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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돌아오는 길에도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경북 칠곡의 어느 야산에서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고 이틀간 산에서 헤매셨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군을 만나 병원으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지셨다며….
“그 때 잘못됐으면 너도 없고 정원이(아홉 달 된 아들)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할머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기막혔다.
영화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 거리의 시신들, 그리고 부상당하고 죽어 가는 군인들, 그 모두에게 가슴 아프고 한으로 남을 사연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와 함께 참전했던 동네 청년은 모두 7명이었다. 그 중 아버지와 다른 2명, 이렇게 3명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훈련도 받지 않고 나간 터라 전사자가 많았다는 말씀이다.
영화 끝 무렵 전쟁당시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주인공이 “두고 오는 게 아닌데… 나 혼자 오는 게 아닌데…”하며 눈물을 흘릴 때 아버지는 두 번째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1사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하셨다. 아버지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아버지를 졸라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찾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전우로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분이라고 한다. 이름을 정확히 기억을 못하시지만 그분을 찾는 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마이뉴스>가 도움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극장을 나오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 같은 분들은 돈 받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던져주셨다. 아버지가 당시 경험하셨을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지금의 나를 그리고 내 아이를 있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이 땅의 모든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아버지(박동식·73)는 치료 후 부대에 합류하여 문산에서 생포한 중공군 포로로부터 얻은 정보가 아군에 도움이 된 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