에 대한 정의도 매우 다양하여 딱 한 가지로 명료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책의 서문에서 이야기되는 슬로 푸드 운동은 다각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식가에게 슬로 푸드는 예술적인 음식이나 와인을 뜻한다. 또 쏟아지는 신제품을 발 빠르게 좇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런 생명의 리듬에 맞는 속도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슬로 푸드에 공감하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식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슬로 푸드를 통해 재래식 치즈에 애착을 갖게 되거나,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의 전통 음식과 그 요리법을 알게 된다. 동물이나 식물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슬로 푸드가 '미각의 방주'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칠면조에서 양이나 굴, 사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옛 품종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종들의 보존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슬로 푸드 운동이란 느리게 만들어진 음식, 정성 들여 재배한 농작물, 자연스러운 생명의 리듬에 대한 존중이 포함된 운동이다. 음식의 생산지에 대해 관심을 갖다 보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많은 음식들이 얼마나 불결하고 오염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처음 슬로 푸드 운동은 이 책의 편집자인 카를로 페트리니의 주도로 1989년 로마의 유서 깊은 스페인 광장에 '맥도널드'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출발 당시의 슬로 푸드는 식탁의 즐거움을 되찾고 보호하며, 좀더 세심한 감각을 훈련하여 고급스런 미각을 개발하자는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와 같이 소박한 주제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1996년 이후 '미각의 방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고급 음식을 생산하는 당사자인 농민과 토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생태학적인 관심을 통해 음식과 그 재료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음식이 산지에서 식탁에서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무관심해 왔다. 최근 들어서야 음식물의 유해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생기면서 음식물의 산지와 생산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하여 제대로 된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음식 문화가 점차 대중화, 획일화되면서 음식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 특히 미국 등 몇몇 선진 국가의 경우 '표준화'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음식은 배척하고 대량 생산된 엉터리 음식을 보급하고 있는 실정이기까지 하다.

"패스트푸드 문제는 맥도널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는 이미 세계 경제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이들은 올림픽의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구호를 식생활에 적용하려고 한다. 기록에 매달리는 사회는 우리를 숨 돌릴 틈 없이 압박하고,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들며, 더 싼값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체제로 끌고 간다."

이와 같은 흐름 때문에 우리의 식탁에는 싼값으로 대량 생산된 고기와 농약으로 버무려진 야채가 오르는 것이다. 사실 세계를 놀라게 한 '광우병 파동'이나 '조류 독감'의 경우도 육류의 대량 생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많은 소를 한꺼번에 사육하기 위해 사료를 먹이게 되고 값싼 사료 생산을 위해 아무 재료나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광우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닭들을 모아 놓고 한꺼번에 키우는 양계장에서의 조류 독감은 많은 닭들을 대량으로 죽게 만든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생산 과정의 청결성과 전통성 유지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방목을 통해 소를 사육하면 그 소는 절대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 항생제를 잔뜩 먹인 닭이 낳은 달걀은 역시 항생제 덩어리라는 사실을 안다면 닭을 풀어놓고 자연스럽게 달걀을 얻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와 같은 엉터리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적인 방법으로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내며 닭을 키우고 야채를 길러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산 방법은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그 노력에 비해 생산력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슬로 푸드 운동의 방법으로 생산된 음식들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것이 슬로 푸드 운동의 가장 큰 단점이자 비판점인데, 이 운동가들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민층 중심의 운동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자급자족을 하는 서민들을 통해 이 운동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많은 이들이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평범한 음식이 지니는 가치를 잘 안다면, 더 이상 대형 마트에서 파는 고기에 눈을 돌리진 않을 것이란 믿음이 이들에게는 존재한다.

비록 이들의 믿음이 이루어지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할지라도, 그 5%의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음식 문화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 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이에 동참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일시적인 흐름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슬로 푸드 운동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이유일 것이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려면, 그 음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슬로푸드 - 느리고 맛잇는 음식 이야기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나무심는사람(이레)(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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