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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용씨의 우표사랑은 남다르다.
엄원용씨의 우표사랑은 남다르다. ⓒ 권윤영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우표수집에 관한 추억. 70~80년대 시절에는 이메일이 범람하는 요즘보다 오히려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표였다. 하지만 우취(郵趣. 우표를 수집, 연구하는 취미)는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취미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테마틱우취를 하는 엄원용(55)씨의 우표사랑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그것은 쉬이 가능해진다.

"테마틱우취는 한 가지 분야에 주제를 정해서 우표를 수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제에 관한 설계를 하고 이 설계에 따라 관련된 내용을 우표가 가진 정보를 이용, 간결한 설명을 붙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죠. 즉, 우표수집에 있어서도 서론, 본론, 결론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가 초창기 '테마틱우취'의 타깃으로 정한 것은 파충류였다. 보통 A₄용지 16장이 합쳐져야 한 틀인데 공룡 우표만 35틀, 파충류는 40틀을 소장하고 있다. 세계출품전의 자격이 주어지는 국내전에서 입상을 한 후 여러 국제전에서 수상하기도 수차례. 파충류 분야로 국제전에서 금은상을 받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가 유일하다.

파충류와의 특별한 만남

이탈리아, 폴란드, 샌프라시스코, 모스크바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취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탈리아, 폴란드, 샌프라시스코, 모스크바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취 실력을 인정받았다. ⓒ 권윤영
엄씨가 우표 수집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 전국 각지의 친구들과 펜팔을 즐기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각양각색의 우표였다. 다양한 우표에 매료된 그는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우표 수집인지도 몰랐고 단지 그림이 좋아서 모았을 뿐이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다시 우표 수집을 시작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집방법을 몰라서 물에 불린 후 우표를 띠어 내고 밥풀로 앨범에 붙여 넣었죠. 나중에 다른 곳에 옮기려니 힘들기도 했고 결국 버려야만 했어요.”

생활고로 중단했던 우표 수집을 20대 후반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단지 우표수를 늘리는 데에 불과한 활동이었다. 10장에서 50장으로 늘어날 때 느끼는 기쁨, 다시 100장으로 늘어나는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우표수가 많아질수록 소장한 우표를 기억하는데 한계를 느꼈고 흥미를 잃어갔다. 새로운 우표를 무조건 사는 것도 비경제적이었다.

80년대 초반, 우연히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우표인생은 달라졌다. 테마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는 한 가지 주제를 정했다. 그것이 바로 파충류였다.

서론, 본론, 결론에 의해 짜여진 파충류 테마틱우취.
서론, 본론, 결론에 의해 짜여진 파충류 테마틱우취. ⓒ 권윤영
"어떤 주제를 정할까 고민 중에 회사 야유회를 간 일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입구에 뱀탕집이 있었는데 각 집마다 뱀 사진을 붙여놨더라고요. 그게 유별나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리곤 결정했죠. 내 테마는 뱀이다!”

관심 밖의 동물이고 남들이 꺼려하는 주제였다. 시작 초기에 우취계 선배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우려를 뒤로하고 파충류의 설명에서부터 생태과정, 파충류와 민속, 미술과의 관련성을 파악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 파충류 테마틱우취에 성공할 수 있었다. 높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테마틱우취를 위해 캄보디아에서 뱀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열성도 보였다.

테마틱우취는 자료들을 이용해 잘 다듬어진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과 같이 작품을 창조한다. 같은 주제, 같은 우표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꾸렸을 때에도 그 내용은 똑같아질 수가 없다. 그만큼 개인의 창조성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우취(郵趣)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첫 개인전 팜플렛을 들고 있는 엄씨. 지금까지 일곱 차례 우표 개인전을 열었다.
첫 개인전 팜플렛을 들고 있는 엄씨. 지금까지 일곱 차례 우표 개인전을 열었다. ⓒ 권윤영
그는 세계적으로 발행된 파충류 관련 우표 중 98%를 갖고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을 소장하고 있다. 88올림픽 전, 무려 100여 개국의 사람들과 펜팔을 주고받으며 세계 각국의 파충류 관련 우표를 수집했다.

지금도 그의 사무실로는 전국 각지, 세계 곳곳에서 보내 온 우편물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각종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그에게 우표를 속속 보내주고 있는 것. 그 역시 새로운 우표가 나올 때마다 80통씩 보내곤 한다. 국내외 우취 단체의 정기간행물이나 문헌을 이용, 원하는 우표를 수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아마 제가 대한민국 올림픽 우표를 제일 많이 산 사람일 거예요. 지난 월드컵때도 많이 보내줬습니다. 우표를 보내주는데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저 역시 우표를 받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었죠.”

6500만 년 전 멸종된 공룡이지만 뉴질랜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 우표를 구하기까지는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다. 우표신청을 해놓고 다른 사람에게 그 우표가 가게 될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 아직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우표가 있을 정도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지만 그가 느끼는 보람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다.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했지만 저는 월급쟁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원하는 우표를 수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어요.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죠. 취미는 어디까지나 취미여야 하는데 취미를 벗어나면 그것은 투자입니다. 취미이상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우표 구입에 있어서 자기 능력보다 힘이 부친다고 하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요.”

그는 오랜 경험 끝에 우취를 위해선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가(高價)의 우표 한 장을 사기 위한 돈을 따로 저축해 오고 있을 정도로 우표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엄씨. 그는 우취를 통해 지식을 넓힐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법도 느꼈다. 또한 우표는 그에게 또 다른 인생을 선물했다.

한편 그는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공룡축제로 유명한 경남 고성에서 올 4월, 전시회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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